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정미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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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진 작가의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를 읽었다. 표지만 봐도 왠지 설레는, 하지만 곧이어 한숨이 나오는 시기이다. 주변에서 이런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코로나만 끝나봐 아주 그냥~’ 글세 코로나가 해결되어도 당장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다들 자기 위안의 혼잣말을 내뱉으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공항에 가면 아마 다들 뭔가 신바람이 나고 특히나 제목처럼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차가우면서도 똑부러지는 안내 멘트가 나오면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평소보다 열배는 힘차게 일어나 저벅저벅 탑승구를 향해 걸어간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베트남의 달랏, 터키의 보드룸, 프랑스의 파리, 포르투칼의 에리세이라, 태국의 방콕 그리고 대한민국의 인천이다. 연작소설의 특징처럼 각각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나오는 것 같지만 전작에 나온 주변 인물이 다음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배경이 되는 여러 나라들의 도시를 저자가 실제 다녀온 경험으로 구성했기에 더욱 실감나기도 했고 중간 중간 환타지 요소들을 삽입하여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니 읽는 내내 나 또한 그곳에 처음 가는 초보해외여행자처럼 느껴졌다. 작은 키를 콤플렉스인 그녀가 직장을 그만두고 도대체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무작정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러 갔지만 그 작품은 뉴욕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찾아오는 자괴감을 딛고 일어나는 환희를, 프랑스 대신 선택한 가짜 에펠탑이 있는 베트남의 옛 휴양지의 오래된 고택에서 태풍을 맞아 갇혀 있다가 답답해 나간 외출길에 비를 흠뻑 맞아 몸살이 난 그녀를 달래준 트린이라는 소녀를 통해 어린 제자의 처절한 요청을 외면해버린 비겁한 자신을 마주하기도, 어릴적 화가의 꿈을 꾸던 소녀는 어느덧 중년이 나이가 되어 파리를 처음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보랏빛 표지를 한 책을 연속적으로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몹슬 병에서 한동안은 해방되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서핑을 배우고 밤이 되면 할아버지가 서핑을 하며 소년으로 변한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데, 바닷길을 건너 살아야 하는 팔자를 타고난 아내를 먼저 보내고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강아지를 데리고 첫 해외여행을 떠난 할아버지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강아지와의 가슴벅차는 방콕 투어를 마치게 되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싫어하는 집돌이 이환은 공항의 보안검색 요원으로 일하며 엑스레이에 투시된 여행객의 가방에서 팝업창으로 뜨는 여행객의 미래가 보이는 현상이 곧 현실이 되는 놀라운 겪으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바로 자발적으로 어디론가 떠나는 습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어떤 일보다 여행은 내게 외로움을 확실하고 선명하게 선사한다. 가장 외로운 순간에 여행을 떠나 말 그대로 외로워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상태까지 나를 외로움으로 몰아넣는다. 일종의 자학적인 이 행위를 통해 내가 얻으려는 건 무엇일까. 지난 여행을 거슬러 유추해보면 나는 여행지에서의 외로움을 통해 결국 그리움을 느끼고자 하는 듯하다. 
내가 있었던 곳에 대한 그리움,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 지난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 결국엔 그리움이라는 그 감정 하나를 얻으려 끊임없이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외로움을 그리움과 맞바꾼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상황과 인물과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246-247)”

여행에 진절머리내는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 이환처럼 나도 한때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아무리 멋진 곳에 가도 3일만 지나면 집에 가고 싶다는 혼잣말을 내뱉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놀라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한다는 얘기를 듣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장거리 비행기를 탑승하고 내릴 무렵에는 다시는 이런 장거리 비행기를 타지 않게노라고 다짐한다. 그런데 마침 숙취에 시달리던 이가 해장하고 저녁에 되면 슬슬 술생각이 나는 것처럼 1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집에 오고 싶어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떠나는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고 싶어서이다. 비싼 돈을 들여 그다지 타고 싶지 않은 비행기를 타고 처음 가본 곳의 주는 긴장의 스트레스를 기꺼이 감내해 가면서까지도 어디론가 떠나 외로움을 그리움과 맞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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