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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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작가의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를 읽었다. 한동안 그녀의 여행기가 출간되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아마도 다른 일을 하다가 제목 그대로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마음 수양을 통해서 이렇게 심리에세이까지 출판한 것을 보니 또 한 번 저자의 열정에 탄복하게 된다. 저자가 글에서도 썼듯이 손미나 작가 하면 오래전 유명한 아나운서였고, 보란듯이 방송국을 그만두고 나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쓴 여행기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겉으로 보아 열정이 넘치고 전세계에 수많은 친구들이 있고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자로 비춰진다.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 이가 갑작스럽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깊은 무력함에 빠지게 되었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에서 말하듯이 심리학에서 공식적으로 진단된 심리학적 증상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몸을 해치게 되는 경우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마디로 탈진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내 몸과 마음이 다 타버려서 더 이상 에너지를 생성시키는 게 없다면 다시금 그 에너지원을 되살려야 할 텐데 ‘번아웃 증후군’의 문제점은 그 에너지원을 재생시킬만한 기력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정신없이 일을 하다 휴식의 장소로 선택한 아주 좋은 휴양지에서 갑작스럽게 무력함을 느낀 저자는 불안함을 갖고 상담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루드라 상담가는 저자에게 그동안 정신의 강력한 힘에 휘둘려 마음과 몸을 돌보지 않아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라 말한다. 

정신과 마음과 몸!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고대 그리스 철학 용어로 πνεύμα Pneuma, ψυχὴ Psyche, σάρξ Sarx 이렇게 mind, soul, body의 근원이 되는 단어들이 사용되어 왔다. 저자가 만난 상담가에 의하면 특히나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정신이 주도권을 잡고 강력한 힘을 행사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돌보지 않게 되고, 결국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까지 억누르며 무조건 목표한 것을 성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요한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나의 마음은 감히 정신에게 지금의 상태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상태로 어디론가 숨어버려 정신이 더욱 더 앞서도록 내버려두게 된다. 흔히 워커홀릭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은 이렇게 지금 현재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귀기울여 들은지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휴식 시간 조차 불안해하며 오히려 일을 하고 있을 때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은 착각에 이르게 만든다. 결국 이런 불안정한 상태는 나의 정신과 마음이 담긴 몸을 상하게 하고 어느덧 고장나버린 기계처럼 그 어떤 수리와 고침으로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힘들게 되기도 한다. 저자가 쿠바에서 살사를 배운 것도, 코스타리카에서 서핑과 요가를 배우며 그동안 정신이 자신을 휘두리는 동안 숨어 있던 마음을 달래어 지금 이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나에게도 억누르려고만 했던 마음소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줌이 필요한 듯 하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흔히 무모함이라 부르는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일임을 서서히 망각해온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두려움이 많아졌다는 반증일 테다. 혹여 다칠까, 실패할까,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힐까, 손해 볼까, 후회할까, 시간 낭비 아닐까, 욕먹을 일 아닐까, 체면 상하지 않을까 두려워 몸을 사렸던 거다.(20)”

“세상일은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중요한 건 ‘어떤 것을 기대할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들이죠. 내 스승님은 말씀하셨죠. 세상 모든 대상을 식물 키우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고요. 부족함 없이 햇살과 물을 주며 사랑해야 하지만 그 식물이 얼마나 클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언제까지 생명을 유지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요. 지나친 애정은 분노의 씨앗이 된다는 걸 기억하시고 그 어떤 것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거나 정복하거나 마음대로 바꾸려 하지 마세요.(2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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