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오피스 오늘의 젊은 작가 34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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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작가의 [백 오피스]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4번째 작품이다. 빌딩숲으로 가득한 도시의 점심 시간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서 있다보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한 손에 테이크 아웃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직장인들을 보게 된다. 목에는 회사마다 다른 출입증을 매달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이들을 보며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 엄숙한 회의 중에는 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의견을 나누고 있을까? 아니면 사내 이슈의 주인공이 된 제3자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소문의 진상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있을까? 아니면 오늘도 잔소리와 신경질을 부리는 상사에 대한 뒷담화로 스트레스를 푸는 중일까? 직장인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회사란 그들에게 생계를 잇도록 월급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면서 동료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보람과 뿌듯함이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기능만을 나열하기에는 현대 사회의 회사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긴장과 불안에 휩싸인 곳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무한 경쟁 시대가 열리면서 직장 동료에 대한 시선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퀸스턴 호텔 백 오피스 강혜원, 태영그룹 대리 홍지영,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마이스 스타트업 기획사 임강이 이렇게 세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혜원은 출산과 휴직으로 인해 동기인 선 차장에게 승진의 기회를 빼앗기게 되고 총지배인이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동분서주 하지만 아이에게 소홀한 찰나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연락을 받게 된다. 태영그룹의 친환경 관련 국제 행사 진행에 지원을 한 신생기업 아트스틱은 태영그룹의 비리가 드러나는 뉴스가 보도되자 실낱같던 희망마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지만, 오히려 태영그룹 내에서는 그들의 이미지 전환을 위해서라도 친환경 주제 국제 행사의 규모를 더욱 크게 열어 시선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행사 전반에 대한 업무를 맡은 홍지영은 그의 사수 오과장이 이벤트 장소와 기획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모습에 사내 감사실에 내부 고발을 하게 된다. 배임혐의로 좌천된 오과장을 대신해 홍지영은 이미 선정될 예상이었던 대형 기획사를 대신해 아트스틱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게 되고 혜원과 홍지영 그리고 임강이의 협업이 시작된다. 

임강이는 그동안 호텔 그랜드 홀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어온 형식에서 벗어나 친환경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행사장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물길을 내어 행사에 초대받은 이들이 물과 자연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획기적이고도 과감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홍지영는 오균성의 비리를 고발하고, 강혜원은 선 차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강이의 기획안에 진행시킨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3명의 프로페셔널한 주인공들은 그저 일이 좋아서 자기들이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자 하는 일념 하에 최선을 다하지만 빡빡한 예산에 물길을 내는 플라스틱의 두깨를 줄인 탓인지, 아니면 물을 세어 나와 행사장 카펫을 적실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에도 물레방아까지 허용한 탓인지 결국은 행사 시작 이후 참석자들에게 물이 쏟아져 내리며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속된 말로 이런 엄청난 실수로 행사를 말아먹게 되면, 누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호텔의 책임자는 사표를 쓰게 되고, 대기업의 행사 책임자 또한 그에 응당하는 인사처리가 되고, 행사를 담당한 신생 기획사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혜원의 선택을 지원해준 부지배인 박윤수가 대신 책임을 지며 호텔을 그만두게 되고, 태형의 책임에서 회피하고자 하던 상사의 말에 홍지영은 사내 게시판에 친환경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면서 환경 파괴적인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한 모순과 이 행사의 실패의 근본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알린다. 2주 후에 임강이에게 걸려온 전화는 임강이와 알렉스가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대기발령 중인 홍지영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암시한다. 그리고 홍지영에게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혼자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함께 연대하며 기대며 살아갈 수 있다는 선택으로 인해 호감을 가진 알렉스와의 만남까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의 준비한 행사가 망작은 아니었나보다. 

“일터뿐일까. 무언가 유지하는 데는 그것을 아끼는 어떤 이들의 마음과 그것을 받쳐 줄 희생이 수반된다. 가정의 화목함은 누군가의 배려와 이해와 희생이 후방에서 울타리를 치고 받들어 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95)”

“행복과 불안을 피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회피와 침묵이었다. 배워 아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익힌 거였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어떤 관계에서든 홍지영은 침묵으로 균형에 이르렀다. 회피는 마음의 상처를 덜어 주었고 침묵은 벽을 만들어 자신을 공고하게 지켜 주었다.(151-152)”

“그러므로 이 소설은 지긋지긋하고도 찬란한 세상에 매일 나를 밀어 넣으며 고행을 떠나는, 일하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애정의 메시지다. 저마다 맡은 일도 다르고 일하는 속도나 방법도 다르지만, 어쨌든 일을 하며 힘을 내고 인정을 갈망하고 보람도 느끼는, 자기 일을 매 순간 조금씩 해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진심의 응원이다. 무엇보다, 숨 쉬는 생명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이미 충분히 해내고 있다는 믿음의 이야기다.-작가의 말 중에서(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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