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편의점 - 전지적 홍보맨 시점 편의점 이야기
유철현 지음 / 돌베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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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현 님의 [어쩌다 편의점]을 읽었다. 부제는 “전지적 홍보맨 시점 편의점 이야기”이다. 제목은 아무튼 시리즈 같기도 하고, TV프로그램 어쩌다 사장 짝퉁같기도 했는데, 읽다보니 놀람의 연속이었다. 아니 회사에서 아무리 홍보글을 자주 썼을거라 예상해도 이렇게 전문작가 빰치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깨알같은 개그와 시대의 흐름을 적절히 읽어내는 통찰력 또한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테니스 선수 나달의 루틴을 예로 든 부분에서는 카페에서 읽다가 혼자 미친사람처럼 큭큭 거릴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혼자 집에서 읽었다면 그렇게 많이 웃지 않았을수도 있었을텐데, 책을 읽다가 소리내서 웃은 게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웃음이 터지며 갑자기 무안함이 밀려오고 혼자 실실 쪼개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그만 웃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저자분이 평소에 정말 많이 꽤나 웃기는 분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학생 때에는 편의점을 곧잘 가곤 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 가서 저자가 열거한 내용 중에 처음 접하는 부분도 많았다. 저자의 직장은 아마도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민기 배우가 분한 극중 직업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 편의점을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이렇게 직접 매장마다 나와서 점주들과의 관계를 맺는구나 싶었는데, 책에서도 편의점 기업에 입사한 저자의 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 본사에 입사한 정직원도 한 동안 매장에서 직접 커피를 만들고 손님 응대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편의점 본사 직원도 각 매장에서 점원으로서의 경험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어느 곳이든 손님을 응대하며 판매 수익을 얻는 회사들은 유사한 정책을 갖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포스기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 매장 관리를 한다는게 어불성설이기는 하니 말이다. 


7-8년 전인거 같은데, 1월 말에 제주도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려서 며칠 동안 비행기가 뜨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스 보도에는 결항의 연속으로 결국 불륜이 발각되기도 하는 웃지 못할 에피스도들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후쿠오카 여행 중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후쿠오카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게 몇십년 만에 처음이라고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후쿠오카에서 벳푸까지 전용버스로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고 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고속도로는 아예 폐쇄가 되었고 국도로만 거의 40키로 이하의 속도로 달려 무려 8시간만에 도착하게 되었다. 계획했던 일정은 다 무너졌지만, 눈길을 천천히 달리는 버스는 나름대로의 운치와 멋이 있어 일행들 중에 불평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일본의 편의점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눈이 왔음에도 예약한 버스 기사님이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다 주기 위해 운행을 지속했는데, 대신 1시간에 무조건 15분 정도의 정차 시간을 갖았고 그 장소는 바로 편의점 주차장이었다. 


아니 편의점 주차장들이 뭐 그리 쓸데없이 넓은지, 아님 공용주차장 옆에 편의점이 있는 것인지 항상 편의점 앞에 주차를 하고 용변을 해결하고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사서 다시 차에 오르곤 했다. 1시간 마다 정차할 것이라 공지했기에 화장실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일행들은 편의점에서 쉴세없이 팩에 담긴 사케를 사가지고 와서 마시다 잠들기의 반복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불만이 사라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아무튼 그때 일본이 왜 편의점 왕국이라 불리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저자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편의점이 늘어나는 이유가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조금이라도 더 편의와 편리를 중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개인중심주의의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서도 편의점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란 막연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시장과 동네슈퍼가 사라지고 대형마트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편의점들이 거의 모든 지역을 망라하는 것 또한 각박한 세상에 추진력을 달아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흐름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 또한 젖어들 수 밖에 없는 문화의 일부인 것 같다. 특히나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편의점은 하나의 도피처이자 구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1 판매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막상 그 문구를 보고 나서는 구매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편의점 커피가 생각보다 맛있고 진하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병원에 있는 편의점은 단순히 편의점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급하게 필요한 용품과 잠깐의 쉼을 갖게 해주는 안식처라는 사실이 편의점을 킹인정케 만든다. 


“먹고 사는 일은 그렇게 심오한 겨를이 없는 그 외의 더 무수한 심오함으로 점철된 불가피한 관성과 반복이었다.(40)”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왜 이렇게 항상 초라하고 힘겨울까? ~~ 재선이에게 바나나맛우유는 긴 기다림을 견디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것이었고, 나에게는 친구의 부재를 선명하게 인화하는 현상액 같은 것이었다.(57)”


“‘어떤 인간’으로 인식된다는 건 한 사람의 사회적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더 넓게는 그 사람의 인생을 포괄하는 것이고 더 깊게는 그 사람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 ‘어떤’은 대개 성격, 직업, 소속, 취미, 관심, 가치관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 한 가지 대상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 뜨겁게 몰입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 ‘어떤 인간’이라는 타이틀은 지나온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기에 소중하고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202-203)”


#유철현 #어쩌다편의점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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