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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 - 우리의 배낭처럼 가뿐하고 자유롭게
김미나 지음, 박문규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7월
평점 :
김미나 박문규 부부의 [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우리의 배낭처럼 가뿐하고 자유롭게"이다. '유목민'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은 낯설게 다가온다. 오래전부터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사회가 형성되었기에 유목인에 대한 첫인상은 떠돌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막연함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유목민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디지털'이라는 단어까지 붙으니 생소함을 넘어 새로운 인류의 삶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으며 이미 보고 함께 지내왔음에도 그렇게 인식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터키 여행을 시작할 때 처음으로 밤 1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같이 간 동료들은 밤 비행기라 술 한 잔 하고 푹 자면 된다고 했지만, 평소라면 이미 잠들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말똥말똥하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 10시간 이상의 비행으로 그리고 거의 밤을 샌 격이라 피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 바로 국내선을 타고 카파도키아로 갈 예정이었던 터라 두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에 도착했으니 아침을 먹으면 금방 시간이 갈 줄 알았는데 설상가상으로 3시간이 연착되었다. 카페에서 5시간을 대기하는데 정말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낮시간대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텐데 밤을 세고 5시간을 대기하고 국내선을 2시간 타고 당카파도키아에 도착해서 당일 일정을 수행했다. 저녁 무렵 첫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호텔식 저녁식사를 하는데 눈이 저절로 감겨왔다. 거의 36시간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더니 밥을 먹다 식당 바닥에서도 잘 기세였다. 그때 이스탄불의 공항의 카페에서 대기할 때 꽤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을 보았다. 나처럼 연착된 김에 어쩔 수 없이 죽 때리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공항에서 노숙을 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무려 8년 동안 여행을 하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 부부의 체험담을 읽으며 예전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디지털 노마드는 내가 죽을 것 처럼 힘들었던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들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몸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불편한 자리에서 장시간 대기하며 때로는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니 생각하지 않고도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다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제 집 장만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수순이다. 이 중에 하나만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부모님이나 지인들은 당장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만류하려 든다. 그러한 시선이 부담스럽고 두려워 상당수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나 전혀 생각보지 않았던 샛길의 삶을 과감히 선택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죄를 짓거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각자가 선택하는 삶의 길에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은 이미 걸어본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의 삶의 선택은 어찌보면 현대 사회의 선구자와 같은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부터 전문 여행가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다보니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과감히 자신의 온 삶을 새로운 길에 투신할 수 있었던 용기 덕에 이렇게 디지털 노마드의 신세계를 많은 이들에게 열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안정되어 갈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어려워진다. 일상히 무미건조해지고 나른하게 느껴져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예전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게으름 때문인 것 같다. 일상은 여전히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내 마음에 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는 점점 게을러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육체적 노화의 시간은 거스를 수 없지만 마음의 노화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거꾸로 흐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게으름을 타파하기 위한 도전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