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내겐 세상 작가들 전부가 동경과 전범의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몇 작가는 내 애정과 존경의 대상인데 에밀 졸라는 특히 그렇다.  그는 <목로주점>에서 소설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묘사와 서사, 문장, 인간을 향한 냉철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뒷면에 흐르는 애정과 연민. 그런 졸라의 첫번째 소설가로서의 등단작이라 할 <테레즈 라캥>.


지난 학기에 무슨 일인가 바빴던 관계로 패스했던 이 작품을 여름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잠시 짧은 이 방학을 이용해 읽었다. 4일부터 6일까지 읽었으니 워낙 독서속도가 느린 나로서는 꽤 빨리 읽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테레즈 라캥>은 읽기가 수월하다. 일단 서사 자체가 굉장히 단순하고 인물이 많지 않다. 문장은 길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쉬운 단어로 직설적으로 쓰여있다.  그래서 그간 읽은 어떤 책보다 스트레스가 가장 적은 작품이었다. 에밀 졸라의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해보자면 여러면에서 소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 자신의 재능 전체를 보여주기에는 자신감이 부족했을 첫 작품이라서 그런 것도 같고, 단일한 사건과 주제를 다루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만만하게 생각할 소설은 결코 아니다. 에밀 졸라는 이 첫 작품에서 벌써 자신의 사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자연주의 사상. 인간이란 존재는 여지없이 부모의 피를 물려받고 태어나면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 예속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생래적인 기질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기란 쉽지 않고 거기다 환경이 열악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는 쉽지 않다는- 쉽게 해석해 본,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자연주의 사상이다.

졸라는 이 <테레즈 라캥>을 첫 작품으로 시작해 자신의 작가 생활 전체를 자연주의 사상을 펼쳐내는 소설들로 채워냈다. 대단한 목표였고 창의적인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 날개 뒷면에는 졸라의 이 작품의 서문 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구절이 있다. '해부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듯 인간 영혼의 광기와 공포를 해부한다.' 졸라는 말 그대로 자신이 창조한 인물, 테레즈와 로랑의 심리를 파헤치고 해부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자연주의 소설 집필을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의 서문 바로 앞페이지 '일러두기'에 서문에 관한 설명이 있다.  "테레즈 라캉"은 1867년에 출간되었으나 1868년 2판에서 졸라는 서문을 달아 이 작품이 자연주의 소설관의 기초를 확립했다, 라고).


테레즈는 어려서부터 부모 없이 고모에게 얹혀살게 되는데, 고모에게는 카미유라는 아들이 있다. 그는 병약해 라캥고모는 오직 그 아들에게 헌신한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테레즈를 아들 방에 넣고 아들을 보살피게 한다. 테레즈는 순전히 카미유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늘 침울하고 조용한 테레즈, 그러나 소녀의 속 깊은 곳에서는 분노와 슬픔이 쌓여간다. 

결국 라캥부인은 테레즈와 카미유를 결혼시키는데, 이 결혼은 테레즈에게 카미유에 대한 증오를 커지게 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그러다 젊은 부부와 어머니는 베르농을 떠나 파리로 가서 퐁네프 파사주에 있는 잡화상을 경영하게 된다. 카미유는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직장을 잡고 어느날 어릴 적 베르농에서 친구였던 로랑을 집으로 데려온다. 병약하고 나약하기까지 한 카미유와의 결혼생활을 혐오하던 테레즈에게 갑자기 등장한 로랑은 한 남자로 순식간에 떠오른다. 로랑의 덩치가 크고 남자다운 외모는 카미유와 대비되고 그것만으로도 테레즈에게는 흥분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 것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안으로만 감추어져있던 자신의 열정과 정욕을 로랑을 향해 분출한다.

로랑은 테레즈의 정부가 되고 둘의 정욕은 차츰 카미유를 제거해야하는 대상으로 몰고 간다. 로랑은 카미유가 죽고나면 테레즈를 차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라캥부인의 재산마저 상속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 살인을 계획한다. 테레즈 또한 로랑과의 행복을 꿈꾸며 센 강 한가운데서 카미유를 강에 던지는 로랑과 뜻을 같이한다. 

카미유가 죽고 둘은 어느 순간부터 카미유의 유령으로부터 시달리게 되는데 그 공포 때문에 그들은 잠시 서로를 떠나 외도를 한다. 그러나 어떤 환락도 쾌락도 카미유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기 위해 결혼을 치밀하게 기획한다. 그리고 결국은 목요일마다 작은 모임을 가지는 방문객들로부터 두 사람을 결혼시켜야 한다는 공감을 얻어내고 라캥부인은 둘을 결혼시킨다. 

그러나 결혼 후, 둘은 사랑의 신방을 차릴 수 없다. 언제나 카미유에 대한 환상이 둘 사이에 끼어들고 지쳐가던 그들은 서로를 저주하고 증오하게 된다. 마침내 테레즈는 카미유에 대한 회한에 젖고 로랑을 만난 것을 후회하며 중풍으로 마비가 된 시어머니에게 자신들이 카미유를 죽였음을 고백한다.

라캥부인은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는 겨우 두 눈동자로 살인자들을 쏘아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살인자들의 파멸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파멸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미움과 증오와 폭력을 거쳐 그들은 기진한 상태로 상대를 죽이고 평안함을 얻고자 한다. 

로랑은 독극물을 준비하고 테레즈는 식칼을 준비한다. 서로를 죽이려는 순간, 테레즈는 어떻게 해도 카미유를 죽인 회한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죽음만이 평안임을 깨닫고 독약을 마시고 나머지를 로랑에게 건넨다. 로랑은 테레즈가 건넨 독약을 따라 마시고 죽음을 맞는다.

라캥부인은 다음날 정오까지 살인자들이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광경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테레즈와 로랑의 심리를 따라가는 여정이 이 소설의 주요 스토리이고 백미이다. 서로를 열렬히 원했지만 방해자였던 남편을 살해한 이후 갑자기 욕정이 식어버린 남녀, 희생자의 유령에 시달리다 서로에게 의지하려 했으나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탓하면서 죽이고 싶어하는, 자신들이 저지른 악의 반격이 계속되자 스스로 죽음 앞에 굴복한 두 남녀. 테레즈와 로랑. 

두 남녀의 파멸까지 가는 과정이 변곡선을 그리며 집요하게 이어진다. 인간심리에 대한 냉철한 분석. 심리묘사가 주를 이루지만 묘사라기보다 설명에 가까운 문장이 많았다. 

언제나 졸라의 책을 읽고 난 후, 하고 싶은 말. 에밀 졸라에게 경의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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