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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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은희경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권여선 [실버들 천만사], 정한아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최은미 [내게 내가 나일 그때], 기준영 [들소] 이렇게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번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단편만의 미완결된 이야기들의 특색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며 그 이야기의 후반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던 소설을 읽던 항상 결말이 궁금하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결말을 알아야 속이 시원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의 단편들은 이렇다할 결말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우리 삶을 닮아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그냥 가공할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일상 속의 인물이라는 점이 때로는 마치 내가 등장한 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현실감은 소름을 돋게 만들고 이리도 지지멸렬한 삶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란 한숨을 불러일으킨다. 

대상을 받은 김금희 작가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페퍼로니가 뭘 뜻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주인공 은경은 엄마의 죽음 이후 거처를 옮기려는 찰나 아주 오래전 대학 선배였던 기오성의 관한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받게 된다. 그리고 기오성과의 옛 추억이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진다. 은경과 기오성은 대학 은사 교수의 부탁으로 교수 집안의 오래된 족보 정리를 위해 교수의 고택에서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교수의 손녀 강선을 만나게 되고, 강선은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다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지내며 넌 어디에서 왔니? 라는 질문에 어이없게도 페퍼로니에서 왔어라는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페퍼로니는 바로 강선이 제일 좋아하는 피자 종류이다. 이후 은경은 기오성과의 사랑이 시작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은경이 자리를 비운 기간 기오성과 강선 사이에 뭔가 있었을 것이라는 오해로 기오성과 멀어지게 된다. 이후 기오성은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청년 정책을 비판하다가 보수정당에 들어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고 어느날 행방이 묘연해진다. 기오성은 강선에게 들었던 대답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만난 꼬마가 묻는 질문에 그대로 대답하다. 페퍼로니에서 왔어. 나임을 너임을 하지만 우리임을 거부당했던 은경은 어쩌면 훗날 사촌의 사과밭에서 이미 떨어진 꽃 대신 쌓은 눈을 바라보며 우리가 어느 곳도 아닌 페퍼로니에서 왔음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기오성의 변심이든 은둔이든 어쨌든 그들은 한 순간 우리임이 자명했음을 보러 사촌의 과수원을 들른 것은 아닐까?

“새벽에 문득 깨서, 강선을 바라보며 걔는 아주 무방비로 잠이 들어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나는 저 몸에 무엇이 찾아들면 강선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창호를 바른 문으로 어느 순간 들어선 빛에 아침이 시작되듯, 찬 공기에 콧속이 열리고 창공이 높아지면 불현듯 여름이 종료되듯 사람에게도 그가 사람이게 하는 시작점이 있을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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