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리커버 에디션)
김옥선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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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작가의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를 읽었다. 팬데믹 상황이 시작되고 나서 여행관련 책자들의 출간이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어느덧 4년차에 접어든 시점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식적은 아니지만 엔데믹에 이른 것 같이 전염병 발발 이전처럼 자유로워 보인다. 아주 오래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들이 반증하고 있지만, 막상 내 앞의 일로 닥치니 이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로 여겨지기만 한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마치 누군가 일부러 조작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수많은 인구가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니. 그동안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를 통해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 이들 모두가 뒤통수 정도가 아니라 철퇴를 맞은 느낌이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지리하고 온갖 고통을 자아난 시간 이 흘러 전염병의 마지막에 이른 것이 아닐까란 희망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그런면에서 저자의 책은 누구나 좋아해마지 않는 여행이라는 주제를 새삼스레 싱그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준다. 셀레는게 있다는 것은 누구 뭐래도 행복감을 느낀다는 증거일테니 말이다. 여행 마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여행의 기회를 갖을 수 있는 복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여행이라는 걸 처음 계획하고 떠날 때만 해도 여행은 그냥 새로운 곳을 방문해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못 먹어본 음식을 먹고 함께 여행을 간 이들이 있다면 그들과 좀 더 내적인 친밀감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의 구력이 쌓이다보니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금의 삶의 자리에 만족하고 감사하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편안하고 안락하게 준비된 여행을 떠난 다고 해도 집을 떠나는 것은 상당한 귀찮음을 수반하게 된다. 짐을 꾸리는 것에서부터 낯선 잠자리에서 오는 불편함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떨떠름과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언어가 주는 압박과 두려움들이 일상을 살아갈 때와는 전혀 다른 스트레스를 양산시킨다. 그래서 그런지 고질병처럼 집 떠난지 3일만 지나면 내 입에서 저절로 ‘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터져나온다. 행여나 함께 간 이들이 들을까봐 혼잣말처럼 중얼거려야 했지만, 그 이후로 육체적 피로가 가중될 때면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무조건 더블’로 상승한다. 이런 생각이 들면 동시에 아니 대체 왜 내가 비싼 돈 들여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지루하고 재미없기는 해도 집에 있다면 이런 낭비를 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원초적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바보같고 무한반복되는 푸념은 집으로 돌아올 즈음 되어서야 떠남의 확실하 이유를 찾게 된다. 바로 집과 나의 일터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여행지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내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불편함 잠자리, 그리운 고국의 음식, 맘에 맞지 않아 어색해진 동료와의 거리감. 마치 신발에 들어간 작은 모래알처럼 대놓고 티낼 수 없는 불편함이 단숨에 해결되는 것이다. 단지 일정이 다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리고 비싼 돈 들여 내돈내산한 여행지의 스트레스는 일상에서 겪어내야만 하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 준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일상에서 겪었던 갈등의 기억들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분주하게 여행지를 돌아다니다가도 갑작스레 밀려온 장엄한 자연 경관이 주는 감동으로 응축된 감정이 폭발하며 눈물을 줄줄 흘릴 수도 있다. 그때서야 깨닫게 된다. ‘아 내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할 필요가 있어.’라며 스스로를 칭찬해 줄 여유를 되찾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주로 하나의 중요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줘야 하는 순간에 사진첩을 보며 여행지를 떠올리곤 한다. 화장실에서 갑자기 힘을 주다가 혼자 끼득거리는 게 미친놈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여행지의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담겨 있음을 증명한다. 지난 금요일에 방송된 ‘나 혼자 산다’의 팜유세미나를 보던 기안84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이리저리 분주해진 등장인물들이 극적으로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는 장면을 보며 “아 근데 이렇게 끈끈해지는 걸 보니까 부럽네요.”라고 말한다. 당사자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민망하고 부끄러웠겠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누군가에게는 함께 공유할 추억을 동료가 생겼다는 사실이 부러운 것이다. 결국 여행은 나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떠나기 전에는 늪지대같이 느껴지던 집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집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나였다. 좁다고 느껴졌던 한국이 두 다리로 걷고 나니 무지막지하게 크다고 느껴졌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카페에 앉아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들어 보니 우리 동네도 사건 사고가 참 많았다. 최근에 책에서 ‘땅 멀미’라는 단어를 봤다. 매일 육지에 서 있다가 흔들리는 배에 타면 뱃멀미를 느끼는 것처럼 배를 오래 타던 사람이 배에 내리면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땅 멀미를 느낀다고 한다. 뱃멀미를 하든 땅 멀미를 하든 멀리는 괴롭다. 

어릴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괴로워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 많은 것들을 보고, 만나고, 느끼고 많이도 웃었다. 그러다 한동안은 끝없이 펼쳐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외롭고 불안해했다. 이제는 다시 내 세상으로 돌아와 일상이 주는 것들의 안정감을 만끽하고 있다. 아마 나는 인생이라는 여행 속에서 어딘가로 나아가는 도중에 멀리를 한 게 아닐까.(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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