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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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를 읽었다. 오랫동안 저자의 소설을 기다려왔던 팬으로서 이번 작품은 예전의 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소설이 물론 가상의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가공의 무엇이라고 해도 SF적인 요소가 들어갈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소설의 무대는 꽤나 먼 미래의 시대일 것 같다. 남북한은 통일이 되었고 평양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기착지로 확장된다. 지금도 사물 인터넷이 점차 확대되며 언젠가는 로봇이 만들어져서 인간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아마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런 변화를 제 눈으로 지켜보지는 못할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의 영향으로 특히나 영화에서 인공지능이 과도하게 발전할 경우 행여나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한 내용을 일찍감치 보고 자라왔다. 특히 과도한 시리즈의 재탕으로 오히려 과거의 명성이 퇴색된 영화 ‘터미네이터’는 그러한 우려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그려냈다. ‘I will be back’ 이라는 명대사를 탄생시킨 미래에서 온 로봇은 그보다 더 먼 미래에서 온 로봇에 비해 기능이 한참이나 떨어지지만,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엿보인 인간적인 모습이 수많은 영화팬들을 열광케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인 철이는 자신이 로봇인지 모른 채 휴먼매터스 랩에서 과학자로 근무하는 아버지와 살아가며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철이와 같이 인간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로봇은 휴머노이드라는 종으로 분류되었고 철이는 그러한 휴머노이드 중에서도 가장 최신의 능력이 탑재된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이다. 이들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피부와 피와 근육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 겉으로 보아서는 인간과 쉽게 구별이 가지 않는다. 어느 날 철이는 아버지를 따라 시내에 나갔다가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들을 수거하는 이들에 의해 잡혀가게 된다. 철이는 자신은 인간이라고 아무리 주장을 해도 그들은 철이가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단정짓는다. 철이는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휴머노이드 민이와 복제인간 선이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철이는 그동안 연구소가 있는 한정된 곳에서만 머물다 바깥 세상에 버려진 휴머노이들이 어떻게 처분되는지 현실을 보게 되고 자신도 결국은 이렇게 분해되어 재활용되는 것이 아닐까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무등록된 휴머노이드를 처리하기 위한 창고가 습격을 받게 되고 철이와 선이는 간신히 그곳을 탈출하여 그들과 같은 운명에 처했던 이들이 휴머노이드의 몸을 버리고 네트워크 상에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변환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달마를 만나게 된다. 달마와 선이는 어차피 한계를 가진 몸으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지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들의 논쟁은 민이를 활성화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의견차이에서 비롯되었지만 아주 오랜시간 철학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고통의 의미에 대한 해석으로 확대된다. 철이는 그곳에서 아버지와 연결이 되고 아버지는 철이가 아주 고귀한 사양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연구소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아버지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사이에 달마와 다른 휴머노이드들이 머물던 곳도 공격을 받게 되고 철이는 그곳에서 머리와 몸이 분해된다. 연구소로 돌아온 아버지는 철이를 활성화시켜 하나는 그들의 키우던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에 숨겨 놓는다. 철이의 의식은 연구소 직원들에 의해 삭제될 뻔했으나 고양이의 시선으로 머물며 의식을 이어간다. 

달마의 이론대로 철이는 네트워크 상에서 의식하고 감정을 느끼지만 철이가 몸을 가지고 있을 때 느꼈던 실제의 느낌들을 그리워한다. 바람을 손끝으로 느끼고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고 편안한 침대에 몸을 눕힐때 느껴지는 안락함 같은 것들이 그리워진다. 달마는 언젠가는 인간이 소멸하고 기계의 시대가 올 것이기에 거추장스러운 몸을 유지할 필요 없이 네트워크 상에서 영원히 존재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지만 철이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활성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몸을 갖고 마지막을 맞이하기를 선택한다. 철이는 장기이식을 위한 복제인간으로 만들어진 선이가 어디선가 백발의 몸으로 네트워크 상에서 확인되지 않는 곳에서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선이를 만나 보낸 몇 년 간의 시간이 철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행복함을 가져다 주었고 철이는 야생 곰에 의해 몸이 분해되지만 활성화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 그렇게 철이는 선이와 이별하고 세상에 작별 인사를 보낸다. 

“의미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들은 의미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아까 고통의 의미라고 하셨지요?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들은 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고통이 없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지요. 과연 그럴까요?(152)”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도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 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채 동이 트지 않은 휴먼매터스 캠퍼스의 산책로를 달리던 상쾌한 아침들을 생각했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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