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 오늘의 젊은 작가 35
정지돈 지음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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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작가의 [… 스크롤!]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5번째 작품이다.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무슨 얘기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을 접했다. 난해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쫓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전환 속에서 그래도 나와 프랜과 정키와 지우가 등장하면 그래도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뜻하는 바도 전체적인 내용과 연관지어서 바로 설명하기 힘들다. 이야기의 말미에 정키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미국에서 머물 호텔을 검색할 때에 스크롤을 내렸다는 표현 외에는 제목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부분은 없던 것 같다. 휠마우스가 나오기 전에는 스크롤을 내리기 위해서는 클릭한 채로 마우스를 아래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휠마우스가 보편화된 지금은 검지 하나면 마치 속독을 하듯이 검색 창에 나온 내용을 순식간에 훓으며 습관적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책과 검색창의 텍스트는 똑같이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만, 책과 서류로 텍스트를 접할 때에는 스크롤이 불가능하다. 하이퍼링크로의 전환이 불가능하기에 책을 내려놓기 전에는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다. 하지만 검색창을 통해 전해지는 텍스트는 나를 집중하기 힘들게 만드는 수많은 배너들을 포함한다. 배너들은 현란한 몸짓으로 반짝거리며 나의 마우스 클릭을 종용한다. 검색창의 텍스트에 집중하기 힘들어지면 순식간에 변화된 배너는 폭발하기 직전의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것 같아 결국은 검색홈으로 돌아가 새로운 텍스트를 클릭하게 된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터넷 사용 시간만 늘어나고 나의 눈만 충혈될 뿐이다. 


담론(narrative)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있다. 먼저 인간 행동에 대해 그동안 쌓아온 윤리적인 기준들이 있다. 이것은 꼭 해야만 하는 것과 저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통 진리라고 말하기도 하고 선과 악이라고 규정하기도 한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사람들은 보편 진리에 해당되는 가르침을 따르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 진리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이런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만들어왔고 지키도록 강요했기에 이제는 그 강요된 진리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이렇게 생겨난 상대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고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려 했다. 그래서 이런 난관을 해쳐나가기 위해 새로운 접근법으로 담론이 제시되었다.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윤리가 왜 인간에게 존재하고 지켜져 왔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서 관계를 맺어왔고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문제점들을 극복해왔다.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소통이란 존재할 수 없었고 언어가 서로를 기만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극단의 감정에 치우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 낼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담론을 부정하는 이들은 바로 그 이야기 때문에 우리는 기존의 세대들이 강요해온 수많은 사회적 규범들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세대의 이야기는 지금의 세대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에 과거의 언어로 만들어낸 규범들은 언제든 해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새롭게 부수고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을 사는 이들의 권리이며 그렇게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낼 때 자신의 존재를 규명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과거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애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어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일이기에 오히려 제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혼돈의 경험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인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경험, 감정적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 도덕적 이해를 벗어난 경험. 혼돈을 경험한 사람들이 음모론을 상상하게 되지.(60)”


“프랜은 단지 말들을 떠돌게 하고 싶었다. 대단한 예술 작품, 베스트셀러, 히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따위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아이디어, 논평, 꿈, 일상, 작은 이야기, 사소한 논쟁 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슬프게 스치고 사라졌으면 했다.(71)”


“부르주아처럼 보이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부르주아처럼 보이는 것이야말로 부르주아적이지 않은 것이죠.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예술 같아 보이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키치죠. 예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예술입니다.(87-88)”


“우울은 과거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은 미래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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