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쯤 목로주점을 읽었다. 에밀졸라의 필력과 그 사유의 세계, 그리고 세세하고 생생한 묘사와 이야기에 완전히 함몰됐다. 받은 감동과 경탄을 내 안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 짧은 글로나마 남겨두어야겠다.
선입견이란 가당치 않다. 목로주점이라는 제목 때문에 그럴싸한 낭만적인 연애소설이나 에세이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 그려진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그 목로주점이 아니었다. 낭만이나 애수는 유치한 선입견이고 일일 노동자들이 간신히 저녁시간 잠시 노동의 피로를 잊고 술을 마시다 주머니를 다 털어내는 불량스런 주점이라고 하면 온당할 주점이었다. 더구나 결말은 너무나 참혹한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제목에 대한 반감을 떨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여러가지로 겹쳐서 오는 걸까.
한쪽 다리를 살짝 절고,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파리로 올라온 후 남편은 다른 이웃집 여자와 도망을 가고, 다정하고 살뜰했던 재혼한 남자는 다리를 다친 후 전혀 다른 인간이 돼 버리고, 하나 밖에 없는 딸은 불량스럽고 음란하며, 동네 사람들과 친척은 비웃고 조롱하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구제와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이 말이 생각난다.
왜 막가는 거지? 왜 되는 일이 없지? 왜 이렇게 비루하지, 인생이?
제르베즈가 뭘 잘못했다고, 그녀가 무슨 원한을 지게 했다고, 그녀가 언제 나태하고 타락했다고 세상은 그녀를 그렇게 못살게 군걸까.
에밀 졸라는 정말 인간의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백프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성숙하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차츰차츰 깨닫게 되고 자신을 더 고고한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애쓰기도 하는 게 인간이 아닌가.
하지만 졸라의 시각은 너무나 훌륭하다. 실제로 자신의 태생과 지리적 환경적 제한 때문에 자아를 완성하지 못하고, 자기를 실현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지구 위에 얼마나 많았던가. 가난 때문에 몇 십 년을 오직 돈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자연주의적 이론, 결정론 등이 많은 사람들의 생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목욕탕에서 제르베즈와 나쁜 그 여자(이름을 벌써, 아니 책 덮자마자 잊었다)와의 광란적인 싸움,
제르베즈 결혼식 날, 초라하고 촌스런 지인들이 떼지어 루브르 박물관을 헤매는 모습,
개업한 세탁소에서 저녁부터 흐드러진 잔치를 벌이는 모습,
구제를 찾아가 어마어마하게 큰 철공소에서 남자들과 기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장면,
아내를 폭행해 숨지게 하고, 자신의 첫째 딸에게 인형에게 하듯 쉼없이 때리고 학대하는 다른 층 알콜중독자의 소름끼치는 공포스런 장면,
눈이 날리는 파리의 외곽지역을 몸을 팔기 위해 헤매는 제르베즈의 모습,
그리고 거기서 하필 우연히 만나게 된 구제, 구제의 집에서 따듯한 음식을 먹고 이제 정말 구제와는 모든 게 끝난 상황이 되고, 구제는 침대에 쓰러지며 운다.
너무나 가슴이 아려오는 이 장면 등등.....
모든 장면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확실한 이미지를 남기는 묘사였다.
에밀졸라에게 영원한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