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리커버 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그 어느 작가보다도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 같다. 장편소설은 거의 다 본 것 같고, 에세이류는 재즈를 비롯한 하루키의 취미에 반해 나의 관심사가 너무 동떨어져서 그런지 아직도 읽지 못한 게 있다. 마라톤에 대한 하루키의 사랑은 이미 다른 글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던터라 조금은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짐작했지만, 막상 벌써 15년 전에 발표된 책의 내용으로 보건데 작가이자 마라토너라는 수식어를 붙임에 전혀 이상이 없다는 놀라움을 갖게 된다. 그냥 막연히 글을 쓰기 위한 체력 유지를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 루틴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열정적인 러너인지 미쳐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키가 단지 뛰어난 재능만이 아니라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기에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지 달리기를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을 살펴봄으로써 여실히 드러났다. 


오늘이 광복절이니 일본 작가에 대한 찬사를 시작부터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 조금은 계면쩍기에, 벌써 몇 년 째 해다마 광복절이면 81.5km를 달리는 션 씨를 기억하고 싶다. 책에서 하루키가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81.5km면 거의 그 수준에 달하는 웬만한 러너들은 언감생신 엄두도 못내는 거리가 아닐까 싶다.  오후에 션 씨의 인스타에서 완주한 그래프를 올린 사진을 보았는데, 새벽 5시부터 무려 8시간 가까운 시간을 뛰어 완주했다고 한다. 인간 군상이 너무나도 다양할 수 밖에 없고 처지에 따라서 각자도생할 수 밖에 없는 세상사이지만, 어디선가에서는 죽을 힘을 다해 달리며 잊혀져 간 이들을 기억해 달라고 땀을 흘리고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아는 이들은 8.15km를 함께 달리며 션 씨를 응원해주고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번역자인 임홍빈 님은 역자 후기에서 하루키의 소설이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 것 계기가 옴진리교 사건과 한신 대지진이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설 - 그것은 하루키가 1인칭 소설만을 쓰면서 그 작품들 속에 깃든 자아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상실과 재생의 세계에 중점을 두고 사회나 타인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무관심에 치중했던 이른바 디테치먼트의 문학세계에서 헌신이나 참여를 뜻하는 커미트먼트로의 문학 영토 확장 내지는 전환을 선언한 것이라는 지배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273-274)”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비혼주의가 만연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적인 삶의 태도가 정형화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심각함을 인지하면서도 공동체적 삶으로의 회귀는 불가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디테치먼트적인 각박한 세상 속에서 커미트먼트적인 휘귀한 행동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받게 된다. ‘아니 요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라며 멀리서나마 박수를 보내게 된다. 하루키의 소설이 변화된 것은 옴진리교 사건이나 한신 대지진처럼 아무리 내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정성과 애정이 엉뚱한 누군가의 악의나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자연재해와 같은 일로 너무나도 허무하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 허무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허비하게 보다는 미약하게라도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또 다시 세상을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덜 비참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면에서 션 씨가 해다마 흘리는 땀은 커미트먼트로서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생업에 종사하며 주변을 돌아볼 틈 조차 없을지 모르지만, 찰나의 순간에 고개를 돌렸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세상에 대한 헌신과 참여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리라. 


하루키가 이 책을 쓰기까지 25번의 마라톤 완주를 했으니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 번의 완주를 더 했을 것이다. 거기에 울트라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까지 섭렵하는 작가는 아마도 지구상에 하루키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달리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달리다 걷지 않기 위해 부단한 결심을 반복한다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진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있다. 


책에 나온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첫 번째는 당연히 글쓰기의 재능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천재적인 아주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재능만으로는 소설을 계속해서 써낼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인간의 경험치는 한정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로 중요한 자질은 집중력이라고 말한다.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이나 소설의 말미에 붙는 작가의 말 부분을 보면 그들이 한 작품을 탈고하고 위해 얼마나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는지 짧게나마 고백하고 있다. 아주 어렵지 않은 소설이라면 짧게는 서너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이면 다 읽게 되는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작가가 보낸 긴 고뇌의 시간을 독자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애써 한 편의 소설을 냈다고 해서 바로 이어서 새로운 작품이 구상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기에 자신이 쓸 수 있는 분야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지속력(지구력)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로 논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앞의 재능과 집중력도 지구력 없이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 때 예술의 영역에 속한 이들이 무언가를 창작하는 과정 속에서 클리세처럼 여겨지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다. 술을 진탕 마시거나,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고 줄담배를 태우며 자욱한 연기 속에서 격한 기침을 내뱉던가, 문란한 성생활을 지속해서 연인에게 버림받거나 하는 극단적인 삶의 행태를 계기로 위대한 창작물이 나온다고 보는 시선 말이다. 실제로도 그런 류의 예술가들이 있었고, 작품이 유명해진 이후에 그들의 기이한 삶이 주목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삶의 행태들은 결국 요절과도 같은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왔기에 그들의 천재적인 능력에 반해 대중에게 남겨줄 작품들은 소수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하루키의 지극히 범생 같은 하루의 루틴은 이제는 고령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긴 장편 소설을 출간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생각에 따라 인생을 살아왔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결과적이긴 하지만, 자진해서 고립과 단절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 나온 산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위험성을 나 나름대로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40-41)”


“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 밖에 없다.(107)”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고 하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도 있다.(2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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