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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한 홉의 쉼도 없이 흠뻑 빠져들이 단숨에 읽히는 감동과 재미를 담고 있음에도, 마음 속 어딘가 묵직함이 자리하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가 담겨 있기에 책장을 덮고 나서도 쉬이 고상욱이라는 인물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만 같다. 제주의 4.3 사건을 알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학창시절에는 그 사건에 대해서 들어본 적 조차 없었다. 4.3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여순사건의 내막도 꼬리를 무는 것처럼 달려왔다. 그리고 이번 작품을 통해 여순사건에서 마지막까지 투항한 이들이 빨치산이 되어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인채로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연좌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혹 뉴스에서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내용이 보도될때면 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꿈꾼 것은 이상적인 사회주의의 단면이고 지금 북한에서 자행되는 정치논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전향서에 사인하지 않는 것일까? 사돈에 팔촌까지 빨갱이 낙인을 찍혀가면서까지도 지켜야 할 이념이란 무엇인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우리나라의 빨갱이 색깔론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빨갱이 운운하느냐고 하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직 살아있고 그들이 겪은 공포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해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극우세력의 집회때마다 성조기가 나붓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사리사욕을 위해서 남용하는 것도 기분 나쁜데, 거기에 성조기까지 대동시켜 아직도 미군의 하수인인 것처럼 부르짓는 이들을 보면 치가 떨릴 지경이다. 그들은 어쩌면 아직도 4.3사건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를 소탕한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무참히 양민들이 학살된 배경에 미군정의 야욕과 허용이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감히 성조기를 그렇게 아무때나 함부로 들고 설치지 않을텐데 말이다.
읽는 내내 이건 소설이 아니라 저자가 살아온 삶을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 저자의 말에서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딸의 사부곡임을 알게 되었다. 전라도의 구성진 사투리가 대화의 거의 모든 부분에 나오기에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 때로는 소리를 내봐야 이해가 되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 책의 백미는 바로 그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묘한 뉘앙스의 정겨움이었다. 고아리와 아버지 고상욱의 대화에서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로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쩌면 고상욱은 빨치산이 아니라 일제 앞잡이로 뒤바뀌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소설의 첫 머리부터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병원으로 실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기구한 운명의 아버지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후 180킬로의 속도로 달려와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는 딸 고아리는 아버지가 한 평생 지켜온 유물론자의 삶으로 관계를 맺은 온갖 사람들의 문상을 받는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문상을 온 이들이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는지 하나씩 이야기가 펼쳐지며 빨갱이로 낙인찍힌 고상욱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어찌보면 소설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작은아버지가 형의 유골함을 안고 우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작은 아버지가 한 평생 술에 쩔어 자신의 앞길을 막다 못해 망가뜨린 형에게 한탄과 원망을 하며 지내온 내용도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큰언니를 통해서 처음 듣게 되는 작은 아버지의 사연은 그야말로 기막힌 일이었다. 형 고상욱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동생인 작은 아버지는 형이 여순사건 이후 14연대의 군인들과 함께 군인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간 사이 고상욱을 잡이들이려고 학교에서 온 이들에게 자신이 고상욱의 동생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총부리를 들이댄 그들을 집으로 데려가 결국은 좌익이 아니라 당당하게 집에 머물던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촉새라고 입을 다물지 않던 작은 아버지가 그 이후로 입을 다문 채 술에 몸을 기댄 채 한 평생 살아가며 분노하고 원망한 것은 어쩌면 형이 아니라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이내 아버지의 오죽하멘 이라는 말로 생면부지 타인에게까지 온정을 쏟아붇는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뻿가루를 아버지의 삶의 흔적이 담긴 곳에 뿌리며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결코 잘못된 삶을 살아온 게 아니라고 말이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이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231)"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68)"
"타인의 눈물이 가문 날의 태양 별처럼 내 마음에 가득 차오른 습기를 불태웠다.(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