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40
박상연 지음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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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연 작가의 [DMZ]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40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이 처음 나왔던 97년은 김일성이 죽은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리고 뒷편에 담긴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저자가 이 소설을 썼을 때는 김일성이 죽은 직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도 어릴 때에는 김일성이 죽으면 통일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진 혈육에 의한 세습은 너무나도 막강하여 김씨 일가의 통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지 답을 찾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밀레니엄에 개봉된 <공동경비구역 JSA>는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아마도 거의 다 봤을 만큼 대박이 났다. 분단된 지 50년이 지난 2000년에도 남북의 긴장된 대치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정쟁의 도구로 써먹는 것이 여전히 유요한 시기였다. 분단 상황지 지속되면서 비무장지대의 시간이 멈춘 듯한 생태계의 자연 경관이 다큐 형태로 방송되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기에 특히나 판문점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워낙에 명배우들이 주연을 맡았기에 재미 없을리가 없었지만 판문점의 남북 초소에서 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서로 교류를 하고 친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이미 영화를 오래전에 봤음에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영화 속 배역과 오버랩되어 펼쳐졌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의 큰 차이점이라면 영화에서는 온전히 남한군 병사 김수혁 상병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진다는 것이고, 원작소설에서는 영화에서 여군으로 변경된 스위스 중립국 소령이 원래 남자였으며 지미 베르사미 ,에르네스또 리, 이강민 이렇게 3가지 이름을 가진 기구한 사연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별로 강조되지 않은 스위스 장교인 강민의 아버지의 사연 또한 중요한 화두로 작용한다. 영화 속에서는 수혁과 북한국 병사들 간의 케미를 부각시켜 지루한 군생활 중에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 유쾌한 장면들을 그리다가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데, 소설에서는 수혁이 북한국을 죽이게 된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해 소설의 화자인 강민의 아버지가 피폐해진 이유와 수혁이 맡아서 키우던 군견 마루의 사연을 극적으로 연결시킨다. 


사실 베르사미이자 강민의 아버지의 기구한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 후 우리나라의 갈라진 정치적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월드컵 축구가 열리면 붉은색 경기복을 입은 축구 선수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는 것을 자청하듯 중국 못지 않게 빨간색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스포치가 아닌 이념적인 빨간색은 저주를 넘어서 학을 떼는 마치 트라우마와 같은 단어를 양산시켰다. 바로 빨갱이라는 말! 우리가 질색하는 북한의 공산주의와 냉전시대를 알리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탄생 기반이 되었던 이념은 사실 큰 차이를 보인다. 단순하게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고 할까. 어렵사리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이념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여러 갈래로 나뉘어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미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념적 분단이 자리잡기 시작하던 시기라 서로가 꿈꾸는 이상의 차이가 커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고, 일제치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로 친일파의 부류가 다시 권력을 잡게 되면서 수많은 양민이 학살되기도 했다. 


강민의 아버지는 아마도 해방 후 사회주의 이념에 빠져 공산당에 들어가게 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으로 남하하다 포로가 되어 거제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반군포로로 잡힌 친동생과 마주하게 된다. 친형제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으로 맞딱드리게 되었고, 미군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을 갖고 있던 그가 조건반사처럼 미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칼을 휘둘러 동생을 죽이게 된다. 인간이 의식하고 있을 때에는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이 강민의 아버지 안에 가득채워진 미국에 대한 증오로 인해 반사적인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강민의 아버지가 벌인 동물적인 반사작용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블로프 효과가 적용된 김수혁이 맡아 키운 군견 마루를 등장시킨다. 수혁의 선임은 마루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랜턴으로 빛을 비춘 후에 먹이를 주어 먹도록 했고, 랜턴을 비추지 않을 때 먹이를 먹으려 하면 몽둥이질을 하여 마루가 무조건 랜턴에 빛을 비출 때만 먹을 수 있도록 길들였다. 수혁의 사건 이후 마루가 주인을 만나지 못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얘기를 전해듯지만, 강민은 우연히 마루에게 랜턴을 비추자 힘이 없던 마루가 몹시 험악해지는 것을 보게 되고 마루가 랜턴으로 조건반사에 적응된 미친 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루는 랜턴을 비추고도 먹이를 주지 않으면 침을 흘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도 포악한 성질을 드러내며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강민의 아버지와 군견 마루처럼 수혁은 어릴 때부터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저자의 연배 때에는 의례히 그래왔듯이 통일에 관련된 노래를 부르고 반공 포스터와 표어를 제작하며 북한공산당을 무찌르는 것이 온 국민의 사명인 것으로 교육되었다. 수혁 또한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응근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에 판문점 경비대의 근무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 속에서 가장 큰 변곡점의 장면으로 그려진 지뢰를 밟은 수혁을 도와 생명의 은인이 된 북한군과의 만남은 이념과 사상이 다른 채 수십년을 살아와 이제는 결코 하나의 나라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는 민족적 유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북한군 상등병 오경필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 수혁은 북한군 초소에 몰래 놀러가서 그들과 은밀한 교류를 나눈다. 영화 속에서는 이 장면이 마치 이산가족 상봉처럼 애틋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던 때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북한군 초소에 간 수혁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인근에서 들린 총소리에 조건반사되어 자신의 어딘가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반공의식의 발로처럼 잽싸게 권총을 들이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형이라 부르며 좋아하던 오경필에게 친히 사다준 지포라이터의 반짝임을 칼을 꺼내는 것으로 오인하여 한때 친구였던 북한국 전사 우진을 처참하게 죽이게 된다. 


강민은 평생동안 미워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었던 아버지를 수혁의 취조를 통해서 그리고 남겨진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강민의 아버지가 동생을 죽이고 수혁이 북한군 친구 우진을 죽인 것은 결국 분단이라는 오랜 긴장된 상황 속에서 극도의 공포가 만들어낸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우발적 행동이었음을 말이다. 결국 강민의 아버지와 수혁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든 것은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기 보다는 체제와 이념을 지키기 위해 강요된 시스템의 의한 희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랜시간 지속될 것이기에 분단의 상황은 여전히 아프게만 다가온다. 


"꼭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 소리가 시작될 때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소리가 끝날 때 밀려오는 고요로 냉장고 소리를 인식한다. 대남 방송 대북 방송이라는 것도 처음 이곳에 부임했을 때는 못 견딜 정도로 시끄러웠는데 어느새 그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고 나서는 마치 냉장고 소리처럼 그 소리가 끝날 때 알아차린다. 소리가 날 때는 모르는데 소리가 없어지고 나면 그제서야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알게 되는 이상한 현상. 예전부터 궁금해하고 고민했다. 그건 내가 고민하고 있던 인식의 어떤 문제에 중요한 열쇠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147)"


"하지만 이 소설에도 나오는 냉장고 소리의 비유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 냉장고 소리가 사라진 다음 밀려오는 고요로 비로소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를 알게 되듯이, 분단 상황이 해소되면 우리가 잊었던, 또한 잃었던 것들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2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이 믿음을 갖길 바란다.(330-331)"


#박상연 #DMZ #민음사 #공동경비구역JSA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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