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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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읽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여행과 언어 연수라는 계기로 머물게 된 뉴욕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연결된 연작 소설집이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아가씨 유정도 하지”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다. 뉴욕이라는 배경만 같을 뿐 주인공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고 직접적연 연결성을 갖고 있는 수진과 이혼한 남편 ‘나’를 제외하고 약간의 접점만 갖고 있는 이들은 소설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숨겨진 비밀들을 간직한 채 생겨난 소소한 갈등을 통해서 그들이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서 승아는 어릴때 친구 민영이 뉴욕에서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계약직 만료를 얼마 앞두고 민영이 머무는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서 만난 민영은 승아를 그렇게 반겨주지 않고 민영의 거주지에 도착한 승아는 SNS를 통해서 본 민영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에 의아함을 갖게 된다. 시차적응에 실패한 승아가 잠든 후에 민영은 시니컬한 모습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잠이 깬 후 혼자 남게 된 승아는 낯선 곳과 언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승아의 집에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민영의 환대를 기대했던 승아는 실망감을 느끼며 일정을 당겨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민영이 엄마의 생일 선물을 전해주기를 부탁받으며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동행의 며칠을 보내게 된다. 승아의 입장에서 민영의 입장으로 화자가 전환되며 민영이 승아를 받길 수 없었던 이유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승아와 민영이 갖고 있는 한계와 상처들이 드러나며 우편 배달부가 문 앞에 붙여놓은 안내고지 스티커는 매번 한 발씩 늦을 때마다 깊은 후회와 자신을 자책해온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수진은 이혼을 하고 즉흥적으로 뉴욕의 어학 연수 코스를 신청하게 된다. 어학원 클래스에서 자신이 나이가 제일 많을 것으로 예상하며 수진은 세네갈 청년 마마두를 만나게 된다. ‘하이 수진’과 ‘바이 수진’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던 마마두와 학원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그가 무슬림이고 외교관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마두와 함께 짝을 이루어 수업을 듣고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수진이 다른 학원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된 마마두는 다시 거리를 두게 되고 예전의 짧은 인사만을 하던 모습으로 돌아간다. 수진은 마마두와 다시 멀어진 후 홀로 코너스의 빵집에 들어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여유 있는 오후를 보내려던 찰나 한눈에 홈리스로 보이는 남자가 악취를 풍기며 구걸을 하다 수진에게 당도하게 된다. 수진은 다른 손님들처럼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는 다른 손님들 앞에서와는 다르게 수진의 쟁반을 뒤엎어 버린다. 수진이 뉴욕의 카페에서 홈리스의 폭력적인 행동을 통해 철저한 이방인의 정체성을 깨닫은 것처럼 마마두 또한 그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아버지로 인해 뉴욕에서의 삶은 그에게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끔 만들었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 현주는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된 한국계 이민자 로언과의 만남을 위해 다시 뉴욕행을 택한다. 현주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귀에 이상이 생기게 되고 로언과 극장을 가서 이명이 들리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분명 귀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하지만 현주는 안그래도 잘 들리지 않는 이국의 언어와 이명으로 인해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그냥 내버려둔다. 학부때 방문했던 뉴욕에서의 경험을 발표한 작품이 주목을 받으며 극작가가 되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 현주는 초초함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더 나은 작품을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그의 귀에 이상이 생기도록 한 원인일 수 있을테지만, 현주는 남자친구 로언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좀처럼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주에게 짜증과 답답함을 느끼는 로언은 현주가 놓아버린 상실감에 공감하지 못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로언과 마지막 식사를 하며 현주는 식당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두 아이의 비명소리에 로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로 락다운을 알리는 안내문처럼 현주의 이명은 소통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스토리텔러의 필요성을 간절히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 화자인 ‘나’는 중견 작가로 몇 년 전 수진과 이혼한 후 뉴욕에서 열리는 아시아 작가와의 대담에 초대받아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뉴욕은 수진과 신혼 여행을 다녀온 곳으로 팔순이 넘은 엄마는 왜 자신과 함께 그 먼곳까지 여행을 가려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담을 준비한 교포 김선생을 통해서 에이미라는 교포 여성을 소개받아 어머니의 나들이를 독려하게 되는데, 에이미를 기다리는가 ‘나’는 엄마가 캐리어 속에 가지고 온 1953년도에 받은 엽서를 우연히 보게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엄마를 향한 연서를 보낸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할머니가 된 엄마와의 여행에서 자신이 알던 것과는 전혀 상반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과 수진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에이미와의 동행을 통해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는 “천상여자, 현모양처, 알뜰한 당신, 어머니 손맛(228)”이라는 전형된 모습에서 탈피하여 엄마가 아닌 그냥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간듯 하다. 코니아일랜드의 바닷가에서 에미이와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아가씨, 유정도 하지’라는 ‘울산 아가씨’를 부르는 엄마의 모습은 희생자의 모습을 강요당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녀의 모든 삶이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117)”


“세상에 인간같이 지독한 게 없어. 이렇게 제 발로 의자에 묶여서 열두 시간 넘게 앉아 있는 동물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냐.(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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