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필립 로스의 작품을 네 편 연이어 읽었다. 네 번째 이 작품을 읽을 때쯤 되자 로스의 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이야기의 힘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 '목로주점'이나'속죄' '남아있는 나날' 같은 소설은 흉내낼 수 수 없는 서사로, 유려한 문체로 독자를 감동과 우수에 젖게 한다.

 거기 비하면 필립로스나 줄리언 반스 같은 작가들은 단연코 서사보다 작가의 사유와 박학다식함이 독자에게 특정내용를 교육시키고 모르던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필립 로스의 세계는 넓고 자유분방한 세계다. 그의 세계는 정태적인 세계가 아니라 요동치고 전복되는, 변화무쌍한 세계다. 그 점이 독자의 경탄을 자아내고 어떤 교훈을 깨닫게 한다. 독서를 하면서 만난 작가 중에 가장 많이 배웠던 작가가 아닐까 싶다. 때문에 그의 네이선 주커먼 3부작 중 안 읽은 <미국의 목가>를 시간이 닿는 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작심을 하고 있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1946년부터 1956년 쯤 사이에 몰아친 미국내 매카시즘의 상황을 픽션과 논픽션의 결합을 통해 옮겨놓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빨갱이'라는 단어..... 그 때에는 미국에서도 빨갱이라고 지목당하면 사회적인 지위는 추락하고 개인의 삶은 파괴당하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주인공 아이라 린골드는 너무나 감정적이고 욕망에 충실한 남자였다.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모든 것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만다. 하지만 그가 냉정하고 올곧기만 한 공산주의자였다면 오히려 그렇게 완벽하게 몰락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공산주의자가 되었지만 공산주의가 가장 혐오하는 안락한 가정과 아름다운 아내와 자식을 원했고, 자식을 얻지 못하자 바람까지 피웠다. 메마르고 차가워야하는 지성적인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면 추악한 결혼생활과 그 뒤에 이어지는 배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아내였던 스타, 이브 프레임... 그녀는 아이라와 쌍벽을 이루는 여자였다.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안락한 가정과 자신을 보호해주려는 남편과 성공하는 사랑스런 딸을 가지고 싶었던, 그러나 사회적 성공도 버릴 수 없었던 여자..... 두 사람의 결혼은 애초에 잘못된 만남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을 예견하고 시작하는 만남이 얼마나 있을까. 사랑을 시작할 때 자신과 상대의 모든 것을 살피고 분석해서 합리적으로 만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사랑에 자신을 내던진 순간까지만 아름다울 뿐, 함께 사는 일상은 녹록치 않다. 결혼은 대부분의 사랑하는 남녀를 숨막히게 한다.

 더구나 그토록 인간적이고 그토록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 아이라 린골드에게 잘못된 결혼은 추악한 배신을 불러오게 만든다. 이브 프레임이야말로 그 못지않은 욕망과 성공에 눈 먼 여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게 볼 때, 전 남편의 파멸이 자신의 행복일 수 있을까. 악한 일은 악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악한 방법으로 누군가를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 어째서 성공하는 사람들 다수는 양심이나 도덕에서 면제받은 것처럼 행동하는지....  

 완전히 프롤레타리아로 다시 돌아온 아이라는 폐광이 된 광산 앞에서 광석을 팔다 죽는다.

 그의 형 머리 린골드가 한때 아이라를 우상처럼 따랐던 네이선 주커먼에게 이제는 죽어 하늘 어딘가에서 별이 된, 아이라의 들끓던 용광로가 이제는 별이 되고 만, 자신의 동생인 아이라의 삶을 엿새 밤 동안 이야기해준다. 엿새 밤 동안 다 늙은 머리가 이제 초로에 접어든 주커먼에게 아이라의 삶을 자세히 들려주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토록 인간적이었고 그토록 마음이 따듯하고 자신의 삶 자체를 살고 싶었던, 욕망과 감성에 충실했던, 그러나 힘이 너무 좋았고, 감정에 빠지면 자신을 절제하지 못했던 남자, 아이라.

 그 동생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지만 동생의 공산주의 때문에 자신도 한 때 실직했던 머리는 훌륭한 인간이자 듬직한 형이었다. 그 형이 지금은 없는 동생을 추억한다. 사랑과 배신과 복수가 날뛰었던 동생의 철없고 한심하고 너무나 눈물겨운 삶을....

 주커먼은 두 달 뒤 머리 린골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모두 죽는다. 공산주의자라고 오명을 썼던 남자도, 그 남자를 사랑하고 배신했던 여자도, 훌륭한 인품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지키지 못했던 형도, 모두 죽었다. 이제 주커먼 혼자 하늘을 바라본다. 한때 용광로였던 그들은 죽어서 별이 되어 있다. 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