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치 비트코인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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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원 작가의 [인생 마치 비트코인]을 읽었다. 제목만 먼저 봤을 때는 요즘 뜨거운 감자인 비트코인을 다룬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와 비슷한 소재가 등장하는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잠깐 비트코인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인공 ‘나’의 삶에 있어서 비트코인은 벼락부자를 가능케 만들어주는 도박과도 같은 시도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아무렇게 않게 내뱉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을 함묵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삶, 보통의 삶은 너무 무난해서 대충 혹은 아무나 쉽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화자인 ‘나’가 살아온 삶에 대한 독백과 403호에 살던 이의 일기를 통해 만난 여성의 삶은 그 평범한 삶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행운이 깃들여야만 가능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나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의 일부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고, 겉으로는 나보다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도움을 준다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의 시간은 단 1분 가까이에 머물 뿐 지금까지 내가 누리지 못한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차 온갖 것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의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는 형국이다. 


아주 편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내가 이성적이고 냉철하지 못하게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말을 떠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얘기에서 저 얘기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사건을 정리하지 않고 때로는 뒤섞여서 말해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사과나 부연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방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화자인 ‘나’가 오피스텔 관리인이 되어 갑작스럽게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게 되는 약간은 으스스한 내용으로 시작되어 과거의 학창 시절 이야기가 한참 진행되다가 갑자기 현재로 돌아와 그렇게 오피스텔에서 죽게 된 403호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하지만 게으르게 생겼다고 첨언한 여성이 남긴 일기에 집중하게 된다. ‘나’가 주정뱅이 아버지와 못생기고 다리까지 절며 평생을 밭일에 매다린 엄마가 살던 시골집에서 벗어나 무작정 상경하여 서울에 정착하는 내용은 마치 성장 소설처럼 그려진다. 그렇게 용산 전자상가에서 온갖 잡다한 일을 해본 ‘나’는 그를 잘 눈여겨본 오피스텔 건물주에게 관리인 일을 제안받게 되고 그곳에서 홀로 죽어간 이들을 마주하곤 한다. 


가욋돈을 만져볼 요량으로 특수청소업체를 부르지 않고 403호를 청소하다가 죽은 여성이 남긴 의문의 상자와 일기를 발견하게 된다. 상자를 열어보니 깨끗한 아이의 신발이 들어있고 일기를 읽다가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그녀의 이혼한 전 남편을 만나 아이의 신발을 돌려주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척같이 살아온 ‘나’는 타인의 삶에 무관하려고 했지만, 403호의 일기를 읽고나서는 그렇게 돌아가지 못한다. 그녀의 남편을, 그녀의 예전 직장동료를 만나 그녀의 죽음을 설명하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녀의 일기에 담긴 그녀의 어머니와의 삶의 고된 마지막 여정을 추모하게 된다. 마치 ‘나’의 삶이 아무리 정리하려고 해도 작은 침대하나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아터진 구역처럼 ‘나’에게 주어진 삶의 운명은 결단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부모 복이 없는 평범한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비참한 삶을 살다가 403호의 일기는 그에게 별이 아닌 금성이 별처럼 빛나는 것이라 생각해왔던 그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 퉁명스럽게만 통화하던 엄마의 시골집을 가게 만든다. 정신없던 주식장의 그래프처럼, 오로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보고자 투자했던 비트코인마저 그의 등을 돌리는 순간 화자인 ‘나’가 전해준 이야기들은 더 이상 의식의 흐름으로 아무렇게 나불거린 악취를 풍기는 토사물이 아니라 ‘나’와 독자인 나에게까지도 구원의 등불을 비춰주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은퇴 인터뷰에서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게 정말 싫었다. 자기가 뭐라도 된 듯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에 살다 보니 그들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이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배우자를 만나고, 은행 빚 별로 없이 아파트를 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은퇴 후 취미를 즐기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간에 자신 혹은 가족이 죽거나 다치는 일도 없어야 하니, 평범한 삶이란 곧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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