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2 (반양장)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휴먼 스테인>- 얼룩진 인간, 오점의 인간,  책을 읽어나갈 수록 제목이 주는 의미가 지대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휴먼 스테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완전한 개별성을 지닌 고유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처한다. 한계는 자라나는 아이를 주눅들게 하고 방황하게 한다. 아이는 무엇인가 하기 위해 억지스런 행동을 취하기도 하고 거짓된 자아를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를 속이기도 한다. 극단적인 아이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콜먼은 도저한 한계를 넘기 위해 세상 전부를 속이게 되는 흑인이다. 흑인으로 살아서는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다고, 흑인에게는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고 그는 여긴다. 그래서 그는 백인이 된다. 백인보다 더 백인다운 백인이 되기 위해 콜먼은 가족과 절연하고 백인으로 몇 십년을 지내왔다. 그러나 노력한 것에 비례해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갑자기 백인교수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추방된다. 대학에서 쫓겨난 후 그는 어떻게 되는가....

 

  <휴먼 스테인>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해직당한 노교수 콜먼과 콜먼이 학장으로 있었던 아테나대학과 동네 우체국의 청소를 하는 젊은 문맹인(사실 문맹이 아니었다. 오히려 포니아가 문맹이라고 남들을 속인 것) 여자 포니아가 주인공이다. 콜먼은 'spooks'사건으로 명명할 수 있는, 어찌보면 단순하고 하찮은 이 단어를 악의적으로 썼다는 모략에 의해 교수사회에서 매장당하고, 그는 대학을 사직한다. 하지만 콜먼의 불행은 이 단편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이 일로 아내를 잃는데, 아내의 죽음은 그를 분노와 증오로 들끓게 하고 그는 분격하여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책으로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화자인 작가를 찾아간다. 자신은 아내를 잃었고, 그들은 살인자들이니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한다.

 그러나 얼마 후 콜먼은 안정을 찾는데, 이유는 젊은 여자 포니아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34살의 포니아와 71살의 콜먼은 둘만의 완전한 유토피아를 이룬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추방당하고 경멸당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오히려 완벽한 그들만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세인들에게 불량하고 파렴치한 일로 치부된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놔두세요' 이 말을 콜먼과 포니아는 하고 싶을 것이다. 콜먼을 해직에 이르게 했던 아테나대학의 새 학장 루 델핀은 콜먼이 문맹인 포니아를 위협하고 기만해서 성적노리개로 삼았다고 여긴다. 이 일로 콜먼은 다시한번 치욕을 당하고 자식들에게마저 회피당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포니아 또한 한 인격체로서의 의지는 고사하고 성적인 노예처럼 세인들에게 폄하된다. 더구나 포니아의 전남편인 레스터 팔리는 베트남 참전 재향군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더 약자인 포니아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결국 대학과 세간의 편협한 의심, 또 레스터 팔리에 의해 잠시 유토피아를 이뤘던 두 남녀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종말을 맞게 된다(직접적인 가해자는 포니아의 남편 팔리였다. 교통사고로 유도한 계획적인 범행이었지만 증거가 없어서 팔리는 쉽게 풀려난다. 경찰은 단순한 사건을 심도있게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화자의 신고를 귀찮아하고 사고로 규정한다. 경찰들의 안일함은 미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콜먼과 포니아가 죽고 난 후, 화자인 작가는 콜먼의 시신을 묻는 장지에서 콜먼의 여동생으로부터 몇 십년간 지속된 콜먼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는 흑인이었던 것이다. 콜먼은 해군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백인행세를 하며 주위를 속였고 백인이 되기로 한다. 그의 어머니는 그러나 늘 그를 그리워했고 기다렸다. 그는 백인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찾아와 절연을 선언한다. 절대 자기를 찾지 말라고, 자신은 없는 자식이라고....

 하지만 그의 말로는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을 모욕하고 경멸했다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의혹 속에서 파멸되었다. 그는 자신은 사실 흑인이며, 자신이 흑인을 차별할 리 없다는 진실을 밝히지 않고 백인으로, 인종차별자로써 죽었다.

 작가인 네이선 주커는 콜먼의 이 엄청나게 모순투성이의 비밀을 알게되자, 그리고 그가 이 사회가 만들어낸 하찮고 악의적인 스캔들 때문에 붕괴되고 끝내는 죽었다는 사실을 쓰기로 한다. 그는 "휴먼 스테인"을 써야 하는 것이다.

 

 550쪽에 가까운 긴 장편인 이 작품은 필립로스의 필력과 열정, 에너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어달리기처럼 한 인물 한 인물마다 그가 어떻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힘겹게 살아왔고, 그러다 파괴당했으며 남은 생 또한 희망없음을, 그리고 결국은 미국이라는 허울만 좋은 나라에서는 진짜 깊은 문제는 땅 속으로 가라앉고 표피적인 것만을  문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1998년도의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에 온 언론이 나팔을 불듯 떠들어대고 대중은 그들대로 스캔들을 즐겼으며, 고위직 인사들은 자신들은 '성자인 척하'면서 대통령을 탄핵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이 얼마나 부패했으며 뒤로는 클린턴 못지않게 타락했는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필립로스는 이 점을 말하고 싶어 한 것이라고. 그는 정말 중요한 문제들은 짚지 않고 사소한 스캔들에 소진하는 미국사회를 개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로쟈샘의 강의의 주요논점).....

 

 필립로스는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을 위해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중간에 아무때나 되는 대로 무시했다. 이 방법은 인물들마다 자신의 이력과 심리를 대변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보여진다. 장편에서 시점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등장인물의 증언을 들을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화자가 관찰자로서 말하지만 콜먼에게 시점이 이동하고 나면 콜먼이 일인칭 화자로서 주인공으로서 자기의 말을, 마음을 표현한다. 시점이 깨진다. 그리고 포니아에게로 상황이 이동하고 나면 포니아가 또 그대로 자신의 심리를 드러낸다. 시점이 또 깨진다. 이런식으로 시점은 인물들이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일인칭 또는 삼인칭 주인공 시점이 된다. 그래서 악인인 레스터 팔리나 루 델핀의 역동적이며 교활한 심리를 독자는 알게 된다. 그들, 악인들도, 특히나 레스터 팔리의 경우,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전한 베트남전에서 너무도 잔악한 일을 당했으며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남김없이 버리고 베트남을 떠나왔다. 그는 미국의 희생양이며 국가에 이용당한 힘없는 국민이다. 이렇게 악인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당시의 상황을 독자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해서 레스터 팔리를 동정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만큼 필립로스는 <휴먼 스테인>에서 잘나가는 일등 국가 미국의 표피가 아닌 인종과 성차별, 전쟁후유증 등으로 안으로 곪아있고 붕괴되어가는 미국의 어두운 면을 비판한다. 이 책은 그런 문제투성이의 나라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또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진지한 통찰을 원하는지, 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필립로스의 해박함과 비판정신, 과격하면서 열정적인 글쓰기에 매료당했다. 한 번 읽어서는 필립로스의 문제작을 완전히 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지만.... 시간이 없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로 또 넘어가야 한다. 독서가 참 어려운 일, 쉬운 일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에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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