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제목을 이미지화한 둥그런 황금빛 원, 위 그림처럼 책 날개의 앞모습이다.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태양보다 완전한 존재는 없다. 신이 있다해도 태양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래서 고대에는 태양신을 믿는 게 합리적으로 타당했을 것이다. 태양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지구인들에게는 언제나 어젠다이다. 

 

 이 책 <솔라>는 현재 지구의 여러 문제 중 전지구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와 그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기후변화와 한 과학자의 삶, 두개의 테마가 서로 얽히고 설키며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1부는 2000년도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젊은 시절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그러나 지금은 그 경력을 밑천 삼아 이런저런 공직을 맡기도 하고 그 수장이 되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는 마이클 비어드를 보여준다. 뚱뚱하고 대머리에 배가 나온 그는 키가 작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지만 그는 나온 배만큼 자신의 인격을 지키기 위한 관리가 전무하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혁혁한 꼬리표가 그의 외적인 단점을 말살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는 다섯 번째 아내 퍼트리스와 갈등관계에 있고 그녀는 집을 수리하러 왔던 건설업자, 로드니 타핀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녀의 바람은 그러나 비어드의 여러 번에 걸친 불륜에 근거한, 일종의 보복행위이다. 비어드는 아내의 바람에 점차 격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럼에도 오히려 이전보다 더 그녀를 갈망하게 된다. 이제 보니 그녀는 그 전의 어떤 아내나 애인들보다 단점이 없는 미인이다.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혼자만의 연극을 한다. 자신도 다른 애인을 집으로 불러 깊은 밤 정담을 나누고 밀회를 하는 것처럼 혼자서 희극을 연출한다. 그 와중에 작가는 짧은 문장 두 서너개로 아내 퍼트리스의 심정을 묘사한다. 그녀는 집을 나서며 잠시 멈춰서기도 하고 어느 날인가는 혼자 소파에 기대어 울기도 한다. 그러니까 매큐언은 아내 퍼트리스의 내면이 몹시 복잡했음을 시사한다. 작가는 언제나 자신이 창조한 인물 누구나에게 애정을 가져야 하고, 한편으로는 신랄해야 함을 이 몇 개의 문장이 증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비어드에게 레딩 외곽의 정부연구소의 수장이 된 일은 일종의 도피처로 괜찮다. 그곳에서 그는 장차 자신이 가로챌 연구를 한 톰 올더스를 만나게 된다. 올더스는 풍력발전보다 태양광 발전이 훨씬 경제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익이 될 것을 주장하는 젊은 연구원이었다. 

 그러다 그는 북극엘 가게 된다. 집을 떠나 아내의 외도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에 그는 해방감을 느낀다. 실제로 작가 매큐언은 기후변화에 관한 문제로 북극에 가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그 곳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학자들과 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예술작품의 모티프로 쓸 예술가들이 탈의실을 엉망으로 만든 무질서를 목격하게 된다. 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한 경위가 이 북극에서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고 하니 경험만큼 훌륭한 소재는 없다 할까.... 

 그리고 북극에서의 귀환은 이 좀쓰럽고 엉망진창인 비어드의 삶에 반전을 가져오게 된다. 바로 톰 올더스가 아내의 새 애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우연찮게 자신의 집에서 목욕을 끝내고 태평하게 쉬고 있던 올더스와 마주한 비어드는 올더스의 죽음을 유도하게 되는데, 바로 거실 소파 아래에 깔려있던 북극곰의 가죽깔개에 올더스가 미끄러져 탁자 유리 모서리에 뒷목이 찔렸던 것이다. 이 장면은 비어드가 실제 북극에서 마주쳐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던 북극곰과 안락한 자신의 집 북극곰 가죽을 올더스가 밟아 미끄러져 죽었으니 흡사하기도 하고 극단적이기도 한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적절하고 과감한 소재, 죽음을 비극이면서도 희극이 되게 처리하는 작가의 역량, 코미디적 스토리를 계속 연결시키는 상상력. 재미와 교훈이 병렬된다. 기후변화와 한 과학자의 좌충우돌 인생을 이렇듯 아이러니, 역설, 비판과 풍자, 코미디가 엮어간다. 


2005년도를 묘사하는 2부에서는 어느 하나도 개선되지 않은 비어드의 일상이 펼쳐진다. 몸무게는 7킬로가 더 나가고 나이는 다섯살 더 먹었지만 여자들을 쫓아다니는 행태는 여전한 비어드, 그러나 그는 노벨상 수상자로써의 위상이 여전하다. 행사에 초대되어 개막연설을 하고 기자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업적과 최근의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그러다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올더스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그리고 올더스를 죽인 사람은 타핀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정부나 대중은 그에게 속고 있으며 적당히 그를 이용해 자신들의 목표를 지향한다. 단 한 번의 노벨상 수상은 평생 그가 길어먹을 수 있는 우물이고 권력이다. 아름답고 희생적인 새 동거녀 멜리사를 만나고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러나 비어드는 결혼과 아이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미국 남쪽에서 올더스의 가로챈 연구로 새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3부 2009년의 시간, 비어드는 뉴멕시코 로즈버그에서 톰 올더스가 남긴 연구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그 곳에는 달린이라는 새 여자가 그를 기다린다. 그녀는 비어드와의 결혼을 계획하고 멜리사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잠시 로즈버그를 향하기 전 텍사스 엘패소의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신의 일을 총관리할 토비 해머를 기다린다. 그는 첫사랑이었던 메이지를 추억하고 그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의 어머니 앤절라 비어드는 십일 년 동안 열일곱 명의 남자를 만났다고 그에게 고백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그치지 않는 바람기는 어머니의 DNA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그는 바로 얼마 전, 의사의 경고를 들었다. 식습관을 고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지만 그는 운동을 하느니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고 어떤 결심도 음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나랑 조금 비슷하다. 이언 매큐언의 사진을 보니 매큐언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꽤 날씬할 것 같은 얼굴과 맑은 표정을 지니고 있어서 자신과는 정반대의 인물을 그린 것 같다. 어쨋든 비어드는 노쇠해지는 몸과 그럼에도 성욕을 주체 못하는 일견 엽기적일 정도의 일상을 잘 꾸리고 있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구멍이 축대 전체를 무너뜨린다. 그에게 파멸이 다가오고 있다. 

 톰 올더스의 연구서를 이전 레딩 연구소의 소장이 알고 있다. 그는 올더스의 연구를 가로채고 새사업을 시작한 비어드에게 곧 소송을 걸겠다고 변호사를 보내 경고한다. 그 소송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일에 협조하고 지금 뉴멕시코에서 시작하는 사업을 접으라고.... 비어드의 새 동업자이며 관리자인 토비 해머는 이제 그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멜리사와 딸 캐트리오나가 달린의 전화를 받고 로즈버그로 오고 있다. 자신의 남편이자 아버지를 지키기 위한 모녀의 급한 방문, 달린이 그 모녀를 물리치기 위해 그에게로 달려온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다섯 번째 아내 퍼트리스를 사랑하고 올더스의 죽음에 누명이 씌워져 8년을 감옥에서 살았던 로드니 타핀이 비어드를 만나러 와있다. 타핀은 그래도 퍼트리스를 만날 수 있느 사람 비어드를 찾아와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놔 달라는 것이다. 지독하게 집착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타핀. 그러나 비어드는 타핀의 요구를 묵살한다. 

 그리고 그런 파렴치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두 여자가 마침 들어서고 있다. 바로 앞엔 사랑스런 캐트리오나가 달려오고.... 그는 딸을 맞으려고 일어서며 심장에서 부풀어오르는 듯 생경한 기분을 느낀다. 이 심장의 느낌은 무엇일까. 병일까, 딸에 대한 애착과 흥분일까. 


 이런 작품을 아무 작가나 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기후변화, 온난화, 노벨상수상 과학자, 이 소재들을 다루려면 조사해야 할 거리가 많고 어느 정도 과학적 상식도 있어야 할테니까... 그럼에도 이 엄청난 소재를 녹이기 위해 성욕을 잃지 않는 뚱뚱하고 염치없는 코미디적인 과학자가 필요할 만큼, 소설 독자를 향한 지고의작가적 노력이 필요한 것을 보면서 참 힘들고 고단한 소설의 길을 재고해본다. 

언제나 산은 멀리 있고 그 산을 오르려는 열망은 디테일한 수고와 노력을 요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