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헬로 베이비
김의경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3월
평점 :
김의경 작가의 [헬로 베이비]를 읽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면인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어려워한다. 미국에서는 일명 스몰 토크라는 이름으로 연회와 모임 같은 곳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과 이야길 나누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하던데, 우리는 그런 문화가 거의 전무한 편이다. 그럼에도 경직된 분위기를 한 번에 누그러뜨리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바로 아기의 등장이다. 부모 품에 폭 안긴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한 아기를 볼 때면 주변 사람들의 긴장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아기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는 사람, 아기의 주목을 받기 위해 요상한 소리를 내는 사람 등등. 아기를 보면서 다들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아기가 까르르 웃기라도 한다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또 있을까란 생각이 들며 천사가 따로 없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렇게 편하고 행복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근래에 이르러 육아의 고충이 얼마나 큰지 너도 나도 토로하는 터라 이제서야 제대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사실 과거의 어머니들도 똑같은 어려움과 고통에 직면했을 것이다. 단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고 육아의 어려움이 커진 이유 중의 하나는 출산과 육아의 연령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0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과 30대, 40대에 육아를 하는 것은 엄청난 체력의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20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자세한 상황을 대입해보지 않아도 20대의 청년들은 거의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국가에서는 벌써 수년 째 출산장려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말하지만, 출생율이 점점 더 현저하게 줄어드는 걸 보면 아무 실효성이 없는 정책들만 난무하고 있는 듯 하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생식능력까지 무한히 길어지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는 연령대는 이미 육아의 길에 들어서기에는 한참 늦어진 시간이다. 그래서 딩크족이 많아지기도 하고 의학의 힘을 빌어 자녀출산을 계획하기도 한다. TV에서 의학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갖게 된 부부들이 많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인공수정이 쉽고 간단하지 않을까란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실제 인공수정을 준비하고 실행한 이들은 그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운지 알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부가 얼마나 간절히 아이를 기다리는지 깨닫게 된다.
이번 작품은 이렇게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난임부부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난임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되었고 서로의 성공을 응원하며 헬로 베이비라는 단톡방을 만들어 모임을 유지해 나간다. 헬로 베이비 멤버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남편이 있는 여자이지만, 소설 속의 남편들은 한결같이 인공수정을 준비하는 아내의 고충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인공수정의 갈래 중 체외인공수정에 해당되는 시험관 수정을 시도하는 이들의 이야기이기에 남편과 아내 모두 정자와 난자를 인위적으로 채취해야만 한다. 남편의 정자 채취는 고환에서 직접 채취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위행위를 통해 채취하기에 간단하지만, 소설 속의 남편들은 난임병원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을 느끼며 아내와 동행하기를 꺼려한다. 반면의 아내의 난자 채취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배란을 자극하는 주사를 맞아야 하고 인위적으로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 또한 신체에 부담을 주는 시술이 병행된다. 그렇게 힘겹게 난자를 채취하고 시험관에서 수정을 한 후 다시 여성의 몸에 주입하여 착상되기를 기다리지만, 그것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아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정상적인 임신 과정에도 입덧을 비롯한 많은 어려움이 동반되는데, 인위적인 착상이 여러차례 실패하게 될 경우 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과 상실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간절히 아기를 원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인공수정의 경우에도 실행 이전에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시험관 수정을 통해서 생성된 배아에 대한 윤리적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배아에 대해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일 수정된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과 동일한 존재로 인정하게 된다면 낙태와 인공수정 시 발생된 배아를 처분하는 것은 모두 살인 행위에 해당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배아는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기에 또 배아를 인간이 되기 위한 이전의 세포 단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낙태와 배아 처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곤 한다. 체외인공수정의 경우 임신성공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들어 이식하기 때문에 이식에 부적합한 배아는 실험대상이 되기도 하고, 여러 개의 배아가 착상되었을 경우 인위적인 낙태를 권유받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인간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자율적인 선택을 존중하는 의미에 원천을 두고 있다. 우리는 정말 우리 몸의 주인으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것일까?
여타의 문제를 배제하더라도, 소설 속에서 등장한 여러 난임여성들 중에 정효의 극단적인 행동은 난임병원을 다니는 이들의 심리적인 상태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얼마나 큰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찌보면 정효가 폐경에 이르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임에도 생리가 몇 달 간 멈추자 인공수정이 성공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난 후에 받은 폐경 판정은 그녀가 신생아 병동에서 모르는 사람의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이상 행동을 저지르도록 종용했을 것이다. 그 모든 정황을 알고 있던 헬로 베이비의 구성원들은 지난 1년 동안 소식이 없던 정효의 행동을 이해하며 함께 슬퍼하고 아파한다. 어쩌면 정효의 극단적인 행동은 단지 한 개인의 정신 이상이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헬로베이비 #김의경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