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 × 기억하는 인간 EBS 지식채널e 시리즈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 EBS 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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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e 제작팀의 [지식채널 x 기억하는 인간]을 읽었다. 강의를 위해서 종종 지식채널e의 내용을 보여주고 했었는데, 기억에 대한 내용을 따로 글로 편집한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사실 이런 방대한 양의 자료를 조사해서 편집하기 까지는 상당히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검색은 편해졌지만 신빙성과 사실 유무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공개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검토가 필수적이다. 여러 가지 많은 주제들이 실려 있지만 100년 안에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재생시킨다. 나치에 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실상과 비참한 죽음 이후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까지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 왕조 역사와 관련된 영화들이 많이 개봉되었다. 재미와 흥행을 위해서 가끔은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영상과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부활한 과거의 심오한 사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단지 과거의 역사는 과거의 일로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특히나 지금보다 역사를 기록하는 수단이 현저히 열악했던 상황에서 과연 남겨진 기록을 100% 믿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생겨난다. 때로는 누군가가 과오를 감추기 위해서 회칠한 벽화처럼 진실을 가려놓은 것은 아닐까란 의문.

전세계가 웹으로 연결된 첨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완벽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단 지성의 힘으로 엄청난 지식정보를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는 지식의 바다를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권력의 개입으로 불리한 정보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와 가짜 뉴스의 생산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문제점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을 남길 수 있는 문화가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비단 유명인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왔던 전기와 자서전이 일반 개개인의 기록물로 남겨질 수 있고, 그 기록물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는 변화가 반갑기만 하다. 우리의 육신은 채 100년도 안되 사그러들테지만 누군가 애써 남겨둔 기록들은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디딤돌이 되어 다시금 희망을 엿볼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유해하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차단하고, 자신에게 필요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 적절히 활용하며 나아가 창조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바로 이런 능력을 길러준다.(74)”

“처음 프로젝트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이 기획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어요.-데이비드 미첼

‘미래도서관’ 노르웨이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2014년부터 매년 한 명의 작가에게 한 편의 미공개 원고를 받아 오슬로 공공도서관 침묵의 방에 봉인, 2114년 미리 심어둔 가문비나무 1,000그루를 베어 100편의 원고를 한꺼번에 출판하는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는 살아 숨 쉬는 유기적인 작품이다.-케이트 패터슨(미래도서관 프로젝트 기획자, 스코틀랜드 예술가)

2014년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작가)
2015년 데이비드 미첼(영국 소설가)
2016년 숀(아이슬란드 작가)
2017년 엘리프 샤팍(터키 소설가)
2018년 한강(한국 소설가, 아시아 최초 선정 작가)

언젠가 상대에게 도달할 것이라 믿고 편지를 병에 담아 강에 띄우는 것 같았다.-엘리프 샤팍

거기 아직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한강

매년 봄 오슬로 외곽의 숲에서 열리는 원고 전달식은 새로 태어난 이야기의 환영식이자 읽을 수 없는 이야기의 송별식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태어날 것을 믿으며 긴 침묵에 빠져드는 이야기.(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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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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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작가의 [스노볼]을 읽었다. [아몬드]와 견줄 만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광고문구에 급히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가 아직 박스도 풀지 않았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기다려 구매했다.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유명했던 영화들을 오마주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가독성은 좋았다. 주인공 천초밤은 영하 41도의 추위를 견디며 스노볼 바깥에서 살아간다. 발전소에서 일하며 언젠가는 스노볼의 디렉터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스노볼에는 액터와 디렉터가 살아갈 수 있는데 하루종일 방송되는 액터들의 일상은 드라마로 편집되어 스노볼 바깥에 사는 사람들에게 방송된다. 단, 디렉터를 제외한 액터들은 자신들이 나온 드라마를 볼 수 없기에 스노볼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액터들의 사생활을 모른다. 어찌보면 추위가 없는 안락한 스노볼 안의 삶을 사는 대신에 자신의 사생활을 팔아넘겨야만 하는 계약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노볼과 바깥의 전혀 다른 삶의 터전이 생겨버린 것을 소설에서는 전쟁 문명으로 드러낸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렇게 나뉘어진 것인지 자세히 묘사하지 않지만 이미 공상 과학 영화를 통해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스노볼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화 트루먼쇼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트루먼쇼의 주인공 짐 캐리를 제외한 모든 스텝들이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스노볼의 액터들은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시청률을 유지해야 하고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게 된다. 

천초밤은 어느날 자신의 롤모델 차설을 만나게 되고, 초밤을 닮은 가장 핫한 액터 고해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그 역할을 대신해 달라는 권고를 받는다. 스노볼의 삶을 꿈꾸던 초밤은 차설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스노볼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가짜 고해리의 삶을 연기하며 차츰 차설의 비밀에 다가서게 된다. 스노볼이라는 시스템을 만든 이본가의 후계자 이본회를 만나며 초밤의 의구심은 더해간다. 초밤은 죽은 고해리와 닮은 사람을 병원에서 만나게 되고 갑작스럽게 차향의 집에 갇히게 된다. 초밤은 차설의 동생 차향을 통해 자신이 우연히 고해리와 닮은 도플갱어가 아니라 차설 디렉터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 복제인간임이 드러난다. 초밤을 비롯한 시내, 소명, 새린은 모두 고해리를 탄생시키기 위해 같은 난자와 정자를 비밀리에 주입시킨 것이었다. 이후 조금은 황당무계한 이들의 스노볼 방송국 탈취 장면이 전개되고, 모두가 똑같은 외모를 가진 네 명의 고해리를 생방송에 내보내며 차설 디렉터의 만행을 고발한다. 

스노볼의 가상의 세계이고, 추위와 더위가 없는 안락한 삶이 보장된 곳이지만 그곳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일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액터들의 삶이 어찌보면 그냥 가공의 이야기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도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곳을 놓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마치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을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바로 불행이 찾아올까봐 겁내며 더욱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초밤이 스노볼에 머물기 위해 가짜 고해리가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선택을 한 것처럼, 우리도 비록 영하 41도의 야생의 세계에 몸이 놓인다 할지라도 가식적인 내가 아닌 진실한 나를 마주하게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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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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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을 읽었다. 1980년대 후반에 ‘주간 아사히’라는 잡지에 1년 동안 연재했던 글의 모음집이다. 소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막나가는 방종의 느낌은 아니고 하루키 스스로가 자유로움을 영위하는 세계 안에서의 질서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이야기에 나오는 소재들은 뭔가 상당히 아날로그이지만 일본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조금 앞섰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80년대의 일본과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한 승자는 없는듯 이제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오히려 일본 대중문화를 선도할 정도라고 하니 시대의 변화는 알 수 없는 것 같다. 

에세이에 나온 소재들은 연속성이 없어 매번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다소 황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사고체계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국적와 인종을 떠난 인간 본성에 대한 공통적인 사고가 통용되었는데, 에세이에는 그의 사생활이 어느 정도 관계되기 때문인지 가끔은 뜬금없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키만큼이나 그의 이야기에 가끔 등장하는 ‘마누라’라고 표현되어 있는 부인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내공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아마도 일본의 지명과 역사 그리고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름을 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을텐데,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르니 조금 아쉬웠다. 마지막에 첨부된 번외편 ‘무라카미 아사히도’는 안자이 미즈마루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여인과의 삼자회담인데, 자기들끼리는 무척 즐겁고 재미있어 보이지 않느냐고 대놓고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별 생각없이 휴가를 떠나 때론 카페에서 잠깐 한 편씩 보면 피식 웃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라는 것은 턱하니 의자에 앉아 머리를 텅 비워놓으면 알아서 쑥쑥 앞으로 나아가주니 무척 편하다. 연극이나 콘서트 같으면 ‘오늘은 좀 흥이 덜하지 않나’라든지, ‘어디 불협화음이 나는 것 같은데’라든지, ‘박수는 이 정도면 될까’라든지, 나름대로 신경을 써야 하니까 머리를 완전히 비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기분이 착 가라앉았을 때는 아무 해가 없는 할리우드 영화를 멍하니 보고 있는 게 제일이다. 자극을 받거나 하면 오히려 불쾌해지기도 한다.(30-31)”

“작가가 비평을 비평하거나 그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변명하는 것은 당치않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쁜 비평이란 말똥이 듬뿍 들어찬 거대한 오두막과 흡사하다. 만약 우리가 길을 걷다가 그런 오두막과 맞닥뜨린다면 서둘러 지나처버리는 게 상책이다. ‘왜 이렇게 냄새가 나지’라는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된다. 말똥이란 원래 냄새가 나는 것이고,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가는 더욱 지독한 냄새가 진동하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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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정미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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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진 작가의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를 읽었다. 표지만 봐도 왠지 설레는, 하지만 곧이어 한숨이 나오는 시기이다. 주변에서 이런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코로나만 끝나봐 아주 그냥~’ 글세 코로나가 해결되어도 당장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다들 자기 위안의 혼잣말을 내뱉으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공항에 가면 아마 다들 뭔가 신바람이 나고 특히나 제목처럼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차가우면서도 똑부러지는 안내 멘트가 나오면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평소보다 열배는 힘차게 일어나 저벅저벅 탑승구를 향해 걸어간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베트남의 달랏, 터키의 보드룸, 프랑스의 파리, 포르투칼의 에리세이라, 태국의 방콕 그리고 대한민국의 인천이다. 연작소설의 특징처럼 각각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나오는 것 같지만 전작에 나온 주변 인물이 다음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배경이 되는 여러 나라들의 도시를 저자가 실제 다녀온 경험으로 구성했기에 더욱 실감나기도 했고 중간 중간 환타지 요소들을 삽입하여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니 읽는 내내 나 또한 그곳에 처음 가는 초보해외여행자처럼 느껴졌다. 작은 키를 콤플렉스인 그녀가 직장을 그만두고 도대체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무작정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러 갔지만 그 작품은 뉴욕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찾아오는 자괴감을 딛고 일어나는 환희를, 프랑스 대신 선택한 가짜 에펠탑이 있는 베트남의 옛 휴양지의 오래된 고택에서 태풍을 맞아 갇혀 있다가 답답해 나간 외출길에 비를 흠뻑 맞아 몸살이 난 그녀를 달래준 트린이라는 소녀를 통해 어린 제자의 처절한 요청을 외면해버린 비겁한 자신을 마주하기도, 어릴적 화가의 꿈을 꾸던 소녀는 어느덧 중년이 나이가 되어 파리를 처음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보랏빛 표지를 한 책을 연속적으로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몹슬 병에서 한동안은 해방되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서핑을 배우고 밤이 되면 할아버지가 서핑을 하며 소년으로 변한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데, 바닷길을 건너 살아야 하는 팔자를 타고난 아내를 먼저 보내고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강아지를 데리고 첫 해외여행을 떠난 할아버지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강아지와의 가슴벅차는 방콕 투어를 마치게 되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싫어하는 집돌이 이환은 공항의 보안검색 요원으로 일하며 엑스레이에 투시된 여행객의 가방에서 팝업창으로 뜨는 여행객의 미래가 보이는 현상이 곧 현실이 되는 놀라운 겪으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바로 자발적으로 어디론가 떠나는 습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어떤 일보다 여행은 내게 외로움을 확실하고 선명하게 선사한다. 가장 외로운 순간에 여행을 떠나 말 그대로 외로워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상태까지 나를 외로움으로 몰아넣는다. 일종의 자학적인 이 행위를 통해 내가 얻으려는 건 무엇일까. 지난 여행을 거슬러 유추해보면 나는 여행지에서의 외로움을 통해 결국 그리움을 느끼고자 하는 듯하다. 
내가 있었던 곳에 대한 그리움,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 지난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 결국엔 그리움이라는 그 감정 하나를 얻으려 끊임없이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외로움을 그리움과 맞바꾼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상황과 인물과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246-247)”

여행에 진절머리내는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 이환처럼 나도 한때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아무리 멋진 곳에 가도 3일만 지나면 집에 가고 싶다는 혼잣말을 내뱉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놀라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한다는 얘기를 듣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장거리 비행기를 탑승하고 내릴 무렵에는 다시는 이런 장거리 비행기를 타지 않게노라고 다짐한다. 그런데 마침 숙취에 시달리던 이가 해장하고 저녁에 되면 슬슬 술생각이 나는 것처럼 1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집에 오고 싶어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떠나는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고 싶어서이다. 비싼 돈을 들여 그다지 타고 싶지 않은 비행기를 타고 처음 가본 곳의 주는 긴장의 스트레스를 기꺼이 감내해 가면서까지도 어디론가 떠나 외로움을 그리움과 맞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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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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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드]를 읽었다.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중의 하나로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드](1983)과 [랑게르한스섬의 오후](1986)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술적 동지인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림을 담당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인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인지에서 하루키는 세상을 떠난 안자이 미즈마루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하루키의 에세이와 다른 작품에 걸맞는 그림을 턱턱 그려내는 미즈마루가 아마도 몹시 그리운 것 같았다. 책을 함께 만든 동지이자 하루키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꽤나 잘맞는 친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에세이집은 하루키가 30대 때에 쓰인 글인 만큼 뭔가 젊음의 열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전혀 개연성이 없는 글들의 연속이지만 나름대로 작가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잡아가는 하루키만의 개성과 자유로움이 엿보인다. 그리고 하루키가 미즈마루와 꽤나 오랜 시간 협업을 해왔기에 하루키의 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는 미즈마루가 딱이라는 공식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동화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한 페이지 걸러 일상적인 물건들이 나오는 일러스트가 있다. 그림책을 보는 듯한 감상에 빠졌다가 하루키만의 엉뚱한 상상에 큭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정말로 내 마음에 든 것은 커피의 맛보다는 커피가 있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 앞에는 저 사춘기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이 있고, 거기에는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이 또렷하게 비쳤다. 그리고 등뒤에는 네모난 틀 속 조그만 풍경이 있었다.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이 나를 축복했다.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따스함의 문제, 라고 리처드 브로티건은 어느 작품에 썼다. 커피를 다룬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제일 마음에 든다.(39)”

“그리고 또 추운 계절에 이불 속으로 파고들 때 반드시 세 번은 들락날락하는 습관이 있다. 우선 이불 안에 들어가 길게 누었다가는 잠시 생각한 후,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양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이런 과정을 세 번 되풀이하고는 네번째에야 간신히 안심하고 잠드는 것이다. 이 일련의 의식에는 대충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순전히 시간 낭비다. 고양이도 성가실 테고, 나도 이제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와중에 자꾸 고양이가 들락날락거리니까 울컥 화가 치민다. 세상에는 ‘삼고의 예’라는 게 있다지만, 고양이가 한밤중에 그런 의식을 치러야 할 필연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때때로 어째서,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으로 그런 버릇이 고양이의 머릿속에 생겨나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 나름의 유아체험이 있고, 청춘기의 뜨거운 고뇌가 있고, 좌절이 있고,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고양이로 정체성이 성립되어, 그녀는 겨울밤에 정확하게 세 번 이불 속을 들락날락하는 것일까? 
고양이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것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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