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 흔들리고 지친 이들에게 산티아고가 보내는 응원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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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작가의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를 읽었다. 부제는 "흔들리고 지친 이들에게 산티아고가 보내는 응원"이다. 10여년 전에 우연히 산티아고 여행기를 읽고 나서 언젠가는 꼭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하며 연이어 몇 권의 산티아고 관련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루트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감동적인 사연들로 인해 산티아고는 한 동안 나에게 있어 어떤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도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고 알베르게에서 벼룩에 물렸다던지, 한적한 길을 혼자 걷다가 강도를 만났다던지 라는 좋지 않은 후문들도 들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되어 스페인에서 몇 개월 동안 머물기 위한 비자도 수령했는데, 설마 이러다 금방 종식되겠지 했던 코로나 사태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산티아고 길을 꼭 걷지는 못하더라도 몇 개월 동안 준비했던 계획이 틀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확진자 동선 공개에 대한 스트레스로 방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짜증과 신경질만 늘어갔던 기억이 난다. 


작년 이맘 때 우리나라는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때에 이미 초기에 재난급의 상황을 거친 유럽의 대다수의 나라들은 서서히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고,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던 유명한 관광지들도 한산하게 둘러볼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했다. 저자의 SNS를 통해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는 포스팅을 볼 수 있었고, 간간히 업뎃 되는 사진과 라방을 통해서 본 산티아고 길 현지의 모습은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거리가 먼 별나라처럼 느껴졌다. 마스크를 벗고 맘편히 숨을 쉬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넘어 오로지 초록과 황토빛 흙길이 전부를 이루는 기나긴 순례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갑갑한 영혼을 구원할 천국처럼 여겨졌다. 1년이 지나 저자가 걸은 그 길이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개봉되고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되니 지난한게만 느껴졌던 팬데믹 시기를 무사히 보낸 몇 년의 시간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훌쩍 지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 문양의 장식고리는 산티아고 길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어디선가 그 비슷한 모양을 보기만 해도 저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열망이 어서 빨리 세상 밖으로 자신을 내보이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이미 산티아고 길에 대한 많은 여행기가 나와서 그런지 저자의 책은 순례길을 상세히 안내하는 내용은 생략되어 있었다. 800 킬로미터의 길을 걷기 위한 준비물이나 알베르게에서 어떻게 숙박을 하는지와 같은 내용 또한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오로지 그 길을 걷는 자신에게 집중하며 길을 걷는 동안 우연히 마주친 이들의 사연을 간간히 전해주었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육체적 한계를 접하게 될 40일 동안의 대장정을 마치고 나면 그 길을 걷기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집중하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전하는 자연이 보여주는 신록의 아름다움은 온 몸에 근육통이 생기고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 것 같은 극한의 고통 중에서도 그 길 위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존재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사진 속에 나온 길과 풍경 그리고 저자가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떤 정화의 특별한 힘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파에 찌들고 이래저래 미간의 주름만 깊어지는 감정의 동요 속에서 벗어나 온 몸의 근육들을 이완시키고 산티아고 길이 주는 햇살과 바람과 비와 그늘이 함께 하는 자연에 내 몸을 맡길 때 그런 표정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민낯도 모른 채 살아가고 그렇게 순진무구한 얼굴이 자기 마음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 또한 잊고 살아가는데, 우리 삶에 있어서 산티아고 길과 같은 정화의 장소가 우리의 본모습을 되살려 주지 않을까 싶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그 길을 걷기를 꿈꾸며 일상을 살아가야겠다. 


"순례길은 세 단계로 나뉜다는 것이다. 처음은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고, 다음은 정신과의 싸움이며 앞의 두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마지막에 심장이 열리는 경험을 선물받게 된다는 것이다.(144)"


"운명이랄까, 뭐 그런 것이 우리 삶을 궁지로 몰며 힘들게 만들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예요. 가장 쉬운 길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 이제 다 그만둘래, 희망이 없어, 라고 불평하며 힘들어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병이 만드는 한계 속에 스스로 갇히는 거죠. 내가 선택한 길은 병이 닥쳤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하면서 인생이 주는 선물을 계속 즐기는 거였어요. 물론 그런다고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갑자기 닥친 불행이 내 삶을 지배하게 두지 않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나의 결정과 선택으로 내가 주도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 두 가지 길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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