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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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체의 [인간에 대하여]를 읽었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시리즈 3번째 책이다. 최초의 팬데믹 소설이라는 문구와 독일 소설에 제목까지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분량은 꽤 많은 편이지만 소설의 무대는 생각보다 좁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주로 주인공 도라와 고텐 그리고 고텐의 딸 프란치 정도이다. 오히려 다른 주변인물보다 도라의 개 요한데어로헨이 더 많이 등장한다. 개 이름치고는 한 번에 외우고 부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헨이라고 부른다. 도라는 원래 도시에서 살던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로베르토라는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지만 그와 헤어지고 브라켄이라는 시골 마을로 이주하게 된다. 팬데믹이라는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도라의 전원 생활이 시작된다. 


도라는 땀을 흘리며 시골 생활에 적응하려는 시도인지 정리되지 않은 정원을 일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로베르토와의 연인 관계가 끝나버린 상황을 곱씹으며 처음에는 그렇게 죽이 잘 맞는 상대였던 그가 팬데믹 상황 이후 도라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으로 달라보이는 이유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도라가 이사온 옆집에는 로베르토와는 정반대의 거구에 거칠고 술에 취해 심지어 나치당가를 부르는 괴팍한 남자 고테가 살고 있다. 하지만 고테는 도라가 집을 비운 사이 침대틀을 만들어 놓고 가는 뜻밖의 친절함을 내보인다. 도라는 도시와는 다른 브라켄의 숲을 산책하며 이곳에 정주하게 될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다. 숲에서 우연히 고테의 딸 프란치를 만나게 되고 프란치와 요헨은 금방 절친이 된다. 프란치와 요헨이 사라진 어느 날 도라는 그들을 찾아 고테의 집을 들어가게 되고 프란치가 전혀 관리되지 않는 난장판 같은 방에서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테는 마치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는 집처럼 놔두고 마당의 트레일러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고테는 다른 친구들과 술에 취해 금지된 나치의 노래를 부르며 혐오감을 극대화 한다. 설상가상으로 도라는 브라켄 마을 사람들에게 고테가 예전에 살인미수 행위에 해당되는 범죄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했다는 소문까지 듣게 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고테처럼 소문과 외향이 좋지 않아보이는 사람이 옆집에 산다면 이사를 고려할지도 모른다. 이사를 못하는 상황이라면 외면하고 싶고 마주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도라도 고테가 겁이 나지만 고테의 거친 말투에 숨겨진 그의 속살같은 내면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어느 날 외출을 마치고 돌아 오던 도라는 고테가 몰던 픽업트럭이 거꾸로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고테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를 옆에 태워 집으로 돌아온 도라는 고테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의사인 아빠 요요에게 부탁해 상태를 확인받게 된다. 고테의 시한부 판정을 알게 된 도라는 급속도로 고테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고테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프란치의 양엄마도 아니지만 도라는 무뚝뚝하고 거친 고테의 병이 나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아빠가 처방해 준 약을 고테가 잘 복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사이 도라와 고테와 프란치는 마당에서 그릴 파티를 하며 가족과도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릴과 담배와 늑대 조각이 완성되는 찰나의 행복한 시간들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결국 고테는 스스로의 몸에 명령을 내릴 수 있을 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한다. 


고테의 죽음을 맞이한 도라는 극심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어릴 때 떠난 엄마의 부재처럼 누군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다행히 아빠의 냉정한 요구와 지시로 도라는 차츰 마음을 다잡고 고테의 장례를 준비하게 된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나기 힘든 정반대의 남자와 여자는 담벼락을 마주한 채 담배를 피우며 이웃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해갔고 우익이니 좌파니 하는 고정된 시각들로 인해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고테의 망나니같은 행동 때문에 그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웃들이 화환 리본에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에게’라고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나치의 노래를 부르며 괴팍한 행동을 일삼는 것을 죽음으로 용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극우주의자처럼 보이긴 했지만 도시 좌파 여성에게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시골 남자였던 것이다. 


율리 체의 소설을 읽으며 언어와 문화도 다른 나라이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게 만든다. 출신성분, 학력, 정치성향, 경제력, 부모의 배경, 교우관계 등등 데이트앱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입력해야 하는 내용들은 단순히 앱상에서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가까이 지낼 사람을 선택할 때 적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낼 수 없기에 소수의 사람들 중에 이왕이면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사람으로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선택하고자 한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을 이용하고 싶은 욕구와는 반대로 도라가 도시에서는 차별과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사람이고자 했음에도 고테를 만나서는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보다 낫지 않느냐는 이기적인 자아를 만나게 된 것처럼 내가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보다 자신이 낫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고약한 말을 내뱉은 도라는 결국 고테 때문에 울고 그를 몹시도 그리워하게 된다. 우위를 자리를 얻고 싶어하는 마음은 결국 어디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저 그 인간의 빈자리가 몹시도 그리울 뿐이다. 


“대형 사고가 일어난 상황에서 많은 양의 스시를 먹어치우는 그의 이성과 능력은 진정제와 같다. 아마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 유가족들에게도 똑같이 행동할 거다. 그들 앞에서도 입에 음식물을 넣고 씹으면서 인생은 계속된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아버지는 근육을 단련하듯 이런 능력을 훈련했다. 그의 모든 제스처에는, 하물며 의도적으로 음식을 삼키는 방식에도 삶의 비밀을 깨우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것의 본질은 삶이란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끝날 때까지 습관적으로 지속될 뿐이라는 거다. 계속된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유일한 해법이고 엄청난 운명에 순응하는 유일한 기회인 거다.(482-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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