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 띵 시리즈 21
신지민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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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민 기자의 [와인: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21번째 책이다. 지난 여름 아이스크림 편까지 출간된 띵 시리즈는 겨울을 맞아 특히나 어쩌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늘어나는 모임에 와인에 대한 시리즈를 발간한 것은 시기적으로나 분위기상으로나 딱 맞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띵 시리즈는 음식에 대한 내용이지만 각 주제의 음식에 별다른 관심이 없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진 것 같다. 이번 와인 편도 꽤나 즐겁고 유쾌하게 읽혀 몇 번인가 와인잔을 들고 모임을 갖은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부제가 시사하는 바는 역시나 와인을 즐기기 위해서는 다른 술도 비슷하긴 하겠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이 함정이기에 미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마치 '그건 난 모르겠구 일단 와인을 즐기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선언이라고나 할까. ㅋㅋ


어찌보면 우리나라 지방 곳곳도 제대로 여행해 본적이 없는 나에게, 이탈리아 베로나라는 생소한 지명은 뭔가 나만 대도시와 동떨어진 시골 마을로 버려진다는 낙담을 가져오게 했다. 하지만 막상 베로나에서 어학과정을 하다보니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집중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들이 통일된 나라여서 그런지 각 도시들 마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개성이 넘쳐났다. 그리고 베로나는 결코 후미진 시골 동네가 아니었다. 람보르기니와 같은 수십억에 이르는 스포츠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부자 도시에 해당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전세계 와인이 전시되고 시음을 할 수 있는 '비니탈리'라는 와인대회가 열린다. 기회가 되어 한 번 참석해 본 적이 있는데, 예전에는 무한대로 시음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갔을 때에는 3잔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석 잔으로도 충분히 만취 상태에 이를 만큼 충분한 양을 시음할 수 있게 해줘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진짜 와인에 대한 앎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뭘 마셔도 그게 그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머물던 기숙사에서 매일 거의 무료로 제공되던 다양한 와인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해 겨울 인스부룩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을 둘러보다가 성탄절이 막지나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는 곳을 구경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매서운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려오는 차에 우리나라 노점상처럼 생긴 작은 이동식 마켓에서 커다란 잔에 무엇인가를 담아 팔고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커다란 잔을 들고 호호 입김을 불며 마시고 있기에 마치 홀린듯이 나도 한 잔 사서 맛을 보니 그게 바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뱅쇼였다. 독일어를 쓰는 지역에서는 글루바인이라고 불리는 끓인 와인은 여러가지 마른 향신료와 과일을 넣고 끓여 도수를 낮추고 달달함을 더해 그야말로 추위에 얼은 몸을 녹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와인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다니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로마로 내려와서 겨울을 지내게 되면 뱅쇼나 크리스마스 마켓과도 같은 낭만적인 모습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다. 로마의 겨울은 너무 따뜻해서 그리고 비가 너무 자주와서 와인을 데워마실만큼 춥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바티칸이 있는 성탄절은 뭔가 더 대단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쓸쓸하고 휑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아무튼 오랜만에 오래전 애증의 추억이 담긴 베로나를 다녀올 수 수 있게 되었고,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할 수 있었다. 로마와 거의 7-8도 이상 차이 나는 베로나의 쌀쌀함은 뱅쇼를 마시기에 적절했고, 와인이라면 프랑스에 절대 굴복할 수 없어하던 이탈리아의 끓인 와인의 이름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Vin brule' 근데 이건 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아마도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끓인 와인을 마시지 않기에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북부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이름이라 더욱 생소하게 다가 온 것 같다. 아무튼 뱅쇼라는 알려진 이름이 편하기에 따뜻한 와인 한 잔에 티롤 지방의 소세지와 폴렌타를 함께 먹으니 비싼 기차 타고 온 값을 제대로 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책에도 몇 번 언급되는 [신의 물방]을 와인을 공부하겠다고 몇 권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대사도 너무 많지만 와인을 마시고 맛을 묘사하는 주인공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감상에 닭살이 돋아 책장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러다 또 시간이 지나 그 만화에서 언급된 유명한 와인이나 디켄팅이 필요한 고급 와인을 마주하게 되면 역시나 다시 [신의 물방울]을 완독해야 하는 것인가란 숙제를 다 하지 못한 떨떠름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게 마트나 편의점에서 손쉽게 와인을 구매할 수 있기에 분위기 내고 싶은 날이나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먹게 될 때 와인을 권하며 친목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때마다 어슬프게 아는 와인 지식을 들먹이며 꽤나 아는 척을 했던 지난 날이 떠올라 밍망함이 재생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이번 책이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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