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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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를 읽었다. 여러 작가들의 책에서 인용되는 소설이기에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고,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어이없게도 스포일러된 결말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김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결론을 알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촘촘한 법정 판결 기록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 피오나의 긴장된 심리는 겉으로 보이는 완벽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딜레마와 같은 어려운 선택의 순간과 그로 인해 감당해야할 무게가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피오나 메이는 고등법원 판사이다. 피오나는 판사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다보니 어느덧 아이를 갖지 않게 되었고,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해 조금은 미련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해도 아이가 없는 이유가 남편과의 불화를 가져오지 않았고 그들은 별 문제없는 부부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잭은 피오나에게 불같은 열애를 해보고 싶다며 외도를 허락해 달라는 얼토당토 되지도 않는 말을 내뱉는다. 잭은 피오나를 사랑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한 번 끓어오르는 성욕을 해소해보고 싶은 것이다. 피오나는 잭의 부탁을 애써 외면하며 잭과의 이별 후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잭이 외출하자 집 열쇠를 바꾸며 만일 잭이 찾아오지 않을 경우의 비참해질 자신을 상상해본다. 그럼에도 피오나는 프로답게 주어진 소송 판결을 마무리하며 일상을 버텨낸다. 잭과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에게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배당된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애덤이라는 17세 소년이 백혈병에 걸렸지만 수혈을 거부하고 있고, 병원 측에서는 환자와 보호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소송에 대한 판결이다. 애덤의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기에 피오나는 사흘 안에 판결을 내려야 했다. 소설에서는 애덤의 변호인이 왜 그가 수혈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리고 병원 측에서 수혈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마치 법정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여호와의 증인을 그냥 사이비 종교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고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고 수혈 또한 거부하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그들의 태도에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피오나가 애덤을 만나 그가 왜 수혈을 거부하는지에 대한 존중하는 태도의 대화를 보며 애덤이 가지고 있는 신실한 종교적 신념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생각 또한 존중 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애덤은 피오나와 나눈 대화로 마음을 바꿔 수혈을 받게 되고 백혈병을 치료 받아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애덤은아버지와의 마찰을 무릅쓰고 더 이상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피오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피오나는 애덤의 편지를 받고도 답장하지 않게 되고, 다른 도시로 순회판결을 나간 곳까지 애덤이 찾아오게 된다. 애덤과 만나게 된 피오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애덤과 이야기를 나누다 충격적인 제안을 받게 된다. 

피오나의 외면 이후 다시 백혈병이 재발했지만 수혈을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 애덤의 소식을 연주회 도중 듣게 된 피오나는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무너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외도를 하려던 자신을 책망하며 돌아온 잭은 피오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피오나의 불안한 모습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피오나는 잭에게 애덤과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영국 법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가정 불화에 대한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단지 먼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언제든 양날의 검을 가진 판단을 내려야 하는 갈래길을 놓였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애덤의 진실한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피오나가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장면을 통해 결국은 종교가 만들어낸 갈등조차도 진심을 기울인 배려만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익히 알고 있는 명제가 가슴 깊이 와닿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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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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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택 기자의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를 읽었다. 얼마전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을 읽으며 알게된 책이다. 장강명 작가도 전업작가로 글을 쓰기 전에는 기자였기에 저자의 삶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급성 배혈병이라는 혈액암은 말로만 들어도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담긴 글을 읽으니 몇년 간 겪었을 극심한 고통이 조금은 상상되어 잘 모르는 분임에도 연민과 아픔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추천사에 담겨 있는 것처럼 저자의 긍정적인 기운이 담겨 있어 희망찬 마음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젊고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무엇보다도 아내와 두 딸이 있는 가운데 어쩌면 황망히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게 진짜 나에게 닥친 일인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고가 정지되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인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감이 밀려오며 이 심각한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할지 모른다. 

저자가 담담히 고백하고 있지만 몇년 간의 투병 생활, 특히나 두 번이나 암이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의 심리적 충격은 실로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암으로 인해 받게 된 선물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시선을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동안 간과해 왔던 소중한 것들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음에 감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존경스럽다. 

책을 읽으며 지금도 병실에서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힘과 용기를 낼 수 있기를, 그리고 건강한 삶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닌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넓힐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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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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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은희경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권여선 [실버들 천만사], 정한아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최은미 [내게 내가 나일 그때], 기준영 [들소] 이렇게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번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단편만의 미완결된 이야기들의 특색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며 그 이야기의 후반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던 소설을 읽던 항상 결말이 궁금하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결말을 알아야 속이 시원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의 단편들은 이렇다할 결말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우리 삶을 닮아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그냥 가공할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일상 속의 인물이라는 점이 때로는 마치 내가 등장한 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현실감은 소름을 돋게 만들고 이리도 지지멸렬한 삶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란 한숨을 불러일으킨다. 

대상을 받은 김금희 작가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페퍼로니가 뭘 뜻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주인공 은경은 엄마의 죽음 이후 거처를 옮기려는 찰나 아주 오래전 대학 선배였던 기오성의 관한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받게 된다. 그리고 기오성과의 옛 추억이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진다. 은경과 기오성은 대학 은사 교수의 부탁으로 교수 집안의 오래된 족보 정리를 위해 교수의 고택에서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교수의 손녀 강선을 만나게 되고, 강선은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다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지내며 넌 어디에서 왔니? 라는 질문에 어이없게도 페퍼로니에서 왔어라는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페퍼로니는 바로 강선이 제일 좋아하는 피자 종류이다. 이후 은경은 기오성과의 사랑이 시작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은경이 자리를 비운 기간 기오성과 강선 사이에 뭔가 있었을 것이라는 오해로 기오성과 멀어지게 된다. 이후 기오성은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청년 정책을 비판하다가 보수정당에 들어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고 어느날 행방이 묘연해진다. 기오성은 강선에게 들었던 대답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만난 꼬마가 묻는 질문에 그대로 대답하다. 페퍼로니에서 왔어. 나임을 너임을 하지만 우리임을 거부당했던 은경은 어쩌면 훗날 사촌의 사과밭에서 이미 떨어진 꽃 대신 쌓은 눈을 바라보며 우리가 어느 곳도 아닌 페퍼로니에서 왔음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기오성의 변심이든 은둔이든 어쨌든 그들은 한 순간 우리임이 자명했음을 보러 사촌의 과수원을 들른 것은 아닐까?

“새벽에 문득 깨서, 강선을 바라보며 걔는 아주 무방비로 잠이 들어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나는 저 몸에 무엇이 찾아들면 강선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창호를 바른 문으로 어느 순간 들어선 빛에 아침이 시작되듯, 찬 공기에 콧속이 열리고 창공이 높아지면 불현듯 여름이 종료되듯 사람에게도 그가 사람이게 하는 시작점이 있을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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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생활
송지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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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작가의 [동해 생활]을 읽었다. 다 읽고 난 첫 번째 소감은 ‘그야말로 정말 깬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감은 ‘그야말로 부럽네’. 작년까지 1년에 한 번씩 경포대 근처를 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여긴 정말 차가 별로 없어서 운전하기 편하겠다는 생각과 이렇게 한산한 곳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연이어지지만 막상 며칠 지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도시의 복잡스러움이 그리워져서 어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도시의 안락함에 길들여지게 되면 한적한 곳의 고요함과 심하다 싶을 정도의 거리감으로 인해 발생되는 불편함들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하지만 송지현 작가의 동해 생활을 읽다 보면 그 적적하고 막막할 것 같은 생활이 마치 블랙홀처럼 친구들을 끌어당기는 마성의 힘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랍고도 대단한 것은 9살 차이나 나는 동생과 어떻게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녀의 자유분방함과 깊은 외로움과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솟는 희망의 기운들이 곳곳에 새겨져 혼자 큭큭 웃게 만들기도 안쓰러움이 갑작스럽게 밀려오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의 다양한 친구들의 방문, 미리 계획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결정해버리는 만남,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술자리와 이야기들, 그로 인해 발생되는 헤프닝들.... 아마도 동해 아파트를 방문했던 작가의 친구들은 운전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갑자기 큭 하고 혼자 웃음보가 터지는 귀한 추억을 한아름 안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나 동생이 자면서 씨익 웃는 모습을 보고 어떤 꿈을 꾸는지 궁금해 동생을 깨우고 꿈의 내용을 물어보았지만 동생은 잠이 덜깬 얼굴로 웃기 시작하고 그 모습에 저자 또한 마구 웃어대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이야기만 하면 웃음이 터지는 사랑스러운 자매들의 이야기. 이어지는 추천의 글들이 다른 책과는 다르게 마치 저자에게 답장을 보내듯이 그녀와의 인연과 동해에 다녀온 소감들을 아주 길게 써 준 것이 무엇보다도 부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마도 송지현 작가는 분명 또 다른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며칠 전에 선우정아의 앨범을 쭉 듣다가 이 가사를 듣고 무한 공감했다. 생일 같은 거 정말 아무도 모르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생일 즈음에 밀려오는 우울감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일 년 동안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대단하지도 않은 이런 일상조차 버겁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절망일까. 혹은, 그냥 인간은 슬픔과 함께 태어나는 존재일까.(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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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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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중앙역]을 읽었다. 2014년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으로 출간된 후 2020년 개정판으로 저자의 첫 장편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이미 [딸에 대하여], [9번의 일]을 통해 저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시선을 알고 있기에 [중앙역]의 주인공들이 노숙자라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주인공인 나와 여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외국들인들을 볼때 쉽게 구별을 못하는 것처럼, 반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장시간의 노숙으로 거친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된 이들은 본래의 개성을 잃게 되고 비슷비슷한 외형을 형성하게 되어 마치 그들의 고유한 이름이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 나는 젊은 청년으로 보인다. 중앙역 광장에 모인 이들은 주인공에게 술을 건네며 여기 있을 나이가 아니라고, 너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인 강팀장은 어떻게든 그를 정상적인 생활로 돌려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나름의 배려를 한다. 하지만 그는 광장을 떠날 생각이 없다. 도대체 그가 왜 젊은 나이에 길바닥 생활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노숙을 시작하는 그에게 좋은 잠자리는 이미 그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점유된 채, 길 위에서도 약자의 모습으로 진동과 소음이 가득한 곳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곧 얼마되지 않아 젊음의 힘을 휘둘러 폭력을 행사함으로 그를 무시하던 이들이 더 이상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만든다. 그는 이제 길에서 원하는 곳에 누울 수 있게 되었고 그때 여자를 만난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여자는 그가 잠든 사이에 그의 캐리어를 움쳐 달아난다. 그는 캐리어를 찾기 위해 헤메이다 결국 여자가 어느 노숙자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캐리어를 내놓으라고 소리친다. 어쩌면 그에게 캐리어는 그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연결고리였는지 모른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와 광장의 구석진 곳에서 밤을 함께 보내는 생활을 하며 여자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불룩 튀어나온 여자의 배는 이미 그녀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술을 마시며 지내온 시간으로 인하여 복수가 차고 황달이 시작된 아픈 사람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도 자녀도 있기에 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병원도 가지 못한다. 어느날 여자는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강팀장은 그녀가 요양원에 보내졌음을 알린다. 그는 여자를 기다리며 광장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는 광장으로 돌아오고 강팀장의 배려로 그와 여자는 쪽방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읽는 내내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와 여자는 역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한대잠을 자며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는 것을 허락한 것일까? 란 물음이 쉴세없이 밀려왔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주인공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랬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눈쌀을 찌푸리고 그들이 풍기는 악취로 인해 숨을 참고 코를 틀어 막으면서도 그냥 그들이 이제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기를 바랬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참기 힘들어하면서도,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찬바람의 기운을 느끼고 올 겨울을 어떻게 버틸것인지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숨막히고 아무도 오지 않는 쪽방보다 밤새 눈을 괴롭히는 불빛과 소음이 있더라도 넓디 넓은 광장으로 돌아간다. 그와 여자가 그렇게 노숙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이미 그들과 이쪽 편의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도저히 그 간극을 좁힐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이쪽 편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더 깊게 구렁텅이를 파내는 이들은 바로 내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여자가 했던 그 말은 맞다. 우리가 나누었던 건 사랑이 아니라 버리고 다 버려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본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뭔가를 먹고 배설하는 것처럼 숨쉬는 동안에는 버릴 수 없는 동물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 본능과 욕구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나.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닌가. 차창을 떠가는 싯누런 강물 위로 내 얼굴이 잠긴다.(166)”

“누군가에게는 삶이 끔찍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나는 되묻고 싶어진다. 삶이 이토록 끔찍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정말 끔찍한 건 삶이 아니라 죽지 않고 꾸역꾸역 견디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내가 얼마나 더 구차해지고 비참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고 중얼거린다.(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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