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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빚을 져서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평점 :
예소연 작가의 [영원에 빚을 져서]를 읽었다. 근래에 들어 저자의 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얼마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그 개와 혁명'을 읽고 나서 순식간에 팬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을 두 작품은 아버지를 잃고 나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지독한 상실감에 몰입된 저자의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삼아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죽음이라는 이별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 주어진 일의 특성상 또래에 비해 젊은 나이부터 죽음의 과정을 지켜볼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폭넓은 공감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나에게 실제로 벌어진 영원한 이별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수없이 머리속으로 상상해온 시물레이션을 통해 그 이별의 슬픔을 낱낱이 기록해두려고 했었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른 후에 1분 1초의 순간이 그리워질 때를 대비해서 영원히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도록 슬픔을 남겨두려 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폭풍같은 이별의 순차적인 절차를 밟고 나니 그게 얼마나 큰 만용이었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득문득 두렵고 절망적이고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마지막 순간들이 불현듯 내 삶을 덮쳐오자 도망가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때의 그 슬픔의 장면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는 더 이상 예전처럼 지내지 못할 것만 같아 애써 외면하려고만 했다. 그러니 슬픔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짐짓 그동안 내가 어른스러운척 건냈던 어쭙잖은 위로의 말들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무력한 나를 감추려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저자의 소설을 읽으며 참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영원한 이별 이후에 다가오는 상실의 아픔에 몰입되어 그 슬픔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알게 되었다. 소설은 화자인 나와 함께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떠났던 친구인 혜란과 석이의 이야기이다. 석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이 뜸해진 혜란과 함께 석이를 찾아 다시금 캄보디아로 떠나게 된다. 화자인 '나'는 소설 속에서 엄마를 잃은지 얼마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사정에 마음을 준 여유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캄보디아에 가는 것이 석이에게 주었던 상처에 용서를 구하는 유일한 길임을 자각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을까 싶다. 셋 중에 가장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석이는 캄보디아의 봉사활동 중에 절실한 믿음을 갖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화자인 동이와 혜란에게 세월호 사고와 같은 참사의 비극을 재생시킨다.
석이를 찾으러 캄보디아에 도착한 동이와 혜란은 봉사활동 시절 석이와 가까웠던 학생인 삐썻을 다시 만나게 되고, 오래 전 삐썻과 함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캄보디아에서도 비슷한 사고에 대해 언급했던 석이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프놈펜에서 큰 물축제가 열리는 날 사람들이 먼저 입장하려고 마꾸 뛰다가 다리 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고 3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끼어서 질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얘기에 석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58)"
동이와 혜란은 삐썻과 함께 석이가 왔을 것이라 짐작되는 꺼삑섬의 다리에 도착하여 당시 참사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게 된다. 정부가 책임을 지우려는듯 원래 있던 다리의 일부를 무너뜨리고 새 다리를 지었음을.
"나와 혜란은 사고의 흔적이 너무도 명백하게 지워진 그 다리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왜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할까. 또 어떤 죽음은 거룩하게 포장되고 어떤 죽음은 조용히 잊힌다. 그것이 과연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 걸까?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경험했던 그 거대한 상실을 떠올렸다. 엄마의 죽음. 나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갈라지고 쪼개지고 으깨지고 녹아내렸다.
상실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수많은 상실을 겪은 채 슬퍼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거고 그것은 나와 관계 맺은 이들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엄마를 잃음으로써 내가 상실을 겪었듯, 누군가도 나를 잃음으로써 상실을 겪을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상실의 늪 속에서 깊은 슬픔과 처절한 슬픔, 가벼운 슬픔과 어찌할 수 없는 슬픔들에 둘러싸여 종국에는 축축한 비애에 목을 축이며 살아가게 되겠지.
'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
처량하고 처절하고 절실한 것들을 믿을 거야.(112-113)"
상실의 아픔과 슬픔에 절여져 일상이 무너지는 꼴을 무심하게 방관하는 것 또한 나에게 벌어진 불가항력적인 일을 받아들이는 절차 중의 하나임을 깨달아 간다. 그렇게 점점 희미해지다가도 이러다가는 완전히 다 잊어버릴 것만 같아 뒤늦게나마 조금씩 용기를 내어 하나씩 조심스레 슬픔의 장면들을 톺아보는 것은 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아마도 나를 강건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나와 나 아닌 이들의 삶은 아주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혀 있고 그 얽힌 모양을 면면히 바라볼 수 있으려면 우리는 다름 아닌 서로의 슬픔에 의연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틈틈이 슬퍼하고 그 슬픔을 평생 간직하겠다는 태도야말로 나 그리고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저는 지금 슬퍼하고 추억하며 비로소 온전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빈자리를 곱씹으며 비로서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슬픔 앞에 무력하지만 그만큼 단단해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껏 슬퍼하고 그것을 내보이기로 했습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창 너머 말간 하늘을 바라볼 때, 새가 아주 높이 날고 있을 때, 앞으로는 강건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다짐을 할 때.... 저는 마음속으로 죽은 사람을 호명합니다. 그래야 산 사람도 살고 죽음 사람도 산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점점 더 희미해지겠죠. 그래도 끝끝내 붙잡고 있어보려고 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작가의 말 중에서(14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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