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아마 7,8 년 쯤 전(어쩜 10년 전인지도) <이방인>을 읽었었다. 당시에 나는 '이방인'의 명성과 위상은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의 휘황함을 이 책에서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저 카뮈의 문체와 서사가 독특하다, 뫼로소의 성격이 심하게 '쿨'하다, 정도였다. 감정이입은 전혀 되지 않았다. 단지 뫼르소가 아랍인을 바닷가 바위 옆에서 충동적으로 쏠 때의 상황은 이해되었었다. 강렬한 햇빛이 모든 것에 닿아 번쩍거리고 땀과 질식할 더위에 그는 의식의 끈을 놓친 거라고, 섬멸하는 의식이 문득 총을 잡은 거라고 느꼈었다.
다시 읽게 된 <이방인>,이 번 독서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카뮈라는 작가에게 '이방인'이 없었다면 그의 명성과 그를 기리는 세계의 팬들이 결코 이 정도일 수 없었으리라는 느낌이다. 카뮈는 진정 '이방인'으로(다른 철학에세이와 희곡, 비평도 있으니 그걸 읽지 않은 상태로 너무 독단적인 결론이지만) , 단지 '이방인' 만으로도 기억될 작가군에 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방인>은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그 유명한 어머니의 부고를 전보로 받는 묘사로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뫼르소는 장례식을 다녀오고 연인 마리를 만나고 살라마노 영감을(스패니얼종의 개를 팔년 전부터 키우던 홀아비) 만나고 이웃집 남자 레몽 생테스를 만난다. 사실 뫼르소의 실제적인 불행은 이 음산하고 불건전한 레몽이 처음 시작지점을 만든다. 1부의 마지막 장면은 햇빛이 쨍쨍한 바닷가에서 다섯발의 총격을 한 뫼르소의 살인으로 끝난다. 아랍인의 죽음은 이방인에서 특별한 묘사나 설명없이, 단지 뫼르소의 사형을 언도받기 위한 매개로만 이용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카뮈가 아랍인에 대한 어떤 경시를 갖지 않았나 조금 의심스럽다. 왜 하필 아랍인인가. 당시아랍인은 프랑스에서 경시되던 식민지국민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워낙 고전화되다보니 뫼르소가 아랍인을 쏜 게 가장 작품에 잘 어울린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살인을 당한 사람이 프랑스인이든 알제리인이든, 또 다른 나라 사람이든 그건'이방인'의 작품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중요한 건 태양과 그 가차없는 빛과 뫼르소에 지나지 않는가 말이다. 어쨋든 내 생각으로는 아랍인들이 <이방인>을 읽을 때 드는 생각은 결코 우리와 같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2부는 뫼르소의 감옥생활과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1부와 다르게 자세히 기록되고 뫼르소의 성격이 이랬던가 싶게(이전의 그는 너무나 쿨했지만 이제 그는 그저 쿨한 성격이 아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어떤 관심을 보여준다. 하긴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와 있으니 사람인 이상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그는 여러 번(1년 넘는 감옥생활 중) 법정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심각할 정도로 정직하다. 그는 사회적인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이 살인사건이 아니라도 언젠가 어떤 일이 빌미가 되어 추방될 만큼 그는 사회부적응자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감정이 없는 인간, 괴이하고 냉정한 괴물로 치부한다. 법정은 점점 사건보다 그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국면으로 나아간다. 그는 자신이 그들의 연극에서 제외되고 그들이 자신을 일방적으로 왜곡된 평가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그걸 바로잡을 권리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교도소 부속사제가 회심을 권유한다. 이에 뫼르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자신은 신을 믿지 않으며, 닥쳐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것은 진리이며, 자신은 숙명을 받아들인다고, 사제의 멱살을 잡고 소리친다.
그는 죽음을 기다리며 행복한(?) 나머지 감옥의 일상을 보낸다.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이 책의 총 페이지는 270페이지이니 마냥 얇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아이러니이다. <이방인>본문이 136쪽이니 텍스트가 반이고 나머지 반은 부록인 셈이다.
이들 부록 중에서 카뮈가 '이방인'의 주제를 자신의 입으로 가장 명철하게 보여주는 것은 "미국판 서문'이다. 카뮈는 이 글에서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 가식이 없는 인간이며 한 군데도 어두운 구석을 남겨놓지 않는 태양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유죄를 선고받는다,라고. 작가의 말이니 당연히 명징한 주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 또한 그렇게 느낀 것에 뿌듯하기도 하다. 살인을 옹호해서는 절대 안 되지만 나는 이런 뫼르소의 정직성에서만큼은 영웅적이라고 애정을 표하고 싶다.
또다른 부록으로는 로제 키요의<<이방인> 50주년 기념 논문>과 역자의 <작품해설>이 이어진다. 특히 김화영 교수의 57페이지를 아우르는 꽤 길고 세밀한 작품 해설은 <이방인>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주고 있으며, 텍스트를 구조적으로 탐색하는 데에 뛰어난 시각을 보여준다. 이 해설을 통해 작가의 글쓰기의 체계적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역자 또한 글쓰기의 주체이며 독자들에게 작가 못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방인>의 모두의 짧은 문장, 마지막 긴 한 문장, 수많은 소설 중에서도 이 작품만큼 유명하게 남은 문장은 몇 없으리라. 카뮈가 천재적인 작가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런 작품이 그의 젊은 나이에 탄생했다는 것은 숙명적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일에 가끔 숙명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 내려온 것일까, 아님 단지 인간의 걸음이 이끌려간 우연일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