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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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안젤리크]를 읽었다. 해마가 겨울이 오는 길목에 기욤 뮈소의 신작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옮긴의 말에 나온 것처럼 바로 전 작품인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에 대해 쓴 올해 초의 리뷰를 보니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느끼며 "라파엘이 베라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본다"라고 씌어 있는데, 아마도 그 후속편은 다음을 기약해야 하나보다. 이번에는 몇 년 간 지속된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도 아닌 새로운 포맷의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목에 '안젤리크'라는 이름이 사용되어 그녀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오히려 마티아스 타유페르 전직 강력계 형사를 주인공으로 봐야한다. 소설은 커다란 쳅터의 제목으로 주요 등장인물인 루이즈 콜랑주, 안젤리크 샤르베, 마티아스 타유페르 이렇게 3명의 인물 이름을 사용하며 각 인물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으로 각 쳅터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전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포맷을 사용하며 등장인물들이 스텔라 페트렌코의 추락 사고로 접점을 만들어가며 진행되지만, 전작들이 비해 긴장감이 상당히 떨어지고 유기적 연결점이 미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오히려 전적들에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갔음에도 납들할 만한 개연성이 느껴졌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지금의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사실적인 사건들을 소재로 했음에도 등장인물들의 연결이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나 루이즈 콜랑주인 17세의 소녀가 전직 강력계 형사보다 앞서 정보를 수집하고 마티아스조차 모르던 숨겨진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러한 몇 가지 미비한 구성요소들이 그동안 다른 소설에서 보여줬던 기욤 뮈소만의 촘촘한 설계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려서 그런지 뒤로 갈수록 반전을 꾀하는 내용들이 전개되어도 더 이상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의 재미는 반감되었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는 아마도 어쩌면 자기 자신의 노력과 의지와 무관하게 삶의 자리가 정해진 범부들에게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소설의 시작은 루이즈라는 소녀가 심장이식 이후 다시 입원한 마티아스 전직 형사를 위문하는 장면부터이다. 첼로를 껴며 환자를 방문한 루이즈에게 마티아스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어서 나갈 것을 종용하지만 루이즈는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마티아스의 곁을 맴돌며 자신의 어머니가 사고사로 죽지 않았음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 마티아스는 루이즈의 수사 의뢰를 통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하지만 루이즈의 엄마인 스텔라 페트렌코의 사고 기사를 수집한다. 책 표지에도 에투알 무용수의 죽음 뒤에 숨겨진 비밀이라는 문구가 있기에 제목나 나온 인물인 안젤리크가 이 무용수이거나 무용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이라고 추측하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전개된 내용에서는 에투알 무용수인 스텔라는 소설에서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젤리크 또한 스텔라와 관련이 깊은 인물 또한 아니었다. 만약 안젤리크가 스텔라의 치료를 전담하던 간호사의 휴가로 인해 일주일 동안 치료 업무를 대체하지 않았다면, 또는 스텔라와 같은 곳에 살던 마르코 사바티니가 코로나 19에 걸려 쓰러지지 않았다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 나온 소설들 중에 상당수가 3년째 지속중인 코로나 19 사태를 간간히 언급하고 있다. 기욤 뮈소도 전세계를 마비시킨 전염병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었는지, 아니면 그 전염병에 대한 인간 사회의 변화를 언급하고 싶었던 것인지,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마르코가 병원에 실려가고 응급처치를 도운 안젤리크가 자신의 구질구질한 삶을 한 번에 바꿔버리고 싶은 욕망을 가능케 만든 바이러스 역할을 하게 된다. 안젤리크는 마르코가 아쿠아알타라는 이탈리아의 전도유망한 대단한 기업의 창업주 가족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마르코의 연인 행세를 하게 된다. 아들의 위급한 상태를 안젤리크를 통해 연락받은 비앙카 사바티니는 안젤리크의 말을 그대로 믿고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마르코의 상태가 서서히 안정되어 간다는 소식을 들은 안젤리크는 이미 시작된 사기극이 드러나지 않도록 마르코의 병실에 몰래 들어가 심장에 무리가 가도록 약물을 주입해 죽게 만든다. 그리고 안젤리크의 사기행각을 눈치챈 스텔라는 안젤리크를 위협하게 되고 안젤리크는 스텔라마져 사고사를 위장해서 죽이고 만다. 


전직 형사인 마티아스는 조사를 통해 안젤리크를 의심하게 되고 루이즈의 개입을 막기 위해 그녀를 포박한다. 하지만 여기서 마티아스의 과거가 드러나고 루이즈가 알아낸 마티아스의 헤어진 연인에 대한 정보를 통해 어이없게도 마티아스는 루이즈로 인해 포박당하게 된다. 아무리 불시의 타격이었다고 해도 40대 초반의 전직 강력계 형사가 17세 소녀의 공격으로 정신을 잃게 된다는 설정은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내용들이 긴급하게 흘러가기에 일단 결론이 무엇일지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루이즈에 고백한 마티아스의 비밀은 명예 법정의 결정을 따라 판결을 내리는 집행자의 역할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무슨 비밀결사대를 조종하는 어머어마한 귀족 집단이 있다는 설정 또한 무리수처럼 느껴졌다. 


인간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법 체계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헌법의 가장 중요한 내용도 실질적인 사건의 내막에 이르렀을 때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대로 처리할 경우 엄청난 피해를 당한 이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주 오래 전의 법처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처럼 보복의 논리로 처벌이 가능하다면 완전한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세상의 어딘가에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집단이 명예 법정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판결하고 벌을 집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한과 울분과 복수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행으로 인해 명예와 존엄함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 그것은 폭력을 폭력으로 맞선 이들이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자구책에 불과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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