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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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디케르의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을 읽었다. 신간 목록을 살펴보다가 미리보기를 잠깐 읽어보았는데, 단숨에 흥미유발이 되었다. 이전까지 저자의 책을 보지 못했지만 출판사의 안목에 기대어 보기로 했다. 읽다보니 이전에 발표된 소설들이 언급되었고, 이전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전작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지금 읽고 있는 신작을 멈추고 절판된 전작들을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갈등이 일었다. 하지만 이미 알래스카의 살인 사건이 발생된 이후 숨가쁘게 진전되는 스토리에 몰입되어 행여나 전작의 스포일러가 나온다 하더라도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마도 저자의 절묘한 배려로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란 의구심만 부추길 뿐 자세한 정황은 나오지 않아서 오랜만에 중고서적을 뒤적여 전작을 주문하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거둔 기욤 뮈소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조엘 디케르의 소설 또한 반전의 반전을 기하며 페이지 터너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이런 소설책만 있다면 여행을 홀로 떠나며 기차와 비행기를 장시간 탄다해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을 것 같다. 책을 들고 있는 팔이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면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청하다가도 궁금한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설렘으로 인해 여행은 더욱 즐거워진다. 이번 출장에도 가방이 무거워짐에도 불구하고 1권을 다 읽고 나면 집에 돌아올 때까지 2권을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 어깨의 통증을 견뎌내며 2권까지 짊어지고 갔다. 역시나 업무를 마치고 술을 한 잔 걸친 상태에서도 노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마커스의 행보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가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런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실존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화자인 마커스 골드먼이 스승인 해리 쿼버트의 사건을 통해 슬럼프를 극복하고 저명한 작가가 되어 스승의 사건을 풀어나갈 때 만났던 경감 페리와의 조우는 장대한 시리즈물을 연상시킬만큼 긴박감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추리소설과 형사물이 그렇듯이 사건의 발단 전개와 점점 미궁에 빠지는 등장인물들간의 긴장감은 결말에 이르러 용두사미 되는 꼴이 많았는데, 이번 작품도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는 절정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실망감과 더불어 뜻밖의 인물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마무리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알래스카와 얽힌 월터와 에릭 그리고 페트리샤의 이중적인 면모에 대한 전개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어디까지 극단적일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 소설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당연히 이성애적인 관계에만 집중해왔는 모습과는 반대로 주인공의 성적 지향이 동성애나 양성애일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성적 지향으로 인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때로는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알래스카의 양성애적인 성적 지향이 드러나면서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결정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요즘들어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걸리는 기사 제목을 보기가 두려워질 정도로 기괴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 일명 ‘묻지마 살인이나 폭행’이 빈번히 일어나고 익명의 다수를 헤하기 위한 무모한 시도와 성폭행을 하기 위해 의도적인 접근과 죽음에 이르는 폭행까지 서슴치 않는 범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범행은 마치 갈때까지 간 망쳐진 인생에 화풀이라도 하듯이 미지의 대중들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알래스카의 죽음에는 분명 서사가 있다. 알래스카를 죽인 범인으로 오인된 월터와 에릭의 정황도 다 이유가 있었고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그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기도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은 서사가 없다. 죄를 저지른 이들의 서사의 정당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납득하기 힘든 그저 정신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죄의 결과들만 남아 있어 희생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죽음은 너무나도 흔하게 발생된다. 허구의 이야기임을 알고 보기에 잔혹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일시적인 공감에 불가하기에 다시금 쉽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실제로 주변에서 벌어진다면 나와 관계된 누군가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듯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흉악한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사건의 정황에 대한 뉴스 보도와 더불어 희생당한 분들의 가족들의 인터뷰가 기사로 전해질 때가 있다. 단 몇 줄로 요약된 인터뷰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사건이 발생되고 난 직후에는 아마도 머리가 정지된 것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리저리 끌려다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염려스러운 것은 그 끔찍한 사건이 대중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질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겉으로 그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고 그저 안쓰러운 눈으로만 희생자의 가족들을 바라볼 때 홀로 남겨진 이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을 대체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을 생각하면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건들이 마치 내 가슴에 못을 박는 것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도 알래스카, 월터, 에릭, 엘레노어의 부모를 인터뷰하는 페리와 마커스의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간신히 마음 속에 꾹꾹 눌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제와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화를 내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그럼에도 잃어버린 자녀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살아가는 힘이라고 생각하듯이 페리와 마커스의 질문에 대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비극적인 사건이 가져온 태풍과도 같은 변화를 실감케 만든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그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접하게 되면 그 이전의 자신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앞으로의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번 작품에서 마커스와 해리 쿼버트의 사건을 해결한 후 절친이 된 페리 형사 또한 아내를 잃게 되는 슬픔을 맞게 되고, 마커스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 속에서 헤어진 연인과 사촌들에게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볼티모어의 서]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회상 장면들은 마커스 골드먼의 과거가 어떠했을지, 스승인 해리 쿼버트는 어떻게 놀라 켈러건을 살인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뒤늦게 저자의 책을 접하게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소개된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저자의 놀라운 이야기의 힘에 박수를 보낸다. 


“돈의 함정이 뭔지 아니? 돈을 주면 모든 종류의 감각을 살 수 있어. 하지만 감감과 진짜는 달라. 돈은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감각을 만들어줘. 진짜로 사랑받는 게 아니어도 사랑받는 느낌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돈으로 비바람을 피할 지붕은 살 수 있어도 내면의 평화를 사지는 못 해.(1-195)”


#조엘디케르 #알래스카샌더스사건 #밝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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