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악마와 선한 신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지영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권 째이다. 이 전집을 다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젊어서 왜 난 책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회한이 요즘 정말 많이 든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 매일 절감한다. 책 한 권이 인생의 한 단면을 일깨워주곤 한다.
이 책은 단연코 생각할 빌미를 제공한다. 사르트르의 철학이 무대를 얻어 구체적인 일상어로 표현된 희곡이다. <닫힌 방>은 그의 파격적인 일갈, "타인이 지옥이다"를 형상화한 작품이며, <악마와 선한 신> 또한 신은 죽었고(애초에 없었고), 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한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이 작동시킨 작품이다.
<닫힌 방>은 83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소극이지만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르생은 死前에 반전운동 신문을 주간했으나 탈영하다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이네스는 우체국 직원이었으며 동성애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을 자살로 몰아넣고 끝내 그 애인과 가스사고로 죽었다. 또다른 젊은 여인 에스텔은 젊은 애인과 불륜 관계로 얻은 아이를 살해하고 폐렴으로 죽었다.
세 사람은 사후에 출구가 없는 방에서 함께 기거하게 되는데, 그 곳은 벽난로 위에 청동상이 하나 있을 뿐, 창문도 없고 밤이 없는 낮만 지속되는 지옥의 세계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물이 등장하지 못하는데 바로 거울이다.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타인의 눈동자를 통해야만 하니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옥의 또다른 면을(타인이 지옥인 이유의 증거) 일깨워준다.
에스텔은 가르생을 원하고 가르생은 자신이 비겁하지 않다는 확신을 이네스에게서 얻어내기를 원하며 이네스는 가르생이 사라지고 에스텔과 단 둘이 있기를 원한다. 셋은 서로의 원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자기에게 불필요한 한 사람이 사라지기를 원하지만 이 지옥의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다. 그 방은 출구가 없는 영원한 지옥이니까.
'닫힌 방'은 지옥이 아니더라도 이 지상에 무수히 많이 존재하리라. 어쩌면 지금 도시의 대다수의 집들이 '닫힌 방' 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원하지만 완전히 가질 수 없고, 어쩌다 시작된 증오가 천정 아래 흐르는 공기 중에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르트르의 직설. 그것은 영원한 인간의 화두일 것이다.
<악마와 선한 신>은 230페이지 정도이니 닫힌 방의 3배 가까이 되는 분량이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주인공인 괴츠의 변화무쌍한 이념이 놀랍도록 획기적으로 펼쳐진다.
이야기는 16세기 독일 농민전쟁을 전후한 여러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한다. 대주교와 사제들, 제후들과 농민들, 부르조아들이 등장한다. 괴츠는 보름스의 영주 콘라드의 동생인데 사생아이다. 그는 악인이다. 그는 악을 행하는 것을 일종의 자부심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다 가난한 자들 편에 섰으나 사제들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배신하는 신부, 농민들 편에서 싸우는 급진적 혁명가를 만나게 된다. 괴츠는 그들과 언쟁을 벌이다 내기를 건다. 자신이 지면 선을 행하겠노라고. 그는 주사위게임에서 진다(사실은 그는 지는 쪽을 선택한다).
그는 선을 행하기 위해 형에게 받은 유산인 땅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사랑을 전하려 한다. 그리고 '태양의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만든다. 하지만 반란군들에게 공동체는 파괴되고 그의 형제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그는 어디에도 신이 없다는 걸 명징하게 확인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해아 할 일은 결국 인간을 향한 행위 밖에 남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농민군을 지휘하게 된다.
줄거리를 일일이 쓸수가 없다. 다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다. 하지만 괴츠의 변화과정은 명약관화하다. 악마의 편에 선 인간--선한 신의 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신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존재하는 것은 인간들뿐이니 인간을 향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자각하는 인간.
사람이 몇 십 년을 산다고 할 때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심사숙고 후에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운명에 기대지 말고 현실에 주저앉지 말고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해야 간신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내 삶의 끝은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 삶은 언제나 주어지지만 최선의 삶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
사르트르가 지금의 내 말을 들으면 빙그레 웃으며 자만할 것이다.
사르트르-존재(실존)는 본질에 앞선다. 존재는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나간다.
** 존재(실존)는 곧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