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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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작가의 [헬프 미 시스터]를 읽었다. 전작인 [당신의 4분 33초]에서도 느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도 평범해서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무색무취의 공기처럼 존재감 제로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역사의 세부사항에 대해서 굵은 조각칼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돌판에 새겨주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무색무취하지 않다고, 그 누구도 그들의 삶을 재단해서 없었던 것처럼 지워낼 수 없다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수경, 우재, 여숙, 천식, 보라, 은지의 흔적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기억하지 않아도 온 우주가 그들을 기억할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릴때에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도, 유명한 사람이 되기도 원치 않았으면서도 말이다. 마치 유명세와 잘난 능력 덕분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받는 것 같은 관심은 귀찮으면서도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은 놓고 싶지 않았던 양가감정의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특별한 사람은 커녕 일상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엄청난 노력과 행운이 깃들어야 하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아무일이 없다는 것은 노잼처럼 지루한 일이지만, 가족 중의 누군가가 큰 병을 앓게 되거나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면 그때서야 그 노잼의 하루가 못견디게 그리워진다. 그리고 다시 그 노잼의 하루를 만회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일상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수경은 어쩌면 그렇게 일상적인 직장생활로 조금씩 능력을 인정받으며 살아온 평범한 딸이자 아내였다. 그런 그에게 매일 마주하고 때론 친절을 베풀던 직장동료가 회식자리에서 약을 탄 음료를 건내며 모텔에 데려갔다가 모텔 주인의 신고로 미수에 그친 일이 벌어진다. 소설 속에서는 수경이 겪었던 지옥같은 시간이 묘사되지 않지만 그녀가 다시금 세상의 일원으로 회복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어떤 고통의 늪을 지나와야 할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수경의 남편 우재는 직장을 그만두고 몇년 간 선물거래로 한 밑천 잡으려 하지만 터무니없는 그의 바람은 그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소설의 서두에서 수경의 직장생활로 먹고 살아온 남편 우재와 잘못된 투자로 집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수경의 집에 얹혀 살게된 수경의 모 여숙과 부 천식의 모습이 몹시도 무능력하고 나태한 것처럼 느껴진다. 수경이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제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혹시 이 집은 수경의 겪었던 일을 나몰라라 하는 염치없는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독자들에게 정당한 반론의 기회라도 얻은 것처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의 쳅터 제목으로 붙이며 지금의 말이 안나오는 처지에 이른 내력을 덤덤히 전해준다. 우재가 순진하게도 선물거래로 돈을 벌고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망언에 가까운 판단을 내려 실직자가 되었음에도 그가 가진 선함과 대리기사를 비롯한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 복귀하려는 모습은 그가 막되먹은 놈팽이가 아님을 알게 된다. 비록 천식이 집을 날려버리고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걸치고 오는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처럼 비춰지더라도 회비를 내지 않아서 고깃집에서도 된장찌개에 밥만 먹고 오는 우직함을 가진 아비임을 알게 된다. 수경의 엄마 여숙은 언제든 청소할 준비를 위해 고무장갑을 뒤춤에 넣고 다니며 다시 운전을 배워서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준비성을 갖추고자 한다. 


수경은 되도록이면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두려워 플랫폼 앱을 통해 일을 할당받는 개입 택배사업자의 일을 시작한다. 때로는 우재가, 때로는 엄마 여숙이 함께 하며 서서히 택배 노동에 익숙해지지만 그 일도 영원히 사람을 마주하지 않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수경과 여숙은 <헬프 미 시스터>라는 또 다른 플랫폼 앱의 일에 지원하여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의뢰를 맡게 된다. 첫 의뢰는 집에서 거행되는 스몰 웨딩에 엄마와 언니로서의 대리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헬프 미 시스터>라는 새로운 플랫폼 사업은 여성들이 안전하게 의뢰를 하고 의뢰받은 일을 무난히 해내며 돈을 벌 수 있는 형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평점과 수시로 변경되는 조건들은 수경과 여숙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음식배달을 시키고 운전을 할 때마다 곡예운전을 하는 라이더들에게 불평을 내뱉곤 했는데 그들도 플랫폼 노동자였다.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앱을 열고 클릭 몇 번으로 주문완료 하고 빨리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수경처럼 아무런 노동 현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입사업자로 등록된 이들이 상당수임을 알게 되었다. 사이버 프롤레타리아 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면 언젠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부당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이버 쟁의가 반드시 생겨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새로운 노동의 형태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의 테두리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다시금 과거의 부조리함을 반복시키는 오늘날의 문제점과 전통적 가족의 형태만을 강조해온 사회 문화 안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원하는 이들의 반목 또한 이 소설의 주제라고 생각된다. 읽는 내내 보지 않으려고 하면 그냥 지나처버릴 수 있는 남 얘기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관된 냉소적인 자세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간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가난이 드러나는 지점은 옷과 얼굴이 아니라 손등과 발꿈치, 정수리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다.(61)”


“가장 큰 문제는 근로자를 사업자라 칭하고, 고용주를 중개자라고 칭하는 거야. 자기들은 그저 중개만 하니까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지. 노동자를 직고용하지 않고 파견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이젠 앱이나 웹 같은 플랫폼으로 일을 시켜.(159)”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수경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렇게 결론내릴 때마다 늘 의구심이 남는다. 그러나 수경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수경을 지켜보는 보라가 받고 있는 고통이 수경의 고통보다 더 클 수 있다고. 그리고 수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수경의 사건을 기사로 접하고 받는 고통이 수경의 고통보다 더 클 수 있다고. 그들은 모두 이어져 있다. 총체적 가해의 형태를 이해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수경은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떠올렸다. 그러고 있는 동안 차츰 보라의 아픔이 만져졌다.(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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