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졸라의 작품을 연이어 읽고 있다. 자의는 아니고 로쟈샘의 프랑스문학 읽기에 따라가는 형태다. 이 강좌를 수강하기 잘했다는 확신이 다시 한 번 각인되었는 바, 이는 어젯밤 읽기를 마친 <돈>때문이었다. 나 혼자서라면 564p에 달하는 이 책을 읽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전의< 여인들의 행복백화점>도 그렇고, 그 전의 발자크도 마찬가지였으며 지난 학기 독일문학 역시 그렇다.
정말 몇 백 페이지를 구준히 읽어내는 일은 체력과 인내를 요한다. 물론 책을 읽으며 몰입되는 과정에서 작품 자체가 나를 견인하기도 하지만 어느정도의 목적의식이 있어야 독서도 가능하다.
물론 내겐 목적이 있다. 단순한 책읽기는 아니다. 나는 배우기를 멈출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에밀 졸라는 경탄과 존경을 자아낸다.이 대작가는 아마도 인간사 전체를 꿰뚫고 있었던 것 같다.인간들의 유형과 그들의 본성, 그들의 환경과 그 속에서의 고투와 작태, 심리, 그리고 그 여러 요인들이 빚어낸 인생과 그 결말.... 자연주의적 작품들이니, 그의 사상을 실험한 소설들이니 오죽 더 할까.

<돈>을 읽고 느낀 점을 대강 적어보면,

주인공 사카르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사실은 돈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일치할 것 같다. 그 점은 작가가 카롤린의 심리를 설명하는 데에서 여러번 언급되는데 작가는 카롤린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내보이고 있다해도 그닥 틀리지 않으리라 본다. 모든 작가는 자기가 긍정하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드러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카롤린은 은행을 설립하고 주식을 발행하는 사카르에게 처음에는 동의와 찬사를 보내지만(사실 그녀는 감사의 마음까지 지녔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카르의 공격적인 증자와 주가의 상승세에 불안과 불신을 갖게된다.
결국 그녀의 불길했던 예감은 사카르와, 그와 주식을 함께 나눴던 수많은 사람들의 파산으로 끝나고 그녀는 사카르를 증오한다. 그러나 오빠의 권유로 그를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그녀는 사카르를 용서하게 되고 그의 끝없는 생명력에 오히려 매혹당한다. 그녀는 방탕하고 무분별한 사카르를 왜 여러번 용서하고 참았던가?
그것은 무엇보다 언제나 생기를 지니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그의 넘치는 생명력에 감동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추론인데 사람른 누구나 어린아이같은 순수성과 그 뛰노는 행동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빠져드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행동하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람에게 매혹당한다.
그러나 마조의 비극, 보빌리에의 참혹함,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파산을 생각하면, 그래도 사카르가 인간적 매력으로 그 죄를 환치할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그가 인간적인 또는 남자로서의 매력, 더구나 세상을 잠시 환하게 밝혔던 그 재능에도 불구하고 숱한 사람들의 파멸을 불러온 책임에서 자유로워서는 안되니까.

또 이 작품에서는 인물을 다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장면에서 한 인물의 상반되는 모습을 그렸다.
사카르의 면면은 말할 것도 없고 카롤린조차 가끔 이랬다저랬다 한다. 그러나 이 점에서 가장 확실하게 떠오르는 인물은 아마도 뷔슈일 것이다.
그는 시기를 놓쳐버리고 주인을 잃은 채권들을 모아두었다가 끝내 그 행방을 찾아내 어떻게해서라도 돈을 받아내는 치밀한 악덕브로커이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자신의 동생을 보살필 때는 너무나 지순하고 자애와 서글픔이 가득한 행위를 보여준다. 동생을 위해 그렇게 극악스럽게 살고 있다는 인상까지 줄 정도이다
졸라는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진정한 악인은 몇 되지 않는다. 진정한 선인도 아주 드물다,라고......
사실 뷔슈같은 인물은 의외로 많다. 우리는 악인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하는 행동들을 미루어 알고 있다.
그들은 돈을 벌기위해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되어 가족을 지키려 함일까, 아니면 정말 나쁜 사람인데 가족에게만 상냥한 사람들일까, 둘 다 일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내 생각은 이렇다. 뷔슈는 악인이다. 메솅도 아주 악질적인 인간이다.
이 작품 속에서 끝까지 진실한 사람은 아믈랭과 뷔슈의 동생뿐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진실대로 살기 어려운 비극성을 띤 사람들이다.
나머지 인물은 모두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꾸는, 야비하고 기회주의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애처로운 사람들이다.

<돈>의 인물들이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 즐비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타락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욕망의 끝에서 아둥바둥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완전하지 못한 열정과 욕망이 문명을 이루고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들의 탐욕과 비도덕적인 행위가 세상을 후진시키기도 하며 다수를 공포에 떨게 하기도 한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이다. 한 번도 완전히 도덕적이었던 적이 없었고 완전히 타락에 맡겼던 적도 없었던,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과정 속에 있다.

시간이 된다면 에밀 졸라를 다 읽고 싶다.
읽어야할 책은 무궁하고 볼 수 있는 책은 유한하다. 너무 유한해서 문제다.

에밀졸라에게 경의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