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튜트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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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인스티튜트 1-2]을 읽었다. 꽤 오래전에 유리겔라가 TV에 나와 숟가락을 휘게 만드는 장면을 보고 초능력자가 나타났다고 난리가 났었다. 마술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에게 이런 놀라운 능력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방송이었다. 그 방송 이후 모든 아이들은 유리겔라를 흉내내며 집안의 숟가락을 다 휘어놓겠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밥 먹는 숟가락은 너무 단단해서 힘으로는 휘기 힘들지만 찻숟가락 같은 것은 냉동된 아이스크림을 푸다가도 휘어지기에 유리겔라와 같은 초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뻥치기가 쉬웠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유리겔라는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냥 마술과도 같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닥 놀라지도 않은 것 같았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식의 냉담함이 흐르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우리 삶에는 과학적 사고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간혹 생겨나곤 한다. 

이번 작품에서 스티븐 킹은 어떤 ‘시설’을 만들어 낸 이들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어린이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능력을 키워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에 사용하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팀이라는 전직 경찰이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웃돈을 받고 다른 승객에게 양보하며 시작된다. 이후 팀은 특별한 계획없이 전전하다 듀프레이라는 작은 마을의 야경꾼 직을 받아들인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보면 지역적으로 너무 넓어서 그런지 보안관의 역할과 권한이 상당히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보안관은 여러 명이 있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되었을 때 철저히 보안관의 판단에 따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야경꾼은 일명 밤샘순찰을 하지만 총을 휴대할 수 없는 부보안관과 같은 정식 경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루크라는 천재 소년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루크는 12살의 나이에 MIT와 에머슨에서 복수 전공을 할 수 있도록 추천받은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밤 괴한들의 침입으로 엄마와 아빠는 살해당하고 루크는 자신의 방과 비슷하게 꾸며진 곳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루크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TP(텔레파시)와 TK(염력)의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시설의 관리인들은 이 특별한 이들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사를 놓고 테스트를 하며 아이들을 고문하듯이 괴롭힌다. 실험대상이 된 이들은 몇 주간 테스트를 거쳐 뒷 건물로 옮겨지게 되고 그곳에서 시설의 목적 달성을 위해 특정한 인물이 사고사나 자살과도 같은 의문의 죽음에 이르도록 텔레파시와 염력을 사용하게 된다. 시설을 만든 이들의 이론은 예지자와 같은 더욱 특출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어떤 예언을 하게 되면 대상이 된 인물을 추적 관찰하며 그 인물로 인해 발생될 위험을 사전 방지하기 위해 루크와 같은 아이들의 능력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어느 정도 이야기의 결말이 예상되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루크가 시설에 도망쳐 팀과 만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는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스릴이 넘치고 서스펜스가 주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루크를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첫 머리에 스티븐 킹은 “국립 실종 학대 아동 방지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약 80만명의 어린이들이 해마다 실종 된다. 대다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수천 명은 그렇지가 않다.(13)”라는 말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그렇게 실종된 아이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이들을 학대하며 목적을 이루려는 그것이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이미 악한 의도가 들어간 시설의 관리인들은 어디서부터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린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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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정덕현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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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칼럼니스트의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를 읽었다. 써놓고 보니 제목이 무지 길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한다면 제목을 알려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 포털사이트 연예계 관련 기사에서 자주 보았던 대중문화 평론가의 글이라니 주저없이 선택하게 되었고, 역시나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고 솔직 담백한 저자의 고백이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우리나라 남녀노소 중에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덕후는 아니더라도 드라마 한 두 편 정도는 지속적으로 보는 게 우리가 쉬면서 즐기는 문화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소위 대박을 터트린 감독과 작가의 만남이라고 예고되는 작품들은 무조건 본방사수를 강요당하는 게 까십거리를 내뱉기 위한 필수요건이 아닌가 싶다. 통속적이든, 막장이든, 센세이션하든 각자 취향에 맞는다면 시간을 보내기 제일 좋고 또 보면서 의외로 많은 위로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를 본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강의를 앞두고 PPT를 만드는 중에 구체적인 예를 들기 위해 멜로 드라마를 찾아보았다. 우연치 않게 ‘연애의 발견’을 보게 되었고, 드라마 작가가 혹시 내가 강의 중에 충분히 써먹을 수 있도록 알고서 대본을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막히게 알맞은 대사를 듣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녹화되지 않은 드라마를 다시 보기가 요원했을 테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손쉽게 작은 비용으로 다운 받을 수 있었고, 또 편집하기도 쉬운 프로그램도 많아 나같은 초보자도 영상 잘라내기를 통해 원하는 대사가 들어간 부분을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루하다못해 아예 안드로메다로 영혼이 가출한 것 같은 학생들이 달달한 대사가 나오는 드라마의 한 부분을 보고 꺅 소리를 지른다거나 너무나 몰입해 그 다음 강의를 이어가기가 힘들 정도였다는 것은 함정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강의 평가의 내용을 보거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후일담은 방학을 맞이해서 ‘연애의 발견’을 정주행하며 인생드라마가 되었다며 뜬금없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 
 
이후 다른 드라마로 교체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 멜로 드라마가 나오면 간간히 살펴보긴 했는데, ‘연애의 발견’처럼 적절한 대사가 나오는 작품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작년에 방송된 ‘멜로가 체질’이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늦었지만 정주행해 보았다. 작품 말미에는 시청률이 1%로도 안 나왔다고 스스로 디스하는 주연배우들의 열연이 몹시나 안타까울 만큼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아니 대체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왜 사람들이 안 본거지? 연기와 대사와 OST 까지 그야말로 ‘As good as it gets’ 라고나 할까! 다음에 강의를 하게 된다면 적절한 소재가 될 것 같다. 

“나이 들어가는 건 마치 망가져가는 것만 같다. 괴로운 일, 힘든 일을 많이 겪다보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망가져가는 것 같아 얼굴에 영양크림을 바르고 머리를 염색하고 젊은 세대들의 문화를 기웃거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갯벌을 떠올린다. 조금 망가져도 괜찮다고, 그것도 즐거울 수 있다고. 적어도 누군가 찾아왔을 대 안심이 되는 정도의 적당한 망가짐은 ‘멋’일 수 있다고. <나의 아저씨>의 그 오래된 선술집처럼.(19)”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시간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조금 비관적이긴 하지만 혹독하네.-멜로가 체질 중에서 (28)”

“당신은 지금 편안하게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분명 주변의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있을 게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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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 양장)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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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을 읽었다. 책장을 덮으며 한 동안 ‘카야’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한동안 계속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거의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해왔는데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고 예상을 뛰어넘어 밀리언셀러에 등극하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첫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소설의 모범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습지에 대한 묘사와 등장 인물들간의 긴장감, 팽팽하게 연결된 플롯이 뒤로 갈수록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저자와 번역가와의 대담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워낙 속도가 빨라서, 플롯이 신속하게 전개되기를 바라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묘사적 글쓰기가 플롯을 느리게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기에, 작가는 속도감을 늦추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생생히 살릴 수 있는 문장들을 고르고 골라야 합니다. 저는 독자가 생생한 세부 묘사를 통해 배경을 보고 체감하며 그 순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한 단어들을 찾으려고 열심히 고민합니다.(463)”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시리즈’ 등을 우리가 읽기 힘들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묘사가 너무 장황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도대체 이야기가 언제 진행되는 것인지, 어떤 저자는 한 페이지도 넘게 그 상황을 묘사하니 사건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성미 급한 독자로서는 속터지는 마음에 책을 덮어버리고 만다. 인내롭게 묘사의 장면들을 넘기면 마치 보상이라도 해 주듯이 다른 소설에서도 봤을 법한 비슷한 사건임에도 전혀 다르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엇인가를 건드려 준다. 클래식의 묘미는 바로 이렇게 진득하게 소중한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어서 내가 숨겨 놓은 것을 찾으라고 저자가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가독성이 높은 소설은 쉽게 읽히고 이야기의 흐름도 빠르기에 진도가 팍팍 나가지만 나중에 책을 덮고 나면 뭔가 공허함만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저자의 말처럼 묘사와 플롯이 적절히 배분되어 우리에게는 생경한 습지와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던 ‘카야’의 쓸쓸함이 오랜 시간 마음에 머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인공 카야는 7살의 나이에 폭력과 도박과 술에 절은 아버지와 둘만 습지의 판자집에 남겨지게 된다. 얼마 후 아버지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카야는 생존을 위해 홀로 살아가야만 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글도 모르던 카야에게 테이트라는 소년이 다가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가까워지지만 테이트는 카야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카야를 떠나고 만다. 다시 홀로된 카야는 마을의 망나니 체이스의 꾐에 넘어가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소설에서 체이스는 본능적인 우리 내면의 일부를 표상합니다. 발정 난 수사슴이고 남을 밀치고 유혹해 끝내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공격적인 인간이지요. 우리 모두, 남녀를 막론하고 체이스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테이트는 ‘더 인간적이고 더 진화되고 더 예민한’ 우리의 자질, 본능이 아닌 학습된 행동을 표상합니다. 시를 사랑하고 친절한 사람이지요. 우리에게는 테이트와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어느 쪽도 온전히 좋거나 나쁘지 않지요.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살면서 테이트보다 체이스 같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선천적으로 각인된 행동은 강력하고 생존을 정조준하기 때문이지요.-저자의 대담 중에서(468)”

누군가를 고립되도록 버려두지 않는 것, 전력을 다해서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을 놓치지 않는 것.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할 중요한 몫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카야를 망가뜨린 체이스가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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