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음식 :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 - 띵 시리즈의 유쾌한 반란 만우절 특집판 띵 시리즈 17
김겨울 외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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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콜론 띵 시리즈 17번째 앤솔러지 [싫어하는 음식: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를 읽었다. 김겨울, 고수리, 김민철, 신지민, 윤이나, 한은형, 안서영, 하현, 서효인, 김미정, 이수희, 정의석, 임진아, 김현민, 호원숙, 정연주, 박찬일, 김자혜, 이재호, 김민지, 허윤선, 봉달호 이렇게 그동안 띵 시리즈를 출간했던 저자들과 이제 곧 출간될 저자들의 특정 음식에 대한 불호의 이야기가 묶여 있다. 지금까지 읽은 띵 시리즈는 저자들의 특정한 음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듬뿍 묻어나는 예찬이 중심이었는데, 이번 책은 그와 정반대로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싫어하는 음식을 솔직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미 읽은 저자들을 다시 만난 반가움과 아직 출간되지 않은 음식 소재를 다룰 저자들에 기대가 맞물렸고 싫어하는 음식을 주제로 하다니 뭔가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까탈스럽다’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뭐든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편하고 다가가기 쉽다면, 까탈스럽다는 말이 첨부된 사람은 가까이 하기 쉽지 않고 어딘가 윤활유가 제대로 발라져 있지 않아 삐걱거리는 네모난 바퀴처럼 보인다. 특히나 음식에 대해 까탈스럽다면 함께 사는 사람이든, 같이 일하는 사람이든 불편할 수 밖에 없다는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거나 잘 먹는 혹은 복스럽게 잘 먹는 사람이 어디서든 환영을 받고 음식을 해준 사람에게 보람을 가져다 준다. 복스럽게 잘 먹는다는 말의 반대는 ‘깨작거리다’라는 말로 표현되곤 한다. 특히나 젓가락을 휘적이며 깨작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라 해도 등짝을 후려치며 먹기 싫으면 숟가락 내려놓으라는 불호령을 듣기 십상이다. 전후 배고픔의 시대를 보냈기 때문에 먹을거리 앞에서 감히 부정과 거부의 자세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불호의 음식에 대한 역사를 과감히 고백하는 저자들의 용기에 왠지모를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나는 그동안 이렇게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참아왔고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주 오랜시간 술을 원수같이 생각하며 지내온 적이 있었다. 체질상 술이 맞지 않으니 많이 마실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분위기상, 관계를 맺기 위해서, 때로는 강압에 못이겨 억지로 술을 마시고 몸이 상한 적이 꽤나 많았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으니 당당하게 권하는 술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미 그런 시대를 살아서 도저히 생각의 전환인 불가능한 분이 권하는 술잔을 거부하고 보니 분위기가 이상해졌고 다시는 그분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여러 찰례 고민을 해보고 가늠해보아도 다시는 예전처럼 억지로 술을 마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급기야 술을 잘 마실 줄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라는 자아비판의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런게 정말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만약 먹고 사는 것과 직결된 일이라면, 싫다는 것을 드러내는 순간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면 과연 그렇게 솔직히 불호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 


다행히도 이번 앤솔러지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떤 특정 음식을 싫어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또 세상의 진리를 부정하거나 악함을 뒤쫓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극단적 이기주의의 발로로 세상의 약자들에 대한 폄하의 말도 아니고 대립적 관계를 부추기는 사건의 비약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먹을 거리는 많고 내가 먹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세상 모든 음식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소중하게 대하고 그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수고한 이들에게 감사하며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장 근본적인 것에 다다를 수록 조금씩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싫어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일이 없다. 소셜 미디어에 구태여 싫은 것을 공유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거 좋은 것을 더 좋게, 예쁜 것을 더 예쁘게 올릴 뿐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공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인 것도 같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말할 때 알 수 없는 활력이 돌기도 한다. 천재적 광기마저 번뜩일 때도 있다. 자신이 무엇을 그리도 못 견디는지, 다종다양하고 디테일하게 짚어내는 사람을 보면 흥미롭고도 경이로운 동시에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느라 무언가를 싫어하는 내 마음을 구긴 채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까다로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예민한 사람 취급받기 싫어서.(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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