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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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작가의 [젊은 근희의 행진]을 읽었다. 이 소설집에는 “미조의 시대”, “엉킨 소매”,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젊은 근희의 행진”, “연희동의 밤”, “나의 방광 나의 지구”, “재활하고 사랑하는”, “그는 매미를 먹었다”, “현서의 그림자”,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 이렇게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소설의 길이와 소재도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공통적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뉴스에서 20만원을 빌렸는데 갚을 돈이 7억원으로 불어났다는 썸네일에 이어 급전을 빌려주고 살인적인 고리를 뜯어온 일당이 붙잡혔다는 내용을 보았다. 돈을 갚으라고 온갖 협박을 일삼는 이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을 타깃으로 삼아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하면 불법대부업 일당을 욕하면서도 대체 20만원의 생활비를 대부업체에서 빌린다는게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몇 천 만원, 몇 백 만원도 아니고 20만원이면 당장의 생활비가 없기 때문이고, 그들이 대부업체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그들의 상황이 당장 굶어죽을지도 모를 정도의 급박함을 의미한다. 한국 전쟁 후의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어떤 협박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20만원을 폭력배 같은 이들에게 빌려야만 하는 현실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저자의 단편을 해설하는 소유정 평론가는 여러 단편들의 주제로 부각된 주거와 고용의 불안에 대해서 강조한다. 죽와 고용은 쉽게 말해 의식주에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1차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2차, 3차적인 욕구를 원할 만큼 변화되었다는 말을 들은 게 벌써 십수년 전인데, 여전히 1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불안에 대한 스트레스는 “나의 방광, 나의 지구”에서 나온 것처럼 과민성 방광 증세를 가중시켜 급기야 회의 중에 실례를 하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성인용 기저귀를 차야 하는 수모를 발생시킨다. “그는 매미를 먹었다”의 주인공인 식당 주인은 제육 덮밥과 불고기 덮밥 밖에 할 줄 모르는데 부동산 김사장의 비아냥 거림을 참아야 하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매미 울음 소리를 내며 답답함을 견디려 한다. 결국 제목처럼 매미를 집어 삼키고 팔을 흔들며 날기를 고대하는 모습은 어찌나 처량한지, 매미를 먹은 것 따위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고 만다. 


“미조의 시대”에서도 무책임한 오빠를 대신해 엄마와의 주거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상황은 난감하기 그지 없다. 돈이 되고 팔리는 웹툰을 위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매일 느끼며 그림을 그리는 수영 언니의 생존력을 닮고 싶지 않지만, 창문을 열었을 때 걸어가는 사람의 발에 얼굴을 차일 것 같은 곳에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언니의 충고를 들어야만 한다. 얼마나 더 잔인해지고 독해져야 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냥 좀 나약하고 여린 사람들은 무심히 짓밟힌 루저로 살아가는 게 당연하고 스스로가 못났기 때문이라는 자책 속에 괴로워하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게 수순이 되어버린 현실…. 저자의 단편 속 주인공들의 불안을 조장시키는 이 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치지만 돌아오는 건 현실감 없는 자아에 대한 비판과 단두대처럼 목을 조여오는 생존의 위기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속 등장 인물들이 차라리 저자의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판타지 주인공이라면 좋겠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라서 오늘도 내가 지나친 이들 중의 하나 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모른척, 못 본척,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나치며 살아가도 되는 걸까? 


“사람들은 그러지. 한국은 의료 서비스가 좋은 나라라고. 뭐든 신속하고, 돈만 주면 어떤 검사든지 다 받을 수 있다고. 해외에서 의료 관광도 오는 나라잖아. 솜씨 좋고, 싸다고. 그런데 언니, 그건 의료인이 희생하고 있다는 뜻이야. 우리가 희생해서 사람들이 좋은 서비스를 누리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본 적 있어?

없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 같은 비의료인은 더욱 정확하고 빠른 의료 서비스를 원한다. 비급여진료가 대폭 줄어들길 원한다. 건강보험료가 더 낮아지길 원한다. 의사가 더 친절해지길 원한다. 간호사가 주사를 안 아프게 놓아주길 원한다. 24시간 원할 때 언제든지 신속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길 원한다. 그런데 사영아, 너는 그런 일을 해서 돈 많이 벌거 아니야. 코로나 시국에 잘릴 걱정도 없을 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사영의 고통에 공감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보다 사영은 나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만 들었다.(105-106)”


“부동산 매수학이라는 교과목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중등 교육 과정부터 가르쳐야 한다. 고등 교육 과정에선 대출금을 이용한 지렛대 원리를 가르치고, 대학 교육 과정에선 임장을 다닐 때의 팁을 가르쳐야 한다. 대놓고 부동산 공화국이 되는 게 낫다. 대놓고 속물이 되는 편이 낫다. 그러면 적어도 그녀처럼 부동산 투기를 부도덕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하루아침에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다 같이 속물이 되잔 말이야!(225)”


#이서수 #젊은근희의 행진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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