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기다리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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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작가의 [햇빛 기다리기]를 읽었다. "남아 있는 마음", "사랑의 미래", "겨울의 끝", "우리 시대의 사랑", "결혼식 가는 길", "햇빛 기다리기", "이 세상의 것"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또 다른 퀴어 문학의 선두 주자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소수자의 사랑을 다각도에서 바라보며 세밀한 감정묘사가 독보적이었다. 7개의 단편이지만 화자는 모두 '나'로 설정되었고 비슷한 연배의 젊은 남자가 연인을 만나 헤어지고 만남을 이어가는 내용이어서 마치 동일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지속되는 느낌이었다.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이 꾸며낸 허상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 그리고 경험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상당부분을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낯선 일들조차도 작가의 담담한 고백을 통해서 감정이입이 가능해지고 '아 나라면 이때 어떻게 행동했을까'란 반응을 자아내는 것은 허구의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수자라는 말에 담긴 약함을 생각한다. 아니 어떤 영역에서는 소수자들이 고유한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태생부터 그런 소수의 행운을 누리는 이들도 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소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도 있다.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소수의 자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영역이다. 그러니 금수저니 흙수저라는 수저론까지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사랑의 영역에서 소수의 선택은 너무나도 지탄받기 쉽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부와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보편성을 벗어난 소수의 선택은 일상성을 위협하는 도전처럼 다가온다. 그들의 선택이 나와 무관하더라도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거나 이상한 질병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본다거나 아님 그냥 꼴배기가 싫어서 적대적으로 대하는 이들이 많다. 제도적으로 윤리적으로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지 아무도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싫거나 거부하거나 외면하거나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심도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인간의 역사 안에서 성소수자가 지속되어 온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부와 권력을 지니지 않은 약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소설 속의 주인공 '나'는 동성 연인과의 사랑을 지속하지만 때로는 용기있게 자신을 드러내기도, 애써 감추며 수치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회의 배타적인 시선과 가족들의 완강한 거부를 당당하게 지속적으로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숨기며 아닌척 몰래 비밀리에 사랑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평범한 연인들처럼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올리기까지 수만번의 번뇌의 시간을 보낸 흔적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한 사진 한 장 올리지 못한단 말인가의 고민에 지친 주인공은 용기있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말한다. 그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요'라는 하트 하나 뿐이라고. SNS를 통해서 자신의 일상을 정성들여 드러낸다고 해서 딱히 대단한 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경우는 아주 유명한 셀럽 외에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친들의 '좋아요' 또는 짧은 댓글을 통해 소소한 만족감을 얻는다. 


또 다른 단편의 주인공 '나'는 동성연인과의 만남을 가족에게도 공개했지만, 그 연인이 HIV 감염자임을 차마 말하지 못한다. 의학적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도 대부분 에이즈라는 병명에 대한 뜨악한 반응을 알고 있기에 동성관계를 넘어서는 연인의 병력은 주인공의 사랑에 엄청난 걸림돌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코로나 검사소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행여나 그 주변을 지나치는 이들이 경계와 긴장의 눈빛을 내비치는 것을 보며 '나'의 동성연인은 HIV 감염자를 바라볼 때 같다며 서글픈 말을 내뱉는다. 감염 통보를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연인이 오톨도톨한 손목의 흔적을 매만지며 주인공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작스런 폭우에 바닷길을 걷지 못해도 이 사람을 내가 지켜줘야 한다는, 아니 그것은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고, 그냥 지금의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하겠다는 다짐을 마주잡은 손의 온기로 전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성소수자의 일상은 이와 같이 촘촘하게 규율되고 수치심은 신체에 깊숙이 새겨진다. '수치심'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치심이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느끼는 감정으로, 상대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수치심은 '소속감'과 연결되어 있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 또는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았다'거나 거절당했다는 기분과 관련되며, 그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결함이 있고 불결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감정을 수치심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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