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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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그라멜리니의 [이태리 아파트먼트]를 읽었다. 부제는 “팬데믹을 추억하며”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2년 전 이맘 때, 전세계 사람들은 처음 맞이한 바이러스 공황 상태에 어쩔줄 몰라하며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일지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서유럽의 잘 사는 나라들이 하나 둘씩 바이러스에 봉쇄와 록다운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에 반해, 그나마 우리나라는 마스크 대란을 제외하고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마티아가 2080년이 되어 손주들에게 옛날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2080년이면 2020년 9살로 나오는 마티아 또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이 세상을 떠났을테니, 팬데믹을 기억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그저 한때 그런 악몽같은 일이 몇년 간 지속되었다고 기억했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사실 나에게도 2020년은 평생에 딱 한 번 주어진 안식년이었기에 아주 오랜시간 준비해왔던 계획을 펼치려는 생각에 설레며 기다리던 때였다. 한동안 외국에서 살기 위해 비자를 준비하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언어도 공부하며 그곳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뜨거운 햇살을 고대했다. 1월 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차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도 이미 2015년에 메르스 사태가 일찍 종식되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때와 달라졌고,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 하루 종일 인터넷 사이를 뒤져 비싼 돈을 주고 주문을 하고 며칠을 기다려 마스크를 받고서야 안심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배급제처럼 주민번호 뒷자리가 해당되는 요일에 약국 앞에 줄을 서서 5장씩만 구입할 수 있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단락 되고도 팬데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겨울이 되자 바이러스는 때를 만난 것처럼 기승을 부렸고 QR코드 확인이라는 방역수칙이 생겨났다. 코로나가 무서워 벌벌 떨던 초기에는 확진자가 나오면 개인정보나 사생활 보호와 같은 기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의 동선을 무작위로 공개해버렸다. 어떤 사람이 성정체성이 드러날까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을 두고 마녀사냥에 버금갈 정도로 파헤쳐 결국 그 사람은 아웃팅되었고 직장도 잃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치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이 마비된 것처럼 일단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져도 무신경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완강히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지 않거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제네들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란 의문과 더불어 선진국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에 가려진 부실한 체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냐고 으스대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을 2년이상 보내며 과연 우리가 대응한 방식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그저 코로나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자문할 때가 온 것 같다. 백신 패스와 같이 접종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건강상의 이유로 접종이 불가한 사람은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고가 지속될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팬데믹은 어떤 식으로는 비참한 결과와 슬픈 결말을 가져다 주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처럼 언제 다시 마스크를 벗고 편안하게 심호흡을 하며 재채기를 해도 사람들은 눈총을 받지 않을 날이 올 것인지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홀로 보낸 2년여의 시간 동안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심각하게 환경에 대해서, 한 사람의 인권에 대해서,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헤아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소설의 주인공 마티아의 엄마와 아빠가 멀고도 가까운 부부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팬데믹의 구름이 지나가면 우리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마티아의 가족처럼 우리에게 허락된 세상은 거실, 주방, 방, 발코니와 아파트의 옥상이 전부였습니다. 집에서의 시간이 길어지자 맞닥뜨린 어려움이 바이러스에서 우리 서로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우린 가족이었지만 단 한 번도 온전히 가족으로만 존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겐 학교가 있었고 아빠에겐 직장이 있었고 엄마에겐 직업이 있었습니다. 록다운 전의 우린 하루 중 반 이상을 가족이 아닌 이름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았습니다. 록다운이 시작되고 한 달이 넘게 가족의 공간과 시간만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건 마치 처음으로 가족으로 살아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김민주 추천사 중에서(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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