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식집에서 - 피아노 조율사의 경양식집 탐방기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 / 린틴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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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권 님의 [경양식집에서]를 읽었다. 28년 차 피아노 조율사인 저자는 전국의 경양식집을 다니며 이 책을 구상하신 것 같고, [열세 살의 여름]으로 유명한 이윤희 작가가 그림의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중국집]이라는 책도 내셨다고 하니, 음식점에 대한 또 다른 시리즈가 기대된다. 출판사의 이름도 특이한데 ‘린틴틴’이라는 이름으로 식당 주인과의 인터뷰에서도 등장한다. 저자의 경양식집에 대한 개인적인 에세이와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음식 사진과 이윤희 작가의 개성넘치는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지루할 틈 없이 독자를 전국의 경양식집으로 데려가 주는 것 같다. 


예전이라면 음식에 관련된 책을 선택할리 없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적게라도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며 책으로나마 음식점에 대한 정보를 섭렵하고 싶은 마음에 덥썩 선택하게 되었다. 지금은 경양식집도 프렌차이즈로 간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겨나기 전까지 경양식집은 특별한 날에 가거나 데이트를 하는 고급식당으로 여겨졌다. 그럴만한게 보통 우리나라 음식은 전식, 본식, 후식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한 상에 다 차려 먹고 치우기 마련인데, 서양식은 차례대로 나오는 순서의 개념이 있어 외국에 나가본 사람이 별로 없던 시기에는 경양식집에서 스프, 빵, 본식, 후식의 차례가 꽤나 매력적으로 나가왔던 것 같다. 나도 어릴때에는 부모님과 외식을 하게 되면 혹시나 돈까스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기억이 난다. 


28년이나 꾸준히 피아노 조율사의 일을 해오신 저력을 갖고 계셔서 인지,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대식가처럼 비춰지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더군다나 열심히 일하고 난 후 혼밥을 즐기며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은 실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대가처럼 보였다. 역시나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음식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실 줄 알아야 여러모로 행복함이 배가되지 않을까 싶어 더욱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방문했던 오래된 경양식집들은 대부분 부부가 운영하며 메뉴는 돈까스, 비프까스, 생선까스, 함박스테이크 등이다. 서양의 음식문화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여러가지로 변형이 되어 이제는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 입맛에 맞춰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이프와 포크로 ~~까스를 썰고 있노라면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색다른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이 본다면 촌스럽고 오래된 구식 식당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자가 찾은 오래된 경양식집들은 사라지면 너무나도 아쉬울 우리 음식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노포 식당의 개념이 별로 없어서 장사가 잘 되는 곳만 대를 잇고 인기가 없는 식당들은 후계자를 찾지 못해 대부분 문을 닫는다고 하던데, 다양한 음식문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숨겨진 경양식집들이 장사가 잘 되어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라르고 경양식집의 스프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 

“공이 들어가는 거라, 밀가루 볶는 게 거의 인생이에요. 맨 처음에 버터를 녹인 다음에 밀가루를 넣잖아요. 이제 그걸 반죽하듯이 약한 불에서 볶는데, 뻑뻑해요. 근데 그게 시간이 점점 지나면, 걔가. 스스로 융해되듯이 팍, 녹아버려요. 아주 부드럽게... / 그게 상상 초월이래니깐요. 상식적으로는 점점 더 빡빡하게 굳어갈 거 같잖아요. 볶으니까. 근데 밀가루하고 버터하고 비등점에서 융해가 돼 버려요. 화합이 되는 거지. 갑자기, 어느 순간. 그게 인생하고 똑같아요. 하하하./ 거기서 욕심을 부려서 이제 좀 더 볶죠. 그럼 색깔이 갈색이 나버려요. 못 쓰는 거지. 한순간에, 그게 딱 인생이에요. 기다려야 되고, 참아야 되고, 놓치면 돌아오지 않고, 어떨 땐 지루해서 하기 싫거든요. 그래도 참아야 하니까, 인생이란 게.(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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