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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평점 :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편혜영 [포도밭 묘지], 김연수 [진주의 결말], 김애란 [홈 파티], 정한아 [일시적인 일탈], 문지혁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이렇게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번 수상집에도 근래에 읽었던 장편소설의 저자들이 많아서 반가웠고, 작가들의 개성이 듬뿍 담긴 다양한 필체의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짧은 단편들이 끝나면 저자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몇 페이지가 걸쳐 이어지고 소설을 읽는 동안에 이해되지 않거나 의문을 가졌던 부분들이 평론가들과 소설가들의 리뷰로 어느 정도 해소되며 뭔가 한과목의 어려운 과제를 마무리하는 것 같은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대상을 받은 [포도밭 묘지]는 상고를 졸업한 4명의 여고 동창들의 이야기이다. 한오라는 잘난 척, 아는 척 하는 친구의 이야기부터 시작되어 수영과 윤주 그리고 화자인 ‘나’까지 이렇게 4명이 대학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졸업하자마자 또는 졸업하기 전부터 각자의 직장생활을 하며 나중에 한오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봉안당을 방문하는 도중에 이미 시들어버린 포도밭을 지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특히 취업을 앞둔 20대 여성이 읽는다면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 밖에 없는 불합리한 시대적 정황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래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지금이 더 그런 학력에 대한 차별이 존재해왔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제는 여자애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장녀라는 이유로 부모들이 대학진학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고, 스스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몸을 갈아넣을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그 노력에 대한 응당한 박수를 받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소설 속의 한오처럼 말이다. 한오의 부단한 노력에도 오전 근무를 마치고 안 좋은 컨디션으로 견디다 못해 휴게실에서 쓰러진 것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죽음에 이른 장면이 근래에 꽃다운 나이로 노동 현장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한 청년과 오버랩되어 못내 가슴이 아파온다.
[진주의 결말]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다 기나긴 병간호와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인생에 회의감을 느낀 딸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설상가상으로 불까지 지른 유진주에 대한 방송국의 다큐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에 조언을 해주는 범죄심리학자와의 이야기이다. 이미 범죄자의 정황이 밝혀진 유진주에 대한 방송은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추가하기 위해 화자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미 경찰의 조사에 따라 범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밖에 없었던 ‘나’는 방송이후 유진주에게 메일을 받게 된다. 존경해온 그가 방송에서 유진주 자신을 언급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지만 ‘나’가 추정한 내용들은 틀릴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같은 달을 보더라도 달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가지 때문이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달에 가려고 선택한 길이 처음부터 틀렸기 때문에 이어지는 추정들도 틀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는 유진주가 자신의 범죄를 부정하기 위한 메일이라고 생각하며 방송국 PD가 유진주와의 제주에서의 만남을 거부하지만 얼마 후 경찰에서 밝힌 사건의 전개는 유진주의 범행이 아님이 드러난다.
[홈 파티]는 연극배우 이연이 후배 성민의 제안으로 오대표의 집에 모이는 사적인 모임에 초대받아 식사하는 도중에 벌어지는 내용이다. 이미 사회적 성공과 부를 이룬 오대표, 서, 박, 김은 이름 없이 성으로만 불린다.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그들과 친분을 쌓은 성민은 실제로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의 낯부끄러운 일은 밝히지 않고 오대표를 비롯한 이들과의 사적인 모임이 자신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연과 성민은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오대표를 비롯한 모임의 다른 이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저자의 다른 소설에서 나온 표현들을 예로 든 리뷰에서 말하듯이 현대의 새로운 계급은 명품가방이나 옷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피부와 치아를 통해 드런난다는 것처럼 연극배우 이연 앞에서 박과 김은 아주 오래 전에 연극 동아리를 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희곡 보이체크의 한 부분을 언급한다. 이연은 그들이 자신의 직업을 깍아내리지는 않지만 틀린 부분을 지적하지 못하며 애써 이사직의 역할을 연습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오대표가 고아원에서 만18세가 되어 시설에서 나갈 때 주어진 오백만원의 자립정착금으로 아이들이 명품가방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연은 이사직을 맡은 역할을 내려놓고 이연과 성민과도 같은 입장의 이들을 대변하게 된다. 배고픈 거야 어디서든 혼자 대충 때우며 가난을 숨길 수 있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인 명품 가방으로나마 가장 쉽게 가난을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니었냐고 말이다.
[일시적인 일탈]은 개구리 공포증이 있는 ‘나’가 K라는 준서 엄마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준서 엄마는 대학 강사이자 작가로서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다보니 준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고 ‘나’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화자는 준서 엄마의 작업실을 평일이 함께 쓸 수 있도록 제안 받고 캘리그래피를 연습하게 된다. 그곳에서 화자는 준서 엄마가 쓰다만 소설과 글을 읽게 되고 나중에는 그녀가 남긴 책들을 읽기 시작한다. 준서 엄마의 갑작스러우 죽음 이후 화자가 대출을 받아가면서까지 남편에게 캘리그래피 교실을 열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과연 준서 엄마라는 존재가 화자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진다. 준서 엄마의 작업실은 화자가 빌린 곳이었고 그곳에서 화자는 개구리 공포증을 극복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화자인 ‘나’가 우연히 일본인 친구 아야를 만나면서 우연과 확률의 계산으로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며 나눈 대화와 소설과 논문을 소재인 성수대교 붕괴를 빗댄 이야기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의 역사를 안다면 더욱 재미가 느껴질 조지 워싱턴 브리지에 대한 내용과 화자와 아야와의 만남은 성수대교와 대조적인 재난 사건에 대한 아야의 언급으로 이어진다. 성수대교는 무너지고 난 후 8차선 도로로 확장되어 재건되었을 뿐 과거의 뼈아픈 역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자리는 없다. 그에 비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그라운드 제로와 프리덤 타워가 갖는 격차는 화자가 준비하는 논문에서 준비한 제목이 아니라 지도교수로부터 제안받은 ‘균열은 어디에나 있다’는 제목으로 좁아진다. 아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800페이지가 넘는 논문같은 소설을 조지 워싱턴 브리지 위에서 강 아래로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날 평소처럼 버스를 타지 않고 사람들이 많던 지하철을 타 지각을 하게 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야라는 일본 이름을 아플 때 내는 소리가 맞냐고 묻는 친구에게 한국어 강사답게 그건 모음의 첫 발음이라고 알려주는 화자는 재난의 주인공이 될 뻔했던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소설과 논문에 적절히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소설을 던져 버리지 않고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아주 환한 날들]은 평생 억척스럽게 과일가게를 운영하다 남편의 사별 이후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는 ‘나’의 이야기이다. 평생교육원 매주 수요일 프로그램을 기계적으로 참석하며 일상을 이어하는 화자는 수필 쓰기 수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수강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오는 것을 보며 자신도 뭔가 써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미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위는 아이들을 위한 앵무새를 샀다가 갑자기 아이들이 앵무새를 무서워하게 되어 장모님께 한 달만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딸은 다른 핑계로 함께 오지 않고 사위만 덩그러니 혼자 온 것은 화자와 딸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지난 날의 과거를 통해 드러난다. 과일 배달을 하지만 가산을 늘리는데 무관심한 남편과는 달리 억척스럽게 장사를 해온 화자는 딸과의 몇 가지 사건으로 소원해지게 된다. 딸의 서운한 기억을 떠올리던 화자는 얼떨결에 앵무새를 맡아 키우게 되고, 집안을 더럽히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앵무새를 냉대하다가 기운이 없어진 상태를 보고 겁이나 동물병원의 조언을 청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앵무새를 돌보며 화자는 애정을 갖게 된다. 제목인 아주 환한 날들이 의미하듯이 어쩌면 과일가게를 접고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규칙적으로 해온 엄마인 화자는 딸과의 소원한 상태를 아쉬워했고, 손주들을 시어머니에게만 맡기는 딸에게 서운함마저 드러낼 수 없었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아쉬워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낙심했던 화자에게 앵무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은 그녀에게 다시금 환한 날들을 되돌려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과 작가노트의 내용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띠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236)”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너무 무섭고 고통스럽다. 소설을 쓸 때마다 달아나고픈 충동에 휩싸이는 건 소설을 쓰는 일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옥미는 결국 해냈고 그걸 생각하면 아주 작은 불빛이 켜진 것처럼 내게도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를 등불 삼아 컴컴한 강물 속 물풀처럼 자라나 있는 슬픔과 고통, 시기심과 비겁함, 자기모순과 기만 따위를 헤치며 또다시 조금씩 앞으로 헤어쳐나간다. 그 길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어코 환한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