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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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었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에는 식물 키우기의 일가견이 있는 저자가 [식물적 낙관]처럼 식물에 관련된 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터리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첫 장을 읽으면서 [경애의 마음]에 이어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킬 빼어난 작품이 되지 않을까란 기대를 품게 되었다. 때마침 책을 읽기 며칠 전에 창덕궁 돌담벽 앞 건물에서 열린 북토크에 다녀왔던터라 그전까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원서동이 어딘지도 몰랐던 처지에서 순식간에 영두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공간적 우연까지 겹치게 되었다. 


소설을 접할 때마다 자주 느끼는 바지만 특히나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을까'란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바쁘게 살다보면, 상처가 깊어지면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자기자신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두렵기때문에, 시간을 거슬러 나를 힘들게 했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것 그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로지 나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만 재생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난이 섞인 재판정의 목소리가 멈추지를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작품 속에서도 영두의 마음과 영두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영두의 생각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쳐다보기도 싫은 과거의 나를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용기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주인공인 영두는 강화 석모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중등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된다. 영두가 보낸 유년 시절은 시간적으로 아주 오래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석모도와 서울의 괴리감 때문인지 리사의 빽이 영두를 보고 촌에서 온 애라는 표현은 50년도 더 된 옛날을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낯설었다. 어쩌면 지금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방의 아이들을 촌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두는 할머니와 친분이 있는 원서동에서 낙원하숙집을 운영 중인 문자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하숙집에서 영두는 할머니의 손녀 리사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리사가 문자 할머니와 피가 섞인 손녀가 아니라지만 지난치게 냉랭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사의 성격은 언젠가는 영두와 큰 마찰을 빚게 될 것이라는 기시감은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작성을 위해 원서동에 가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영두의 주저함의 원천적인 이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영두는 석모도의 철새 흰꼬리수리와 흰죽지수리에 대한 홍보 자료를 쓴 덕분에 석모도 헤밍웨이라는 호칭으로 바위건축사무소에서 발주를 딴 내 창덕궁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계약직을 제안받게 된다. 영두에게 큰 상처를 주고 학교를 중퇴하게 만든 원서동의 암울한 기억을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건축사무소에 만난 작도의 신 은세창과 제도의 신 제갈도희를 만나면서 서서히 일을 맡는 것으로 기울게 된다. 특히나 영두가 인간을 가장 좋아하는 새로 대표되는 곤줄박이에 견줄 만큼 성격이 좋은 제갈도희의 정의로움과 다정함은 읽는 내내 상쾌한 기분을 유지시켜 주었다. 왠지 모르게 바위건축사무소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다 함께 일하면 참 좋을 것 같은 성정의 인물들로 비춰져서 동궐사무청 장과장의 비열한 모습과는 너무나도 상반되게 다가왔다. 


본격적인 대온실 수리가 시작되고 보고서 작성을 위해 문헌을 살펴보던 영두는 리사와의 뼈아픈 추억을 상기하며 문자 할머니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어째서 문자 할머니의 집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것일까란 의문과 더불어 일본 사람이었던 할머니는 왜 홀로 이곳에 잔류하게 된 것일까라는 궁금함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될 무렵에 지어지기 시작한 대온실의 역사과 맞물려 해방과 한국 전쟁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나란히 숨겨진 사실들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두가 제갈도회의 대온실 밑 지하에 배양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더불어 대온실을 건축했던 후쿠다 노보루의 포도에 대한 열정이 담긴 이야기와 대온실을 담당했던 조선인 이창충과 박목주에 얽힌 사건들의 전개는 마치 땅 밑에 숨겨진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듯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는데, 영두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작성을 위한 작업 중간에 삽입되는 영두와 리사의 낙원하숙 시절 이야기는 최고조로 올라간 긴장감을 완화시키며 영두가 비교적 집요하게 대온실의 역사를 샅샅이 살펴보는 이유를 짐작케 해준다. 


영두와 리사의 분노를 유발케 하는 억울한 사건은 영두를 병들게 하고 급기야 모든 것을 내려놓는 단계이 이르러 영두는 석모도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야겠다 싶은 장소들은 아예 발길을 끊어서 최대한 망각할 수 있게 노력해왔지만 이 일을 맡으면 그곳에 대해 생각하고 더 알게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일년 남짓의 내 임시 일자리가 있었고 600년 전에 건축된 고궁이 있었고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구나 싶어 망각을 결심한 낙원하숙이 있었다.(17)" 아직 아물지 않은 영두의 상처는 대온실과 하숙집을 마주하며 조금씩 치유되어 가고 대온실이 품고 있는 묵직한 비밀과 리사가 준 냉담한 상처로 내려간 온도가 석모도의 친구 은혜의 딸인 산아와의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본래의 정감으로 제자리를 찾게 된다. 


영두는 대온실과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다가 아랑 해설사의 도움으로 일본에 있는 당시의 자료를 구할 수 있게 되고 문자 할머니가 마리코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잡지에 대온실과 관련된 글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째서인지 마리코는 창씨개명한 양아버지인 기노시타 박목주와 동생과 함께 지내다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까지 조선말을 할 줄 몰랐던 마리코는 보모였던 두자의 도움으로 오로지 살기 위해 조선말을 배우게 되고 일본 이름을 버리고 박진리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해방과 더불어 왕실의 재산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비양심적인 관리들의 부폐한 비리가 벌어지고 박목주의 상관이었던 이창충은 그 누군에게도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주도면밀함으로 종국에는 박목주의 입을 닫기 위해 그를 죽이기까지 한다. 북한군의 남하로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에도 상관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출장을 떠났던 박목주는 마리코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마리코는 열이 난 동생을 살리기 위해 혼심을 기울이다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이창충에게 잿물이 담긴 주사를 눈에 찔러 복수를 감행하게 된다. 


문자 할머니의 죽음 이후 낙원하숙을 팔아 한 몫을 챙기려는 리사와 할머니가 보육원에 기증하려 했다는 도장이 찍힌 글로 인해 소송은 진행중이었고, 영두가 지난 날 일수를 받으러 갔을 때 문자 할머니가 사용했던 도장이 찍힌 수첩을 찾아내어 리사의 욕심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대온실의 지하를 장과장 부재 중에 파서 그곳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려 했던 영두와 제갈도회는 그곳에서 사람뼈가 나오면서 무척이나 심각한 사안으로 변해버린다. 공사가 정지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건축사사무소 소장과 장과장은 불같이 화를 내게 되고 영두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담당자에서 제외된다. 영두는 혹시나 마리코의 동생 유진의 뼈가 아닐까 걱정하지만 보육원 원장님을 만나고 문자 할머니의 동생이 유진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게 기적일까! 영두는 기억이 가물해지는 유진 할아버지를 만나 누나를 기억하는 내용을 전해듣게 되고 어이없게도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이창충이 죽는 날까지 호위호식을 누리며 살았고 유진 할아버지조차도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연을 알게 된다. 


사실 영두에게는 리사가 낙원하숙을 상속받는지 못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두에게는 리사와 빽이 준 상처로 인해 문자 할머니에게 조차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비로소 문자 할머니의 마리코 시절의 과거를 마주하면서 온전히 열수 있게 되었고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두가 구원을 뜻을 수난이 그치는 것이라 설명하는 장면(158)과 낚시꾼 청년의 설화가 의미하는 바를 할머니에게 듣는 장면(402-403)은 시대와 사람을 거슬러 언젠가는 모질어진 마음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저자의 말이 전해준 '이해한다'는 말에 담긴 무게가 더더욱 깊이 와닿는다. 


"인물의 동작과 옷차림, 말씨, 표정, 거리의 활기와 적막, 집 안 마루의 감촉과 대온실의 유리창과 대나무밭, 긴 잎의 바나나와 맹수사의 동물들, 풍랑에 흔들리는 상선과 눈 쌓인 피난길에 서로의 안전을 당부하는 불안한 얼굴들, 패전의 무게를 지고 남하하는 이들의 걸음걸이.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모색을 했는가를. 그래서일까. 작업을 하는 동안 어떤 소설보다 '이해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는걸 깨달았다. 도서관과 공유 오피스와 카페를 전전하며 자료들을 읽다가 마침내 이해에 다다르면 슬픔이 차올라 자리를 박차고 나와 걷던 시간들이 이 건조한 목록에 담겨 있다. 내가 한 이해는 깨진 유리 파편처럼 그 시절을 자그맣게 비출 뿐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한참을 걸어야 감정이 식을 만큼 너무나 생생한 것이었다. 나는 자주 기도했다.(409-410)"


"아니란다. 영두야, 그건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

세상 어딘가엔 지금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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