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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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인 이번 책은 주인공 다다 게이스케와 교텐 하루히코의 우연한 재회로 시작된다. 어찌된 이유인지 회사를 그만두고 심부름센터가 아닌 심부름집을 시작한 다다는 외로움의 냄새가 짙게 베어 있는 듯 하다. 마호로 외곽의 어느 집의 노인에게 부탁을 받고 그 집 정원을 정리하며 버스가 시간표대로 운행을 하지는 지켜보라는 의뢰를 받은 다다는 일을 마치는 길에 버스가 끊긴 정류장에서 쿄텐을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동창생인 교텐은 친구들의 장난으로 제단기에 새끼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야기의 후반에서 장난치던 친구들이 교텐을 밀치게 된 원인은 다다가 일부러 의자를 빼놓았기 때문이라는 진실이 드러난다. 아무튼 쿄텐의 잘라졌던 다시 붙은 새끼손가락은 약간은 두터운 하얀 실을 두른 듯한 모양이 되고 그 손가락의 끝 부분만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다가 쿄텐의 손가락에 대한 죄책감은 자주 반복되며 다다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오갈데 없는 쿄텐이 다다의 심부름집에 빌붙으며 본격적인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쿄텐은 다다가 원치않은 조수 역할을 하며 주인이 버리려고 맡긴 치와와 ‘하루’를 키우던 소녀를 만나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려다 매춘부 루루와 하야시를 만나게 된다. 강아지를 찾아주고 정원을 정리하고 버스 운행시간을 확인하는 자잘한 일을 하던 다다 심부름집은 소소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이야기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쿄텐이 하야시를 스토킹 하던 마약 브로커에게 칼을 맞으며 급격히 하드보일드로 전환된다. 일본의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매춘부가 일하는 지역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마약 브로커들이 어린이들을 꼬드겨 운반책으로 이용하는 상당히 부정적이고 어두운 세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나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이의 호시는 야쿠자를 연상시키며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다다와 쿄텐에게 살해의 위협도 마다하지 않는 스릴러의 여운까지 남겨주었다. 


쳅터가 바뀔 때마다 다다 심부름집이 의뢰받은 내용에 따라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주인공만 다다와 쿄텐이고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형식인가 했더니, 새롭게 나온 등장인물들이 앞 쳅터의 인물과 마치 아주 긴 실로 연결된 것처럼 얽혀 있어 어떤 결말이 이어질 것인지 뒤로 갈수록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또한 아주 시크하면서도 때로는 지혜롭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쿄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던 터에 쿄텐의 전처와 딸이 등장하며, 이 소설이 나올 2006년도 당시 우리나라에는 생소하기까지 했을 동성간의 결혼 생활을 위해 계약관계를 맺고 쿄텐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한 사실에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야 소설 주제로 언급되는 소재를 이렇게 주인공의 과거 이력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사회 변화가 우리보다 빨랐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쿄텐 만큼이나 미스테리하나 인물인 다다는 쿄텐과의 동거생활로 어느덧 자신의 상처를 토로하게 된다. 어떤 의뢰인 부부의 창고를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하다가 나오는 길에 자신을 미행한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에게 창고를 정리해달라는 부부가 생물학적인 부모일 것이라고 자신을 키워준 부모는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다는 그 남자의 고백으로 인해 자신이 아내와 이혼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게 된다. 아이를 가질 무렵 아내가 바람을 핀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아내를 용서하기로 마음 먹고 태어날 아기도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친자확인을 하자는 말을 듣고 다다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고 태어난 아기는 얼마되지 않아 죽게 된다. 이 고백을 한 후 다다는 쿄텐에게 심부름집에서 나가줄 것을 부탁하고 쿄텐은 다다를 떠나게 된다. 이후 일상생활을 시작한 다다는 생각보다 큰 쿄텐의 빈자리를 느끼게 되고 자신과 쿄텐을 아는 세 명의 사람에게 전화를 하며 쿄텐을 찾게 된다. 


“<알고 난 뒤에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지.> 그 순간 쿄텐의 표정은 숲속의 은둔자처럼 감정에서도, 욕망에서도 해방된 듯 보였다. <마음 내키는 데까지, 끝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겠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불행해질지도 모르는데?>

<불행하지만 만족할 순 있지. 후회하면서 행복할 순 없어. 어디서 멈출지는 기타무라 씨가 스스로 결정할 일 아냐?>(278)”


“어때? 아물었지? 새끼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조금 차갑긴 하지만, 문질러주면 온기가 돌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순 없어도 회복할 순 있다는 말이야.(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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