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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를 읽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입국심사". "캠벨타운 임대주택", "골드러시", "졸업 여행", "헬로 차이나", "한국인의 밤", "외출 금지", "배영" 이렇게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얼마 전 읽은 문지혁 작가의 소설집이 미국 유학생과 이민자들을 배경으로 했다면, 서수진 작가의 소설집은 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민자들이 이야기가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미국과 호주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영어가 공용어인 곳이 두 나라에게 아마도 가장 많은 교민과 유학생이 거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가본 적은 없지만 두 나라에서 한동안 머물다 온 동료들이 있기에 그곳의 이야기를 자주 듣곧 했다. 전해들은 얘기들로는 각 나라의 특성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기에 장점을 들을 때는 '아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공감하게 되고, 인종차별과도 같은 어이없는 일들의 예를 들을 때면 '대체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까'라는 막연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단정적일수 있겠지만 문지혁 작가의 [고잉 홈]과 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를 읽고 보니 미국에는 유학을, 호주에는 워킹홀리데이의 비율이 높은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유학이든 워홀이든 일정기간이 지나면 비자발급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게 아니라면 결국은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 비자 갱신을 위한 서류 준비와 발급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지난하고 짜증나는 일인지. 비자 발급 관공서 직원의 갑질과 행여라도 책 잡힐까 두려워 온갖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비자 연장이 수락된 날 마치 엄청난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파티라도 벌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일부 잘사는 나라들의 횡포라 단정지으며 우리나라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국뽕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자를 연장하려는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비자발급 기관도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친절하거나 인격적인 대우가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정치불안이 지속되다보니 곳곳에서 자국을 탈출하여 보다 안전한 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난민이 속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 덕분에(?) 육로가 차단되어 불법밀입국자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지만, 배를 타고 밀입국하거나 워홀비자로 입국하여 자취를 감취는 불법체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농업 및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에서 이주민 노동자들과의 삶은 불가피하고 더욱 잘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분위기가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미국이나 호주에서 받았던 인종차별을 대물림하듯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적대적 시선이 팽배한 것 같다. 더군다나 몇 년 전에 제주도에 머물던 예맨 난민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놀랍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사람 사는 곳 어딜가나 마찬가지라고, 혹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지내보면 괜찮다'고 한다.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순순혈통인 것처럼 떠벌였지만 막상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심지어 저 멀리 유럽과 남미의 피가 섞인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인종, 언어, 문화 등이 다른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과 수단일 뿐 그것이 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의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 가장 많은 판단기준을 설정하는 인간의 편협한 뇌기능은 특히나 우리날에서는 피부색으로 적대와 호의를 순식가에 갈라치게 만든다.
문지혁 작가가 추천사에 "이민자가 꼭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 사람만을 부르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떠나 새로운 곳에 도착하고, 그곳의 언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하며, 결국에는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므로, 따라서 서수진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국의 인물들은 단순한 디아스포라의 일원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뒷표지)"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미국이나 호주처럼 먼 곳으로 이주하여 사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학교와 직장 등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고 그리워하기도 몸서치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서수진 작가의 단편 속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행여나 좌절감에 휩싸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적인 충동이 무한한 해결책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지속할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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