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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평점 :
이서수 작가의 [마은의 가게]를 읽었다. '마은'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제목을 보았을 때 불혹의 나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카페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진짜 많이 마시는 것 같아도 커피를 팔아 가게를 운영하고 이익을 남기기란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물원과 같은 대형 카페의 등장 그리고 아주 저렴한 가격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카페의 등장으로 웬만큼 특징을 갖지 않고서는 개인 카페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인 공마은이 카페를 차리고 운영하는 내용을 살펴보니 여성이 혼자서 자영업을 운영하는 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꽤나 심한 난처함과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학원 강사와 연극 배우의 일을 하다가 모은 얼마간의 돈으로 권리금이 없는 낡은 장소를 택한 마은은 빚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덜컥 계약을 하게 된다. 최소의 비용으로 인테리어를 마치고자 이곳 저곳 업자를 만나 카페를 꾸미기 시작하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단계를 마주하게 되고 똥파리처럼 꼬여 어슬렁 거리며 이것 저것 참견하기 시작한 동네 남자들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된다. 개업떡을 돌리라는 엄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상벨을 꼭 달아야 한다는 정미 언니와 작은 숲 카페 사장의 조언에도 마은은 비용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두려움에 떨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인지 아무런 안정 장치를 추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밤길을 걷기에 안전한 나라라고 하지만, 마은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다보니 결코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나의 친족인 젊은 여자가 혼자 카페를 운영하며 밤에는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데, 한 밤중에 누군가가 카페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면 얼마나 걱정되고 불안할까. 고시원 월세를 아까기 위해서 선택한 카페 안의 기숙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마은이 왜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 카페 바닥은 보일러가 들어와서 한 겨울에도 따뜻하게 누울 공간이 있고 화장실도 있어서 샤워까지 가능하다면 구태여 좁디 좁고 그 또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리빙텔과 같은 곳에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복병은 마은처럼 여자 혼자 머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빌런들의 출몰이다. 특히나 마은의 가게 근처에 자영업을 하는 중년 남성들은 마은에게 선 넘는 질문을 던지며 치근덕 거린다. 카페에 들어와 사적인 질문을 하거나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마은이 사근사근하지 않다고 대놓고 불평을 한다. 혹시나 그들이 사람들이 시선이 사라진 시간에 이상한 짓을 하면 어떻게 할까? 그들을 대적해서 나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는 마은 말고도 작은 숲 카페를 운영하는 솔이와 옆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채영 그리고 마은의 엄마 지화씨가 울산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1인 여성 자영업자들이 등장한다. 마은은 이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마은이 알지 못했던 여성 자영업자의 위태로움을 전해듣고 공감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시답잖은 농담에 상처를 받고 가게의 존폐를 결정지을 손님과의 실랑이를 견디고 있는지. 소설의 말미에 마은은 이모와 함께 울산으로 내려가 엄마를 만나서 전 남자친구에게 협박까지 하며 딸을 지키려 했던 엄마의 강단있는 고백을 듣게 된다. 엄마는 마은이 생각했던 것처럼 착하고 순하지 않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딸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마은과 카페를 통해 연결점을 갖는 보영은 재경관리 부서의 사원이다. 90년대 생 답고 야근을 거부하고 철저한 워라벨을 꿈꾸지만 보영이 류팀장처럼 헌신하지 못하는 데에는 여성으로서 팀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보영에게는 확실한 미래를 그리지 않고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호라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그들의 관계를 안정적이지 못하고 주호가 마은의 가게에 설치한 CCTV 카메라를 확인하는 앱을 지우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서 결별을 맞이한다. 보영은 류팀장의 지시로 여성을 제외한 신입사원 입사원서를 가려내고 자신보다 3년이나 후배가 절대로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신입사원 조현수는 입에 발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잘하고 야근도 거부하지 않는 영악한 인물로 비춰지며 보영의 자리를 위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은의 가게에 들어와서 치근덕 거리는 21세기의 건달이나 마은을 위협했던 술취한 어떤 남성의 모습을 생각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는 여성이 혼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선택인가라는 비관적 생각에 몰입된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일까? 이런 위협과 두려움의 해결책은 결국 여자에게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유물로만 가능할 것일까?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민주주의적 사회를 지향하는 시대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법과 규칙들은 한 개인의 안위를 보장하기에 충분치 않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보복 범죄와 데이트 폭력으로 숨지거나 다친 이들의 소식을 주기적으로 전해듣는다. 그럼에도 그치지 않는다. 보호 요청을 해도 경고에만 그칠 뿐 위협을 느낀 당사자가 비참한 죽음을 당한 이후에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만 말한다. 어쩌면 소설 속 마은 또한 그런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마은이 그런 피해자가 되었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하는 말 중의 하나는 '그러길래 왜 여자가 혼자 가게에서 숙식을 하고 그래' 혹은 '그러니까 비상벨과 같은 안전장치를 잘 해놨어야지.' 등이 아닐까.
절대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거나 억지스레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뭔가 심각한 위협에 놓인 것이 아닐까. 약육강식의 원시시대도 아니고 이렇게 첨단 과학의 문명을 누리고 살면서도 원초적인 욕구하나 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한 이들이 난립하는 시대를 견뎌내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무상의 연대를 제시한다. 비록 마은이 폐업을 고민하며 견디고 견뎌 얻어낸 성과이기에 더욱 안쓰럽지만, 마은의 가게에 방문하는 엄마와 아기들의 존재가 불의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을 항상 각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경고라니 조금은 씁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내 감정의 색채에 대한 재후의 짐작이 두려웠다. 내가 모르는 나의 마음을 자신은 알고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맨발로 압정을 밟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십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감정을 내가 정의 내릴 수 없었던 순간들이 압정처럼 내 발에 박혀 있었다.(121)"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적당히 선을 긋되 필요할 땐 확실히 돕는 관계. 그리고 다시 물러서서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돌아가는 관계. 우리는 자기 원의 한쪽 끝이 상대의 원과 겹쳐지는 지점을 매일 바라보면서 오롯이 남아 있는 나머지 원 안에서만 살아간다.(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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