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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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 작가의 [돌보는 마음]을 읽었다. 소설집으로 ‘대추’, ‘안’, ‘경자’, ‘연주의 절반’, ‘조리원 천국’, ‘돌보는 마음’, ‘내 이웃과의 거리’, ‘입원’, ‘특별재난구역’, ‘태풍주의보’ 이렇게 여러 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연작 소설이 아니기에 단편 소설들의 주인공이 모두 다 다르고 배경도 정황도 다르지만,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세계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더라도 금방 몰입할 수 있었고 매 순간 난감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입장에 빙의가 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주 가끔씩 간난 아기를 마주할 때가 있다. 한 번 안아보라는 권유에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아직 머리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행여나 떨어드릴까 두려워 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그냥 괜찮다며 손사레를 치고 아기의 볼을 살짝 눌러볼 뿐이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볼 때마다 항상 비슷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아기가 나중에 그렇게 변한단 말이지? 어떻게 변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평생 해야 할 효도를 몸도 못 가누는 시기에 다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옹알이를 하며 먹고 자고 싸는 일 밖에 안하는데도 부모들은 아기가 예뻐서 어쩔줄을 모른다. 


내가 일하는 곳에도 조만간 출산을 위해 휴직하는 분이 있다. 잠깐 얘기 나눌 시간이 있어서 언제가 출산 예정이냐고 휴직 기간은 얼마나 되냐고 묻자, 석달 후에 돌아오고 싶은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아이가 중요하지요’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인공수정과 관련되어 야기되는 문제 중에 대리모와의 계약을 인정하느냐가 있다. 극단적인 주장 중에 여성의 경력단절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몸매를 유지하고 싶다는 이유로 대리모를 통해 유전적 결합을 유지한 자녀를 낳겠다는 내용도 있다. 아마도 이런 주장을 내뱉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경력단절이 얼마나 큰 삶의 위협으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기와의 9개월 동안 이어질 단독적이고 직접적인 연결의 시간을 포기할 정도의 위협이라면 저출산의 통계률을 들먹이며 자못 심각한 도표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전면적인 사고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표제작인 ‘돌보는 마음’에서도 주인공이 시터를 구하기 위해 노심초사 신경쓰는 모습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바쁜 와중에도 경험이 있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면접을 하고 한 달 월급의 반을 쏟아부을 정도로 비용이 소요되는 지난한 과정을 견뎌야만 경력단절이 되지 않고 원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팀장으로 승진한 이후 덜컥 아이를 갖게 되어 휴직을 하는 동안 입사한 사무적인 계약직 직원으로 인해 한차례의 소동을 겪게 된다. 주인공은 상사에게 불려가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말에 팀장을 맡겨준거라며 마치 그녀가 아이를 낳게 된 것이 회사에 커다란 손해라도 끼친 것처럼 말한다. 불의하고 용납될 수 없는 말이지만 이렇게 비겁한 상황은 소설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실제상황에서는 더욱 난감하고 비참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쏟아지는 소낙비 같은 시련을 견뎌내는 것만이 자녀를 돌보는 길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을 용납할 수 있을까? 


“미연 씨, 힘들어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버텨야 해. 난. 쌍둥이라 시터 월급 빼면 진짜 남는 게 없었어. 회사 다니면서 내가 쓰는 돈까지 생각하면 마이너스였다니까. 그래도 버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연 씨도 아이 키우는 동안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그냥 버티면서 커리어 지켜.(158-159)”


“[돌보는 마음]은 남을 돌보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된 여자들의 삶에 주목한다. 가족로망스의 주인공으로 호명되지 못했던 이 ‘평범한’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과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면서도 자기만의 집을 짓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가족로망스는 서늘하다. 어머니와 딸, 아내와 남편, 친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우리의 삶을 둘러싼다. 어머니가 집을 떠나지 않고 가족을 지키며 유지되었던 돌봄은 이제 대부분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기꺼이 이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경력을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길 위의 삶은 누구에게나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외된 삶으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읽는다. 김유담의 ‘우리 집 이야기’가 여러 독자에게 가닿는 것은, 그 어떤 집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작품 해설 중에서(296-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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