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게임즈 :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 오늘의 젊은 작가 38
심민아 지음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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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아 작가의 [키코게임즈: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8번째 작품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아직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않고 있는 발표작도 많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기에 매번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설의 형식인 경우도, 난해한 내용이 전개될 때도 있어 전작을 전혀 읽지 못한 작가의 책은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번 작품은 제목부터 몇 번을 읽어야 기억될 정도로 뭔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소설 속으로 들어가니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내용은 제목의 첫인상처럼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제목부터 게임이 들어가니 당연히 게임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이고 소설의 도입부터 게임에 관한 전문용어들이 난립하기 시작해서 이걸 끝까지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었지만, 소설의 주인공 조유라 또한 게임의 문외한이기에 주인공의 심리에 빙의되어 게임을 저주하고 거부하면서도 입에 풀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장생활에 젖어들어갔다. 


소설의 시작은 조유라의 출근장면부터이다. ‘늦잠과 버스 연착과 미친 날씨. 망할 트리플 콤보’라는 첫 줄부터 어떤 가림막이 제거된 듯한 속살의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주인공이 출근하는 곳은 키코라는 거대한 게임회사이지만 그녀는 게임을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문과를 나온 인문학도였다. 인문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게임을 좋아하지 않을 법이라고는 없지만 소설에서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듯이 행여나 SNS나 유튜브에 발끝이라도 나올까 전전긍긍하는 관종의 유행병에 전염된 요즘 젊음이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관심도 없는 게임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경력 관리에 도움이 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동생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조유라에게는 당장 돈이 필요했다. 200개가 넘는 자기소개서의 파일 목록을 보며 조유라는 어떻게 해서든 매달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고자 했다. 그렇게 키코게임즈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소설 속에 등장한 키코게임즈는 아마도 실제 우리나라의 대형 게임회사를 모티브로 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TV광고 중에 아주 고퀄리티의 마치 밀레니엄을 앞둔 시기에 뮤직비디오가 유행했듯이 영화같은 그래픽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 광고인가 라는 생각이 들무렵 갑자기 화려한 최첨단의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나오며 육감적인 몸매를 뽑낸다. 그래픽도 상당하지만 그 게임을 소개하는 이들도 유명한 연예인이 대부분이다.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아니 대체 누가 이렇게 게임을 많이 하길래 게임 광고가 끊이지를 않는 것일까 항상 궁금했다. 이미 꼰대가 되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PC 게임이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에도 스타크래프트를 몇 번 시전해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의 조유라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았다. 조유라가 키코게임즈의 게임룸에서 3D 게임을 몇 번 하고 나서 극심한 멀미 증세와 몸살까지 난 것을 보면 요즘같이 난해해 보이는 전략게임은 아무나 할 수 없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카들이나 학생들을 보면 하나같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게임 얘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이상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인가란 생각마저 든다. 


아무튼 조유라의 키코게임즈에서의 고군분투기는 게임 용어를 몰라도 꽤나 재미있다. 입사 후 처음 발령받은 월드팀에서는 사실 거의 게임과는 상관없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회사 생활을 안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회사든 인사팀과 기획팀 같은 곳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어쨌든 회사의 사업 핵심을 구성하는 부서들이 힘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고 그곳에서 능력을 발휘해야 인정받고 승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서포트 해주는 부서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게임 회사라면 소설에도 나오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장 중요시 할 것이고, 기껏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해봤자 어차피 싸우고 죽이고 살리고를 반복하는 내용이지만 그럴듯한 서사와 언제든 감각적인 성적 요소들을 교묘하게 삽입하여 게임 참여자들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중요해 보이는 일들 외에도 여타의 사무적인 절차를 진행시킬 사람이 필요한데 조유라는 키코게임즈에서 그런 업무를 배당받은 것이다. 그렇게 월드팀이 해체되고 드디어 오메가3 라는 게임을 만드는 부서로 배치 받게 되지만 조유라는 팀장과의 첫 면담에서부터 어긋나게 된다. 어찌보면 인문학적 사고와 정의를 갖고 살아온 이에게 윤리적인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오로지 가성비와 서열을 따지며 자극적인 게임을 구성해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았을까. 조유라의 사고 체계를 가장 크게 흔든 사건으로 나오는 부분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오메가3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조유라와 다른 부서에서도 유사한 이유로 발탁된 이들은 장차 게임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대학생들의 인턴쉽 프로그램의 멘토로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유라는 어떤 대학생이 만든 게임을 보고 이런 게임을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그 게임은 장애를 가진 이가 장애를 극복하여 끝까지 도달하게 되면 비장애인들이 환호하는 것을 상징하는 동그라미 안에서 네모가 극복하는 내용이었다. 조유라는 이런 생각은 분명 문제가 있기에 이상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묻지만 학생은 생각을 많이 했다며 유라에게 반문한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노오력과 장애와 인정이 결코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약육강식이란 것은 너무 당연한 세상의 진리라고 항변했다. 언제든 어디서든 자신이 강한 쪽에 서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 그 자신감. 강한 쪽에서 육식을 실컷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 그 자신감. 나로서는 도저히 그 근거도, 출처도 짐작이 안 되었던 자신감. 그건 대체 무엇있을까…(200)” 


이제 제목의 뒤에 붙은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에 담긴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지혜를 갖고 자기 보다 힘센 동물들을 지배하는 인간의 학명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상 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밟고 일어서는 것에 심취하는 시간을 습관적으로 갖게 된다면, 우리 몸 안 저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져 있던 광기가 아주 비좁은 틈을 열고 나와 호모사피엔스의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습지만, 매일 얼굴을 보고 함께 일하는 사이에서 누구가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이면 된다. 일머리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가 상대방을 싫어하느냐 좋아하느냐다. 마음과 호감의 문제랄까. ~~ 인간은 마음의 동물이고, 마음은 호불호의 동물이다. 한 번 좋음의 궤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좋으므로 좋고, 좋아서 좋으므로 더 좋게 된다. 그 무서운 원심력은 잘 깨지지 않는다. 거의 무한 동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또 반대로, 한 번 싫음의 궤도에 올라타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싫으므로 싫고, 싫어서 싫으므로 더 싫은 악순환. 이것은 영구 기관의 반대편에서 열역학 제2법칙을 차분히 지켜 나간다.(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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