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서필훈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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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훈 대표의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을 읽었다. 현재 '커피리브레'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가 어떻게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고, 커피회사를 차려 커피 산지를 찾아가 만난 이들과의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게 전해주고 있다. 읽는 내내 커피에 대한 저자의 엄청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커피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는 전세계의 수많은 이들을 이어주는 숨겨진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남녀노소 카페에서 다양한 음료, 주로 아메리카노를 놓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지만,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카페는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장소로만 여겨졌다. 그럴만한 게인스턴트 믹스 커피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밥값에 버금가는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사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별다방에서 후배와 함께 둘 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금은 낯선 시선을 받아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 아저씨 둘아 앉아 있는 곳은 우리 뿐이었다. 갑자기 낯뜨거운 기분이 들어 서둘러 마시고 나왔는데, 에스프레소의 본 고장에서 몇 년을 지내다 오니 갑자기 우리나라가 커피 공화국으로 변화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카페의 인기가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다. 이제는 부모님 세대도 밥값에 가까운 커피를 마시는 것에 과도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카페는 단지 커피를 마시는 곳만이 아니라 소통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의 매력에 빠져 지내는 몇 년을 지내고도 막상 한국에 들어와서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는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일단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드립 커피를 접하게 되었고 정성을 기울여 커피를 내리면 서버에 똑똑 떨어지는 커피방울이 재미있어졌다. 불행하게도 카페인에 민감하다보니 과도한 커피 섭취는 불가능하고 특히나 밤에 커피를 못 마시는 게 몹시 안타까웠다. 요즘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디카페인 제품들이 많이 생산되어 아무때나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서필훈 대표가 전해준 전세계 커피 산지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도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때로는 생존을 위해서 묵묵히 커피나무를 키워가고 있다. 커피가 생산되는 대표적인 나라들은 역설적으로 커피를 소비하는 선진국의 나라들과는 정반대 경제적 후진국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겨우 1%에 해당되는 비용만 생산자들에게 돌아간다고 하니 이 불공정한 처지를 어떻게 타파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커피를 마시고 평가해온 시간들이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저자처럼 커피 산지의 주민들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공정무역 커피와 스페셜티 커피를 통해 생산자의 여건을 개선해주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기에 희망을 기대해본다. 


"살다보면 마스크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있다. 억울하고 부끄러울 때, 작아지고 후회할 때, 벗어날 도리가 없고 왜 사나 싶을 때, 마스크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커피리브레가 커피 거래 과정에서 잊힌 얼굴들을 복원하며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를 바랐다. 기꺼이 마스크를 쓰고 조금 더 용기를 낸다면 <나초 리브레>의 주인공처럼 링 위에서 매번 두들겨 맞아도 언젠가 승리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33)"


"스페셜티커피의 정의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품질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획득한 커피' 혹은 '생두에서 시작해 로스팅과 추출을 거쳐 한 잔의 음료로 만들어지기까지 산지의 특성을 좋은 품질로 잘 보여주는 커피' 정도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요즘 국내에서는 스페셜티커피가 '고급 커피'라는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최종 소비자의 입장만을 반영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커피 생산자와 산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스페셜티커피의 정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60)"


"때로는 지리멸렬한 현실과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산지에서 잠시라도 위안을 얻고 나만의 이상향을 찾고 싶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사람들, 멋진 커피가 자라는 곳, 지금도 늘 그리워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사회와 사람들을 낭만화하는 것은 단지 나의 투사이자 현실 왜곡일 뿐이다. 산지에도 우리처럼 빈부격차와 좌우대립이 있고, 종교와 인종, 노동과 젠더를 둘러싼 갈등이 있다. 마찬가지로 평화와 화해도 있다. 코로나의 전 세계적 유행은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우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공통감각을 일깨웠다. 어쩌면 우리의 배경과 양상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다양한 사회적 질병들을 이전부터 함께 앓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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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집에서 - 피아노 조율사의 경양식집 탐방기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 / 린틴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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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권 님의 [경양식집에서]를 읽었다. 28년 차 피아노 조율사인 저자는 전국의 경양식집을 다니며 이 책을 구상하신 것 같고, [열세 살의 여름]으로 유명한 이윤희 작가가 그림의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중국집]이라는 책도 내셨다고 하니, 음식점에 대한 또 다른 시리즈가 기대된다. 출판사의 이름도 특이한데 ‘린틴틴’이라는 이름으로 식당 주인과의 인터뷰에서도 등장한다. 저자의 경양식집에 대한 개인적인 에세이와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음식 사진과 이윤희 작가의 개성넘치는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지루할 틈 없이 독자를 전국의 경양식집으로 데려가 주는 것 같다. 


예전이라면 음식에 관련된 책을 선택할리 없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적게라도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며 책으로나마 음식점에 대한 정보를 섭렵하고 싶은 마음에 덥썩 선택하게 되었다. 지금은 경양식집도 프렌차이즈로 간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겨나기 전까지 경양식집은 특별한 날에 가거나 데이트를 하는 고급식당으로 여겨졌다. 그럴만한게 보통 우리나라 음식은 전식, 본식, 후식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한 상에 다 차려 먹고 치우기 마련인데, 서양식은 차례대로 나오는 순서의 개념이 있어 외국에 나가본 사람이 별로 없던 시기에는 경양식집에서 스프, 빵, 본식, 후식의 차례가 꽤나 매력적으로 나가왔던 것 같다. 나도 어릴때에는 부모님과 외식을 하게 되면 혹시나 돈까스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기억이 난다. 


28년이나 꾸준히 피아노 조율사의 일을 해오신 저력을 갖고 계셔서 인지,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대식가처럼 비춰지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더군다나 열심히 일하고 난 후 혼밥을 즐기며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은 실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대가처럼 보였다. 역시나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음식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실 줄 알아야 여러모로 행복함이 배가되지 않을까 싶어 더욱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방문했던 오래된 경양식집들은 대부분 부부가 운영하며 메뉴는 돈까스, 비프까스, 생선까스, 함박스테이크 등이다. 서양의 음식문화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여러가지로 변형이 되어 이제는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 입맛에 맞춰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이프와 포크로 ~~까스를 썰고 있노라면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색다른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이 본다면 촌스럽고 오래된 구식 식당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자가 찾은 오래된 경양식집들은 사라지면 너무나도 아쉬울 우리 음식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노포 식당의 개념이 별로 없어서 장사가 잘 되는 곳만 대를 잇고 인기가 없는 식당들은 후계자를 찾지 못해 대부분 문을 닫는다고 하던데, 다양한 음식문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숨겨진 경양식집들이 장사가 잘 되어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라르고 경양식집의 스프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 

“공이 들어가는 거라, 밀가루 볶는 게 거의 인생이에요. 맨 처음에 버터를 녹인 다음에 밀가루를 넣잖아요. 이제 그걸 반죽하듯이 약한 불에서 볶는데, 뻑뻑해요. 근데 그게 시간이 점점 지나면, 걔가. 스스로 융해되듯이 팍, 녹아버려요. 아주 부드럽게... / 그게 상상 초월이래니깐요. 상식적으로는 점점 더 빡빡하게 굳어갈 거 같잖아요. 볶으니까. 근데 밀가루하고 버터하고 비등점에서 융해가 돼 버려요. 화합이 되는 거지. 갑자기, 어느 순간. 그게 인생하고 똑같아요. 하하하./ 거기서 욕심을 부려서 이제 좀 더 볶죠. 그럼 색깔이 갈색이 나버려요. 못 쓰는 거지. 한순간에, 그게 딱 인생이에요. 기다려야 되고, 참아야 되고, 놓치면 돌아오지 않고, 어떨 땐 지루해서 하기 싫거든요. 그래도 참아야 하니까, 인생이란 게.(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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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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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를 읽었다. [완득이], [아몬드]에 뒤를 잇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와 어울리며 혹시나 부모와 갈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미래에 심각한 저출산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에서 대신 아이들을 키워주는 NC(nation's children) 센터를 설립하고 아이를 낳고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열 세살이 될 때까지 센터에서 보호받고 교육받으며 자라나 열 세살 이후에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국가가 출산을 장려하고 아이를 키워주고 입양까지 장려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단지 뜬구름잡는 얘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현재 불과 몇십년 만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어 선지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점점 커져가고 평범한 수준의 삶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한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은 인간 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인간 본성에 기초한 관계를 맺는 모습조차도 취사선택이 마땅한 권리로 주장되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인간의 권리와 선택의 영역으로 정할 수 있을까? 


급속히 변화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페인트]에 나오는 미래 시대의 모습이 구현된 것은 아닐까 싶다. 버려진 아이들이 철저한 국가의 통제 속에서 키워지고 아이를 원하는 프리 포스터(pre foster parents)들과의 면접이 이루어지고, NC 센터에서는 가디언들이 아이들을 훈육하고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헌신하는 박과 최와 같은 지도자들이 있다. 소설의 제목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를 은어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 아닐까?(196)"


나이가 들어 개명신청을 하지 않고서는 내가 원하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내가 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나에게만 해당되는 고유한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와 가족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당연히 자유이지만 우리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다. 몰랐던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무작정 주어진 것에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좋은 부모를 선택하기 위한 페이트를 반복하며 과연 자신 또한 좋은 자녀가 될 준비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된 주인공 제누 301처럼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시간들이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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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인기가요 - 오늘 아침에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아무튼 시리즈 39
서효인 지음 / 제철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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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인의 [아무튼, 인기가요]를 읽었다. 부제는 “오늘 아침에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39번째 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가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오죽하면 18번이라는 자기만의 노래를 하나씩은 마음 속에 품고 살기에 언제 어디서든 노래 한 곡 부르라고 청하면 못 이기는 척 부르지 않는가? 특히나 가요와 관련된 TV 프로그램은 십수년 째 사골 우려먹기를 반복하고 있어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흥의 민족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도 한때 노래방 죽돌인적이 있었다. 시험이 끝난 날에는 서너시간을 쉬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도 했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미친듯한 고음의 노래만 골라 올라가지도 않는 음을 내려고 애썼다. 부끄러움도 없었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애틋한 발라드에 대한 애착은 청소년기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인기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노래들이 뭔지, 저 가수는 누구인지, 아이돌이 너무도 많아서 그룹 이름도 헷갈리기 마련인데, 시인님은 정말로 대단하고 끈질긴 최신가요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쳅터가 끝날 때마다 올려준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은 예전 노래들 빼고는 죄다 모르는 노래 투성이인지라, 이제부터 나도 오마이걸이나 이달의 소녀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갸우뚱하게 된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인님이 말한 것처럼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우연히 좋아하는 가수가 게스트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음원사이트를 통해서 듣고 싶은 노래를 선택해서 들어도 되겠지만 라디오에서 그럴듯한 사연과 신청곡으로 나오는 노래는 뭔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신청자의 사연에 빙의되어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애절한 가사말이 폐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가슴이 아리는 경우도 있다. 이승환의 ‘가족’이 들려오면 겨울의 추위가 시작되는 11월의 어느 날 연병장에서 날아오던 축구공을 멍하니 쳐다보던 내가 생각나고, 윤종신의 ‘동네 한바퀴’를 들으면 로마의 400년 된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낯선 언어와 시름하던 내가 생각난다. 좋아하는 가요는 단지 그 가수에 대한 애정만이 아니라 그가 부른 노래를 통해서 남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나만의 역사를 재생시킨다. 마치 타임슬립하듯이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 준다. 부끄럽기도 하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결코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는 나의 역사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좋아했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의 엇나간 어느 부분을 치유할 수 있다면, 3분 동안이나마 누군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인기가요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3학년 1반은 중앙 정원 왼쪽 통로에 모였다.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그 상태로 엎드렸다. 엎드려뻗쳐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손바닥을 펼 수 있다. 2단계는 주먹을 쥐어야 한다. 3단계는 깍지를 끼는 것이고, 4단계는 손 대신 머리를 박는다. 깍지보다 머리가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선생 말대로 돌대가리여서 그랬던 건 아니겠지. 깍지 낀 손으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면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머리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면 폭탄이 된 것만 같았다. 이러다 펑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진화 이전의 자세로 중력에 저항하고 있노라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지난 중간고사에서 꼴찌를 한 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담임이 얼차려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늘 이래 왔기 때문이다.(43)”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감정이입되어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3단계 깍지를 끼고 엎드려뻗쳐의 고급 단계로 엇깍지가, 한 단계 더 위로 트위스트 깍지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 엎드려뻗칠수가 있나? 그리고 머리를 박는 것은 요령이 생기면 엎드려뻗쳐보다 한결 편하다는 건 안비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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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띵 시리즈 7
호원숙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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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숙 작가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7번째 책이다. 박완서 작가의 10주기를 맞이하여 그녀의 딸이 엄마를 기억하며 추억속에 저장된 음식과 저자만이 알 수 있는 엄마 박완서의 작품 속 이야기를 전해준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였기에 작품에만 몰입하여 자녀를 돌보는 일이나 음식을 만드는 일에는 무관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도 있지만 저자가 전하는 엄마 박완서 작가는 자식을 사랑하고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인 보통 사람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 분으로 보인다. 그런 모든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써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자가 이렇게 다양한 음식의 추억을 재생시킬 수 있는 것은 유년시절부터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의 스토리와 맛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의 음식이 있다. 특별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절에 먹었던 음식이나,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나, 우연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처음 접한 음식 등등. 반드시 먹기 위해서는 사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우리는 먹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또 많은 경우 좋은 것을 먹기 위해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흔히 내뱉는 말.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뒤에 붙은 줄임표에는 분명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의미가 먹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부질없는 짓처럼 여겨지기 때문은 아닐까. 누군가를 부양한다는 것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부단히 몸을 움직여야만 했던 가난한 시절이나 고급 양식점에서 칼질을 하는 것을 꿈꾸던 시대를 거쳐 먹방이 난무하는 오늘까지도 동일한 의미로 나의 노동이 가지는 최상의 가치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데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 누군가 준비해 준 음식은 밥 한톨이라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되며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려 놓여진 반찬을 입속으로 가져가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끼니를 때우는 것 자체가 어느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이 한 시간 하루 연장되는 것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세계의 풍미를 보여주는 영상에 백합이라는 게 있기에 찾아보았더니 조개류의 백합이 아니고 백합꽃의 구근을 캐 구워 먹는 것이었다. 해발 2,000m의 고지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하얀 구근이 불에 들어가 꽃처럼 피어오르듯이 익고 그걸 아이가 호호 불면서 먹는 장면이었다. 백합은 꽃이 하얗다는 뜻이 아니라 하얀 뿌리가 비늘처럼 켜켜이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천지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꽃의 뿌리를 먹다니. 그것도 고원지대에 드넓은 평야에다 백합을 심어 풍미가 특별한 농산물로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꽃은 흰색이 아니라 주황색이었고 우리는 그냥 나리꽃이라 부르는 종류였다.(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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