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자취 요리 :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 띵 시리즈 4
이재호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재호 님의 [프랑스식 자취 요리: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4번째 책이다. 곧 의사선생님이 되실 분이 프랑스로 요리 유학까지 다녀와서 이렇게 글까지 잘 써도 되는거야? 라는 반문이 나올만큼 술술 잘도 넘어가게 요리를 잘 하는 만큼 맛깔나게 글을 쓴 것 같다. 아무리 의대를 다니다 유급을 당했다고 해도 그렇지 갑자기 프랑스로 건너가 요리를 공부할 결심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냥 학교를 졸업한게 아니라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요리 공부도 열심히 했다면 분명 저자에게는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재능이 있었을 것이다. 재능에 좋아하는 열정까지 더해졌으니 말해서 무엇하리. 요즘은 아마도 자취를 하며 스스로를 먹이는 일에 열중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도 큰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듯이 프랑스 요리가 이탈리아 요리보다 비싸서 그런지 프랑스 요리하면 특이하고 비싸지 않을까란 선입견이 생긴다. 이탈리아 음식인 피자와 파스타는 너무나도 보편적이 되어버려서 나이 드신 분들도 파스타를 아무렇지 않게 드신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파스타를 못 먹는 남자들이 꽤나 있었는데 말이다. 주변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쉽게 볼 수 있지만 프랑스 레스토랑은 찾기 힘든 것도 프랑스 음식을 접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책에서 이탈리아 음식이 주로 탄수화물 위주이고 프랑스 음식이 단백질과 지방 위주라는 것을 보고 프랑스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이 건강에는 더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입에는 탄수화물이 큰 즐거움을 주니 큰일인 것이다. 

올해 8개월 간 생애 첫 자취를 하며 혼밥을 물리도록 해봤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해 주니 그리 걱정할 것은 없지만, 문제는 반찬이었다. 처음에는 예전처럼 먹기 위해 밥과 국을 꼭 준비했다. 그런데 준비한 국을 다 먹으려다보니 반찬을 잘 먹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날 부터인가 아예 국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역시나 국이나 찌개가 없으니 반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전동’식사, 전날과 동일한 반찬의 식사라는 나만의 줄임말로 대체 며칠까지 같은 반찬으로 먹으면 지겨워질까가 아니라 이 반찬으로 며칠까지 맛나게 먹을 수 있을까란 시도도 해보고, 무엇보다도 가사 노동이 얼마나 지겹고 힘든 일의 반복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런 걸 평생 해오신 어머니의 노고를 감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듯 하다.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그때 그때 다르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먹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음식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고 또 사랑을 전한다. 응어리진 마음이 음식을 통해서 사르르 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음식으로 화가 나기도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형식적인 인사나 ‘꼭 식사대접하고 싶습니다’라는 간곡한 감사의 인사는 결국 우리가 음식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순간과 선택의 연속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 살아보니 무엇이든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없었다. 심지어 좋다고 생각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렇게 좋지는 않았거나, 나쁘다고 생각했던 일도 뭐 그리 나쁜 일이 아니기도 했다. 수없이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고 버티고 나아가려는 내가 좋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닥치든 나 자신을 방치하고 미워하기보다 아끼고 사랑해줄 것이다. 적당한 하루에 만족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지. 매 순간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 가을 2020 소설 보다
서장원.신종원.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 보다: 가을 2020]을 읽었다. 수록작으로는 서장원 작가의 [이 인용 게임], 신종원 작가의 [멜로디 웹 텍스처], 우다영 작가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이렇게 세 단편이다. [이 인용 게임]에서 화자인 ‘나’는 헤어진 연인 노영과 친구처럼 다시 만나고 있다. 노영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자 곧바로 요양원에 수속을 받고 들어가게 된다. 자식에게 부담을 지우려 하지 않는 부모의 배려일 수도 있겠으나, 노영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머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며 노영을 기다린다. 화자는 노영과 호주에서 만나 알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랑을 시작하고 종결한다. 그들에게 호주에서 있었던 어떤 한 사건이 노영의 죽은 오빠 준영과의 일을 떠올리게 만든다. 노영은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머물던 숙소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나오게 되자, 홧김에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의 일기장을 훔쳐온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어느 날 호주에서 일기장을 돌려달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노영은 화자에게 그 일기장을 혹시 갖고 있냐고 물으며 오래전 병을 앓다 죽은 오빠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어린 나이에 중병을 앓게 되자 노영의 부모님은 만사를 재치고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게 되고 노영은 부모님의 관심에서 배제된 채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특히나 아픈 아들이 보드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자, 노영의 엄마는 온갖 종류의 보드 게임을 공부하며 아들과 이 인용 게임을 하게 된다. 화자가 왜 같이 하지 않았냐고 묻자, 보드 게임은 주로 이 인용이거나 아니면 다 인용으로 셋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오빠가 죽은 후 노영은 보드 게임을 중고 거래로 팔아 하고 싶었던 일을, 사고 싶었던 것을 산다. 그리고 화자는 노영이 남기고 간 패트릭의 일기장을 아주머니에게 돌려 주려 했으나, 그녀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일기장을 맥도날드 쓰레기통에 남은 감자를 버리기 전에 버렸다고 고백한다. 전쟁에 참가해 전역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한 패트릭의 일기장과 중병을 앓다가 죽은 오빠 준영이 좋아했던 보드 게임은 그들 어머니의 사랑의 매개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기억나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나 영혼의 본질을 정보라고 보았다. 그 사람이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정보가 곧 그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며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재생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정보의 형태가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영혼을 명제 혹은 일종의 법칙이라고 해석했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단순하고 우아한 공식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공식으로 우주 어디에서나 영혼을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104)”

“감정과 기억에 관해서도 저는 곧잘 확신하지 못하거든요. 내 감정은 단일한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 아니고, 내 기억은 온전히 나에게서 비롯된 기억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분에, 표정에, 사연에 감정 이입하고 내 것이 아닌 슬픔을, 기쁨을, 분노를, 공포를, 때로는 거의 유사한 고통을 취할 수 있어요. 또한 전대 인류가 축적한 지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역사와 윤리와 미학을 공유하며,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동조되고, 그들의 말과 기억에 의해 믿음, 편견, 혐오에 빠지기 쉬우며, 때론 누군가의 추억이 고스란히 나의 추억이 되기도 해요. 리베카 솔닛은 사람은 모두 식인을 통해 살아간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식인은 살과 피가 아니라 타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의 취함을 의미하잖아요. 저는 이 말에 정말 동의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먹히다는 것. 뒤섞이고 있다는 것.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숲이라는 것. 무수한 전생이 축적되어 서로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영혼들은 여기서 시작되었어요. 저는 그들이 어떤 존재에 포함된 작은 세포이며 자신의 이름과 기능을 까맣게 모르는 채로 죽을 때까지 서로를 돕고 서로를 공경하는 하나의 몸이 아닐까 상상했어요.-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 마포구 사람인데요?
다니엘 브라이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니엘 브라이트의 [“저 마포구 사람인데요?”]를 읽었다. ‘단앤조엘’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영국 아찌가 우리 말로 책까지 냈다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유튜브 채널은 본 적이 없는데, 중간에 등장하는 ‘영국남자’는 우연히 본적이 있어 다시 살펴보니 구독자 수가 어마어마했다. ‘단앤조엘’의 채널도 조만간 더 유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2012년에 한국에 처음 왔다고 하는데 십년도 안되어 이렇게 한국말을 잘한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한국인 아내를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이 이렇게 일취월장한 실력을 뽐내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유튜브 채널을 스크롤 하다보면 의외로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여러가지 테마로 방송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이제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구나 라는 실감이 들기도 하고, 그들의 눈에 비춰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단엔조엘’을 본 적은 없지만, 책에 나온 걸로 봐서 단은 상당히 먹방도 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보이고, 한국 음식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한국 재래시장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그곳에서 처음 만난 어르신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음주는 단의 열려있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넘쳐나는 유튜버들 중에서 구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들 채널만의 유니크함이 분명 있어야 할텐데, 단은 저서에서 그 특별함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저명한 이들과 이미 셀럽이 된 이들 말고 특이한 직종을 가진 무명의 주인공들을 섭외하여 그들만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컨셉으로 삼는 것 같다. 기존의 유명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대에서 보통 일반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낸다면 소모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위축된 이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유튜버란 직업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미나 작가의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를 읽었다. 한동안 그녀의 여행기가 출간되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아마도 다른 일을 하다가 제목 그대로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마음 수양을 통해서 이렇게 심리에세이까지 출판한 것을 보니 또 한 번 저자의 열정에 탄복하게 된다. 저자가 글에서도 썼듯이 손미나 작가 하면 오래전 유명한 아나운서였고, 보란듯이 방송국을 그만두고 나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쓴 여행기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겉으로 보아 열정이 넘치고 전세계에 수많은 친구들이 있고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자로 비춰진다.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 이가 갑작스럽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깊은 무력함에 빠지게 되었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에서 말하듯이 심리학에서 공식적으로 진단된 심리학적 증상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몸을 해치게 되는 경우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마디로 탈진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내 몸과 마음이 다 타버려서 더 이상 에너지를 생성시키는 게 없다면 다시금 그 에너지원을 되살려야 할 텐데 ‘번아웃 증후군’의 문제점은 그 에너지원을 재생시킬만한 기력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정신없이 일을 하다 휴식의 장소로 선택한 아주 좋은 휴양지에서 갑작스럽게 무력함을 느낀 저자는 불안함을 갖고 상담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루드라 상담가는 저자에게 그동안 정신의 강력한 힘에 휘둘려 마음과 몸을 돌보지 않아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라 말한다. 

정신과 마음과 몸!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고대 그리스 철학 용어로 πνεύμα Pneuma, ψυχὴ Psyche, σάρξ Sarx 이렇게 mind, soul, body의 근원이 되는 단어들이 사용되어 왔다. 저자가 만난 상담가에 의하면 특히나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정신이 주도권을 잡고 강력한 힘을 행사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돌보지 않게 되고, 결국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까지 억누르며 무조건 목표한 것을 성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요한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나의 마음은 감히 정신에게 지금의 상태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상태로 어디론가 숨어버려 정신이 더욱 더 앞서도록 내버려두게 된다. 흔히 워커홀릭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은 이렇게 지금 현재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귀기울여 들은지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휴식 시간 조차 불안해하며 오히려 일을 하고 있을 때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은 착각에 이르게 만든다. 결국 이런 불안정한 상태는 나의 정신과 마음이 담긴 몸을 상하게 하고 어느덧 고장나버린 기계처럼 그 어떤 수리와 고침으로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힘들게 되기도 한다. 저자가 쿠바에서 살사를 배운 것도, 코스타리카에서 서핑과 요가를 배우며 그동안 정신이 자신을 휘두리는 동안 숨어 있던 마음을 달래어 지금 이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나에게도 억누르려고만 했던 마음소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줌이 필요한 듯 하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흔히 무모함이라 부르는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일임을 서서히 망각해온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두려움이 많아졌다는 반증일 테다. 혹여 다칠까, 실패할까,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힐까, 손해 볼까, 후회할까, 시간 낭비 아닐까, 욕먹을 일 아닐까, 체면 상하지 않을까 두려워 몸을 사렸던 거다.(20)”

“세상일은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중요한 건 ‘어떤 것을 기대할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들이죠. 내 스승님은 말씀하셨죠. 세상 모든 대상을 식물 키우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고요. 부족함 없이 햇살과 물을 주며 사랑해야 하지만 그 식물이 얼마나 클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언제까지 생명을 유지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요. 지나친 애정은 분노의 씨앗이 된다는 걸 기억하시고 그 어떤 것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거나 정복하거나 마음대로 바꾸려 하지 마세요.(253-2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원평 작가의 [프리즘]을 읽었다. [아몬드], [서른의 반격]에 대한 기억으로 새로운 신작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더군다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 어떤 독특한 빛깔을 자아낼까 궁금했다. 재인, 호계, 도원, 예진 이렇게 4명의 사랑에 대한 군상이 제3자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인스타그램에는 벌써 4명의 가상 캐스팅이라는 포스팅이 나오는 걸 보니 드라마로 만든다면 꽤나 잔잔한 여운을 줄 것 같다. 4명의 남녀 주인공들은 현대화된 도시의 사랑을 그대로 드러내며 몹시도 세련되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변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소설의 제목인 ‘프리즘’은 예진이 어릴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서 그녀의 발에 상흔을 남긴 원흉이 되어 기억속에 잊혀진다. 비쳐 들어오는 햇살에 프리즘을 들어 하얀 벽에 비추어보면 경계가 불분명한 다양한 빛깔들이 그려지는 모습은 우리가 가진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비유적으로 그리고 있다. 프리즘은 어쩌면 사랑을 대하는 우리의 몸이 가진 개별적 특성으로 때로는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차원의 행동을 야기시키는 색깔로, 혹은 단번에 알아채버리고 누가 떼어갈까 두려워 내 품에 꼬옥 숨겨두고 싶은 색깔로 서로의 만남을 자아낸다. 프리즘으로 인한 색깔은 단지 사랑이라는 근원의 다양한 모습 중의 하나임에도 타인의 몸을 통해 드러난 사랑의 변주를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으로 인해 옳고 그름이라는 잘못된 기준을 정당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재인, 호계, 도원, 예진은 모두가 사랑 앞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처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실수를 반복한다. 그렇게 어긋나버린 사랑의 경계선은 사과와 화해의 제스쳐에도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지는 않는다. 대신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끔 조금은 유연해지고 확장된 나로 인해 새로운 사랑의 만남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등장인물들의 삶이 나와 닮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상의 공간에서라도 대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을 응원하는 것은 내 삶도 이렇게 열린 결말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상대가 마냥 우주 전체인 것만 같은 달콤함은 통산 한두 달 가량 지속된다. 그러다 석 달쯤 접어들 무렵,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게 되는 단계가 찾아온다. 우주의 시대가 차츰 저물면서 일상이 책갈피처럼 딸려 들어온다. 그러다 갑자기 현실이라는 단어가 야비한 강도처럼 두 여인을 습격하는 것이다.(63)”

“병은 영혼을 추악한 방식으로 지배한다. 정신이 꺼져가고 육체는 한 올씩 벗겨져나가며 변질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랑했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이가 된다. 정신도 육체도 낯선 이의 것으로 바뀌어간다. 그렇게 빛이 바래기 시작한 사랑은 점차 죄책감 어린 책임으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194)”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난 이렇게 반찍일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