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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ㅣ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평점 :
[2021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은 이승우 “마음의 부력”이고, 우수작은 박형서 “97의 세계”, 윤성희 “블랙홀”, 장은진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천운영 “아버지가 되어주오”, 한지수 “야심한 연극반”이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학교에는 그 옛날 우리의 모습이 있지”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며 새학기가 시작되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곤 했다. 책을 많이 읽던 때가 아니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문학상을 받은 단편소설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촌스러워 보이는 표지에 박힌 대상 수상자의 이름이 가진 무게가 무진장 부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런 수상집에 대상으로 선정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막상 대상을 받은 소설을 읽고 나서는 별고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대상을 받은 작가는 항상 문학적 자서전을 첨부했는데,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면, 문학적 자서전에서는 어떤 필터링도 없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새학기를 시작하는 내게 어쩌면 그 문학적 자서전이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기 위한 롤모델로 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은 그가 신학대학을 나와서인지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많이 담겨 있다. 예전에 읽었던 [지상의 노래]에서도 높은 산 꼭대기에 세워진 천산 수도원을 배경으로 수도자들의 삶을 그려내서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의 부력”은 목소리가 비슷한 형을 둔 주인공이 아내에게 돈에 대한 추궁을 받으며 시작한다. 화자인 성식은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빌린 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았다는 아내의 말에 완강히 부인하지만 아내는 행여나 남편이 자기 몰래 어머니께 돈을 빌린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성식의 형 성준이 죽은 이후에 어머니는 예전과 다르게 성식을 살갑게 대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어머니는 아내와 자주 통화를 했기에 아내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성식은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뵙기로 약속한 날 어머니 집을 방문하지만 어머니는 부재중이었다.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보니 기도원에 들어가셔서 저녁 늦게나 집으로 돌아오신다는 말에 목사님의 전화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지만 차마 아내에게 말한 돈의 사정을 묻지는 못한다. 어머니는 아들 성식의 목소리를 듣고 죽은 아들 성준이냐고 묻지만 이내 그럴리 없지 라며 자신의 말을 수정한다. 저자는 아들 성식과 성준의 삶을 성경에 나오는 이사악의 아들 에사우와 야곱 형제에 빗댄다. 불콩죽 한 그릇에 장자로서의 권리를 내어던진 에사우의 불운한 선택은 마치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도 변변치 않은 채 무용해보이는 것들을 삶의 낙으로 삼다 세상을 떠난 형 성준의 모습으로 오버랩 된다. 그에 반해 레베카의 사랑을 받아 아버지의 장자권을 얻게 된 야곱은 안정된 직장을 얻고 싹싹한 며느리까지 얻어 아들 노릇을 제대로 하는 성식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 치매 증상이 두드러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성식은 자신이 어머니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인정받는 순간 형 성식은 그 사랑의 공간에서 밀려나 자꾸만 멀어져 간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 된다. 친척들이 주변 사람들이 형을 앞에 두고도 자신을 칭찬하고 두둔할 때 성식은 오히려 자신이 삶에 정직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때때로 나와 다른 형의 그런 기질을 부러워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생각하면 하고 싶은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있었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하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없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겸연쩍어서 숨은 거라고 할 수 없으니 내가 귀찮아한 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고 싶어 하거나 하기 싫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적극성을 피한 거라고. 그렇다면 나야말로 태만한 사람이 아닌가. 삶에 대한 의욕도 사랑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내 어쭙잖은 이른바 ‘출세’가 실은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의 결여, 즉 태만의 결과며, 따라서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닌데도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형만이 아니라 삶을 망신 주는 것이고, 내 마음까지 할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41)”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상실감과 슬픔은 특정 사건에 대한 자각적 반응이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무자각적 반응이어서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사랑의 대상인 야곱이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제법 깊이 생각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리브가가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