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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9
김홍 지음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김홍 작가의 [엉엉]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9번째 작품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읽다보면 이번 작품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난해한 소설을 마주하게 된다. 화자인 '나'의 본체가 등장할 때만 해도 의식적인 부분의 상상력이 가미된 어떤 정신적인 세계를 그리다 현실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본체와 '나'라는 몸뚱이의 결별은 정신과 육체의 구분이 아니라 그냥 나 말고도 나에게서 나온 또 다른 본체라는 내가 존재하는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그저 할 말을 잃고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무서운 인내심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문학은 어떤 면에서 극사실주의적 고정된 형태를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떠난 본체를 찾아 나서다 본체를 중심으로 모인 '우리들'이라는 기발한 공동체의 출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시사하고자 설계된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은 소설을 다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을 뒷편에 이어지는 짧은 평론을 통해서 도움을 받곤 했는데, 이번에는 평론을 읽고도 '그래서 대체 본체와 나는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가' 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도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주인공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과 동시에 비가 멈추지 않는 국가적 재난 사태에 이르렀을 때, 그 원인을 주인공의 눈물 때문이라고 치부하며 그를 검거하기 위한 수사가 진행되고 남춘이를 기르던 슬사모 회원인 어느 성당 신부님의 도움으로 30만 키로미터나 뛴 경차 안에서 도피행각을 지속하다가 전국민의 주민등록이 저장된 기관의 불이 나며 모두가 주민등록을 재발급 받아야 하는 기이한 일이 발생되는 부분은 나름 속도감 있게 다가오면 적잖은 재미를 주었다. 소설 속에서는 실재하는 기업과 유명 인사의 실제 이름이 언급되기도 하고 오해나 불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설정에서는 가명을 사용하며 사실과 공상을 넘나든다. 쿠팡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과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불공정한 처우와 노동력 착취에 대한 저자의 저항을 드러내고 싶은 것인지 결말에 이르러 새로이 주민등록을 받은 많은 이들이 쿠팡 사장의 이름을 선택하여 쿠팡의 불합리함을 개선하는 내용은 어쩌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일은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건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춘기 시절에 특히나 시험 기간에만 이르면 혼자만의 공상에 빠지곤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존재를 벗어나는 소설에 나온 것처럼 본체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 시험과 공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는 책상에서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본체인 또 다른 '나'는 그런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 고통스런 상황을 외면할 수 있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나'와 본체가 마치 완전히 다른 타인이 된 것처럼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본체가 '나'의 여권을 가지고 가서 '나'를 행사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임을 증명할 수 없게 되었다. 타자와의 철학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실재함을 증명하고 인식하게 되는 것은 '나'를 인정하는 타자를 통해서임을 드러내지만, 이 소설에서 본체는 딱히 완전하 타자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러나 '나'의 주변 인물들을 나와 본체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나'는 본체를 찾고자 끊임없는 여행을 지속할 것 같지만, '나' 대신 안거룩이 대신 구속되어 '나'인척 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로 존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존재로 살아갈 것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다른 사람이 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본체를 마주하게 되지만 더 이상 본체를 그리워하거나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저자가 설정한 이런 황당한 세계의 '나'와 본체라는 등장 인물은 현실에서 마주한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고자 또는 이미 저질러 버린 실수와 잘못들을 바로잡을 용기가 부족해서 도피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실패자라고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지만 우리 모두는 실패자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실패 덕분에 우위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예전 같으면 절대하지 않았을 행동과 판단을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는 바보같이 행하기도 하기 때문에 본체를 마주한 '나'처럼 시간이 흐르면 엉엉 울 수 있을 때가 도리어 행복한 때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자의로 계획된 고생은 갑자기 닥쳐오는 불의의 고생보다 견딜만하다는 근거 없는 환상이라든가, 자연 속에서 겪는 신진대사의 특정한 위기 상태가 기대치 못한 정신적 깨달음과 혼돈되는 착각 같은 것들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