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걸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지음, 신혜빈 옮김, 최순규 감수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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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로즈 크레이그의 [버드걸]을 읽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보면 매일 듣게 되는 새 울음 소리가 있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옅은 청록색의 깃털이 꼬리까지 이어져 순간 파랑새인가 싶었지만, 또 그렇게 강렬한 파란색은 아니었다. 울음소리가 그다지 듣기 좋은 편이 아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 새 이름을 아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몰랐다. 그 새가 둥지를 틀고 나서부터는 비둘기도 까치도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얘기만 들었다. 주변에 새를 잘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그저 흔하디 흔한 참새, 비둘기, 까치, 까마귀 정도만 구분할 정도로 무심하게 살아왔는데, 이번 책을 읽고 전세계에 1만 여종이 넘는 새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그런데 저자가 그 반에 해당되는 5천 종의 새를 직관했다니 그것도 스물 살도 안되는 나이에 말이다. 


탐조인이라는 말 또한 들어 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세상에 다양한 취미와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많겠지만 새를 보기 위해 전세계를 누빈다는 것은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책에도 나와 있듯이 희귀한 새들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이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길이 아닌 길을 뚫고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며 오랜 시간 기다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꽤 오래전 무슨 연유인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부엉이가 학교 기숙사 앞에 떨어져 있는 것을 학생들이 발견하고 신고해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린 적이 있다. 부엉이를 놓을 데가 없어서 우산꽂이에 임시로 놓아두었는데, 크기를 실제로 보고 너무 놀라서 부엉이가 이렇게 컸다니 순간 무슨 모형을 갖다 놓은 줄만 알았다. 어떤 종류의 부엉이인지, 아니 부엉이가 맞는지조차 모르겠지만 하늘에 나는 새가 실제로 가까이 보면 이렇게 거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저자가 아주 어린시절부터 탐조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마이아로즈의 아빠와 엄마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열렬한 탐조인이었기 때문이다. 크레이그 탐조대라고도 명명할 수 있는 탐조인 가족들은 새를 향한 어마어마한 사랑으로 전세계 7대륙 40개국을 누비게 된다. 이 가족의 이동 목적은 단 하나, 새로운 새를 탐조하기 위한 불편하고도 복잡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열정적으로 몸을 불사르는 이들이 부럽고 신기하게 여겨졌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어느 정도의 단념과 포기가 수반되기 마련인데, 크레이그 가족 같은 이들은 그런 장애물을 보란듯이 거둬내고 무조건 앞으로 진격한다. 새로운 새를 보기 위한 미친듯한 열정에 존경심이 들 정도이지만, 저자의 책이 더욱 큰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은 이 책이 단지 새로운 새를 보고 난 이후의 보고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새를 탐조해온 마이아로즈는 자연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처럼 인간과 공생해온 수많은 생물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탐조를 다니며 멸종 위기에 처한 새를 확인하게 되고, 희귀종이 점차 늘어나는 이유는 새의 거처가 줄어들게 만드는 인간의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 때문임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자연을 탐사한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적인 탐조인과 멸종 위기에 처한 새를 구조하고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 거의 대부분 백인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다양한 종류의 새를 보호하기 위해서 더 먼저 확립되어야 할 것은 탐조인의 구성에서부터 가시적 소수 인종이 배제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천명하게 된다. 새는 백인 남성의 거주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전세계 어느 곳에든 퍼져 있기에 새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거주하는 소수 인종 또한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한 창구가 개설되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가 언급한 가시적 소수 인종이라는 말 속에 담긴 유색 인종에 대한 극심한 차별과 이슬람교도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성 또한 포함되어 있기에 마이아로즈의 탐조인으로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단지 아직 보지 못한 새를 보고 기록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경제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자연에 대한 공통된 책임이 있음을 공표하고 있다. 


마이아로즈가 그레타 툰베리,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과 더불어 기후 위기에 대한 운동과 성명을 발표하는 운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크레이그 부부의 무한한 응원과 지원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안쓰럽게만 다가오는 마이아로즈의 엄마인 헬레나의 양극성 장애는 가족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인 탐조 여행을 통해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는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조증과 우울증을 오가며 자살 충동을 느끼며 시도하려는 의도조차 마이아로즈와 아빠의 헌신적인 관심과 사랑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새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진 저자임에도 엄마가 완전히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단숨에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고백은 묵직한 감동과 더불어 크레이그 가족의 탐조 여행은 단지 새를 보는 과정이 아니라 정신분열증을 앓는 엄마를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많은 갈등과 슬픔의 시간을 보낸 것인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견뎌낸 고통의 시간은 기다리던 새를 마주했을 때의 희열로 충분히 보상되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 저자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무척 짧은 것 같지만 저자가 새를 만나며 엄마를 돌본 시간을 따라가보니 우리 삶은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감동받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충분한 시간을 충만한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 때로는 침묵하고 기다리며 반가운 만남이 남길 여운을 고대해본다. 


"나는 여러 활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가시적 소수 인종'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는데, 이 개념이 자연을 다루는 분야에서 특히나 유용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가시적 소수 인종은 간단히 말해 자기 자신을 비백인으로 간주하는 인종 집단을 일컫는다. 흑인, 아시아인,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BAME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이지만, 이 분야에서는 그다지 유용한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야외로 나가 자연을 즐기는 데 있어선, '소수민족'일지라도 백인일 경우 현실에 존재하는 장벽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부색이 달라서, 다른 모든 이들과 다르게 생겨서 존재하는 장벽이다.(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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